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조은지 기자] 게임업계가 인공지능(AI)을 바라보는 시선이 단순한 비용 절감에서 창작 과정의 확장으로 옮겨가고 있다. AI를 사람의 일을 줄이는 도구로만 볼 것이 아니라 기존에는 시간과 비용 문제로 시도하지 못했던 영역을 다시 열어주는 기술로 봐야 한다는 진단이다.
딜사이트는 9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AI시대 게임산업 경쟁력과 세제지원 접점을 찾다'를 주제로 2026 게임 포럼을 개최했다. 1세션 발표자로 나선 나규봉 엔씨AI 사업팀장은 'AI 시대, 게임사가 바라보는 AI - 세 명의 현장 보고서'를 주제로 게임 개발 현장에서 AI가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설명했다.
나 사업팀장은 게임산업이 AI에 비교적 보수적인 태도를 보여왔지만 실제 사용량은 이미 상당한 수준이라고 짚었다. 그는 유니티와 구글 클라우드 등이 공개한 조사 결과를 언급하며 "코딩뿐 아니라 게임 내 스토리, 에셋 제작 영역에서도 AI 활용이 확인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게임업계가 AI 활용을 공개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배경도 분명하다고 봤다. 게임 플랫폼인 '스팀(Steam)'은 지난 2023년에 AI를 활용한 게임 유통에 보수적인 태도를 보인 바 있다. 여기에 AI로 만든 저품질 콘텐츠를 뜻하는 'AI Slop'에 대한 반감도 커졌다. 이용자들이 AI 사용 자체를 게임의 완성도 하락이나 창작 가치 훼손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늘어난 셈이다.
나 사업팀장은 "일자리 문제나 가치 훼손 우려도 있지만 진짜 이유는 AI가 내놓는 결과물이 아직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AI가 한 번의 클릭으로 결과물을 뽑아내지만 아쉬운 결과물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며 "그럼에도 이는 시간의 문제에 가깝다"고 덧붙였다.
그는 AI가 제대로 쓰이려면 많이 써보고 끝까지 가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술이 잘하는 영역과 사람이 더 잘하는 영역을 구분하려면 실제 개발 현장에서 충분한 시행착오가 쌓여야 한다는 설명이다.
나 사업팀장은 사내 실무자 3명의 사례를 소개하며 AI 활용의 방향성을 설명했다. 첫 번째 사례로 언급한 김일두 원화가는 AI를 시간 단축 도구가 아닌 시도 횟수를 늘리는 도구로 받아들였다. 기존에는 하나의 구도를 잡는 데 많은 시간을 써야 했다면 AI를 활용한 뒤에는 같은 시간 안에 여러 가능성을 확인하고 더 나은 방향을 고르는 방식으로 작업이 바뀌었다.
나 사업팀장은 "2주짜리 작업을 1주일로 줄이는 게 아니라 같은 2주 안에서 더 많은 시도를 하는 방식"이라며 "결국 주도권은 창작자의 경험과 판단에 있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사례는 최원 디자인 팀장의 작업이었다. 기존에는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어 구현하지 못했던 NPC 표현이나 모션을 AI로 보완한 사례다. 공용 모션으로 처리되던 캐릭터에 더 생동감 있는 움직임과 표정을 부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나 사업팀장은 "AI는 효율의 도구이기도 하지만 포기됐던 것을 복원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며 "산업이 성숙하면서 비용 문제로 다루지 못했던 연출을 다시 되찾게 하는 힘이 있다"고 말했다.
세 번째 사례는 3D 아티스트의 고민이었다. 해당 아티스트는 영상업계에서는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지만 게임은 종합예술에 가깝고 요구 퀄리티가 높아 바로 적용하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모든 것을 잘하려 하기보다 자신이 더 잘해야 하는 영역을 먼저 정하고 AI와의 역할 분담을 고민했다는 점도 소개됐다.
나 사업팀장은 이를 두고 "기술이 진화하는 만큼 사람도 각자의 방식으로 진화하게 된다"며 "AI 시대에는 제너럴리스트와 스페셜리스트의 역할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게임사가 AI를 바라보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고 봤다. 인력을 대체하는 관점보다 주어진 환경에서 더 많은 시도를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문화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비용 효율도 중요하지만 그동안 놓쳤던 표현과 직군 간 확장 가능성에 더 주목해야 한다는 의미다.
나 사업팀장은 "끝까지 써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AI를 강제로 쓰게 하는 것보다 그 안에서 잘 쓰는 사람이 나오면 응원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AI를 "사람이 가볍게 다루는 가위나 칼, 총이 아니라 무거우면서도 숙력되기 어려운 '바주카포' 같은 기술"이라고 비유했다. 숙련되지 않으면 오히려 휘둘릴 수 있지만 창작자가 균형감각과 기본기를 갖춘다면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 사업팀장은 "AI는 결국 도구이고 쓰는 것은 사람"이라며 "창작자의 본질은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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