[딜사이트 노연경 기자] 원칙만 고수하는 인천국제공항공사(공항공사) 앞에서 면세 사업자들의 속이 타들어 가고 있다. 공항공사는 오는 28일로 예정된 차임감액청구 2차 조정기일에 불참 의사를 밝혔다. 뿐만 아니라 면세 사업자가 주장하는 '조정 사유' 자체가 성립 안된다며 '조정 미수용' 입장을 결정했다고 못을 박았다.
차임감액청구란 임차인이 경제 사정의 변동 등이 생겼다고 판단할 때 임대인에게 임차료를 조정해 줄 것으로 요구하는 제도다. 여기서 임차인은 신라·신세계면세점이고, 임대인은 공항공사다. 면세점 측은 공항공사를 상대로 인천공항 임차료를 40% 감면해달라고 인천지방법원에 차임감액청구을 행사했다.
그런데 공항공사가 법원의 조정기일에도 참석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통보하며 요구 자체가 불성립한다고 못을 박은 것이다. 공항공사는 "사업자가 무리하게 입찰가를 써낸 것일 뿐, 계약 자체에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중국인 관광객 감소, 소비자 구매패턴 변화 등 사업자 쪽에서 제시한 감액 청구 이유는 객관적인 경제사정의 변동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전후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원칙론에 가깝다. 어쩌다 인천공항의 임대료가 이렇게 기형적으로 높아졌고 왜 사업자는 손해 볼 것을 알면서도 입찰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지 그 전후 사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번 입찰이 이뤄지기 전에 면세사업자들은 줄곧 요구했던 '매출 연동 임대료'를 요구했다. 매출에 비례해 임대료를 내겠다는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코로나19) 이후 고정 임대료 방식은 앞으로 유지가 어렵다는 합의도 이뤄졌을 때다. 하지만 공항공사는 당시 매출이 아닌 '여객수에 연동한 임대료'를 받겠다고 결정했다. 당시에도 사업자들 사이에선 고정임대료 방식에서 벗어난 건 진일보한 것이지만 여객수와 비례해 매출이 늘어나지 않을까봐 걱정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여기에 실제 입찰이 이뤄졌던 2023년 당시 국가적으로 면세사업을 키우기 시작하면서 힘이 막강해진 중국국영면세점그룹(CDFG)의 참여가 결정되며 변수가 발생했다. 국내 면세 사업자들 사이에선 CDFG가 자본력을 앞세워 고가의 입찰가를 써낼 것이란 우려가 번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개별 사업자 입장에서 보면 사드보복으로 인해 엄청난 위약금을 물고 중도 퇴점한 롯데면세점은 해외 시내 면세점과 해외 공항 면세점을 차근차근 늘려가며 인천공항과 이별할 준비를 했다. 이와 달리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은 인천공항 입점이 더 절실한 상황이었다. 특히 해외 사업장이 전무하고 시내 면세점 운영마저 어려워지기 시작했던 신세계면세점 입장에서 인천공항은 놓쳐선 안 되는 기회였다.
이런 전후 사정을 공항공사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공항공사는 최근 조정기일 불참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히며 "신라, 신세계는 각 사의 경영적 판단에 따라 최저수용금액 대비 투찰률 160%가 넘는 임대료를 제시하여 10년 간 운영권을 낙찰 받은 것"이라며 "고가 투찰로 사업권을 획득한 후 임대료 감액을 요구하는 것은 입찰의 취지와 공공성, 기업의 경영 책임을 회피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인천공항은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여객 수가 많은 공항이다. 이런 대형 공항에 입점해있다는 사실만으로 면세 사업자는 콧대 높은 명품 브랜드와 그나마 동등한 위치에서 협상을 할 수 있었다. 공항공사가 이런 막강한 지위에 있기 때문에 그간 사업자들은 울며겨자 먹기로 높은 고정임대료를 지불했던 것이다.
공항공사도 이 덕에 높은 수익을 챙길 수 있었다. 실제로 적자로 전환한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과 달리 공항공사는 2023년부터 흑자(5325억원)로 돌아선 뒤 작년에도 7411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이같은 호실적 이면에는 면세 사업자가 지불하는 임대료가 수익의 상당 부분을 지지하고 있다.
국내 면세 산업이 망가지면 공사로서도 손해인 것이다. 또 국내 사업자들이 버티지 못하고 사업을 포기하기 시작하면 인천공항에서 외국 면세 기업이 장사하는 모습을 보게 될 수도 있다. 이에 국내 면세 사업자들은 구조조정과 시내면세점 폐점을 강행하면서 인천공항을 사수하려 노력 중이다.
이번엔 그간 탄탄한 수익성을 보장해 준 면세 사업자의 생존을 위해 공사가 유연한 태도를 보여야 할 때다. 상급 기관인 국토교통부도 양측의 계약관계라는 이유로 뒷짐만 지고 있을 것이 아닌 적극 행정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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