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정부가 본격 출범하면서 시장 관심이 저(低) 주가순자산비율(PBR) 기업으로 쏠리고 있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증시 저평가)'를 해소해 코스피 5000시대를 열겠다는 비전을 밝혔다. 가장 유력한 방안으로는 저PBR 기업에 패널티 부과가 예상된다. 기업을 압박해 스스로 경영 개선 노력을 펼치고, 기업가치 제고에 따라 증시를 끌어올리자는 취지다. 이에 딜사이트는 전통적 저PBR주로 분류되는 제지업과 자동차부품업 등을 중심으로 당면한 과제와 대응 방안 등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아세아그룹 골판지원지 제조사인 아세아제지가 대대적인 주주환원 정책을 내놓은 지 2년이 흘렀음에도 효과는 신통치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세아제지는 2023년 7월 4개년 주주가치 제고안을 발표하고 주가 부양을 위해 힘써왔다. 하지만 주가순자산비율(PBR)이 좀처럼 상승하지 못 하는 상황이다.
아세아제지는 우선 기 발표한 정책을 이행하는데 초점을 맞출 예정이다. 인위적인 주가 부양보다는, 본업 경쟁력 강화로 자연스럽게 기업가치를 끌어올린다는 전략이다.
◆ 팬데믹 일시적 주가 상승 후 원상복귀…역사적 저평가 구간
2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9일 종가 기준 아세아제지의 PBR은 0.39배다. 지난해 말 0.35배보다는 소폭 상승했지만 여전히 낮은 수치다. 주가를 순자산가치로 나눈 비율인 PBR은 통상 1배 미만일 경우 시가총액이 순자산가치(청산가치)에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보유 현금이나 부동산 등 실질 가치에 비해 주가가 낮게 형성돼 있기 때문에 투자 매력이 높다.
제지업종이 전통적인 저PBR종목으로 분류되는 주된 배경은 사양산업이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디지털 전환으로 종이 수요가 감소한 데다 내수 시장이 포화상태에 도달한 지도 오래돼서다. 대부분의 원료를 해외에서 수입하는 만큼 변동성이 크다는 점도 있다. 제지업은 크게 인쇄용과 포장용으로 나뉜다. 아세아제지는 골판지 원지와 상자를 주력 사업으로 한다.
골판지업계는 코로나19 기간 이례적인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 비대면 소비가 확산하면서 택배 물동량이 급증했고, 물건을 포장하기 위한 택배 박스 수요가 늘어난 영향이다. 이 시기 골판지업종의 PBR이 우상향했지만, 특수는 일시적이었다. 실제로 아세아제지의 PBR은 ▲2020년 0.53배 ▲2021년 0.66배 ▲2022년 0.44배 ▲2023년 0.41배 ▲2024년 0.35배를 기록했다.

시장에서는 아세아제지의 주가가 유독 역사적인 저평가 구간에 머물고 있다는 반응이다. 이 회사가 2023년부터 주가 부양을 위해 고강도 주주환원책을 이행하고 있음에도 동종 골판지 회사보다 PBR이 낮거나 비슷한 수준을 보이고 있어서다. 국내 대표적인 골판지 회사로는 신대양제지, 태림포장, 한국수출포장를 꼽을 수 있다. 각 회사의 현 시점 PBR은 0.73배, 0.48배, 0.38배로 나타났다.
◆ 배당·자사주 등 주주친화 정책…환원율 80% 상회
아세아제지는 골판지업계에서 가장 선진화된 주주친화 정책을 전개하고 있다. 앞서 이 회사는 2023년 창사 처음으로 명문화된 주주환원책을 제시했는데, 사업연도 기준 2023년부터 2026년까지 별도 순이익의 25% 이상을 현금배당으로 지급하고, 총 400억원 규모의 자사주 취득과 전량 소각을 약속했다.
실제로 아세아제지는 2023년 말 별도기준 순이익 647억원을 기록했으며, 해당 실적에 대한 결산배당으로 보통주 1주당 2420원을 배당했다. 총 배당금은 205억원으로, 순이익의 약 32% 수준이다. 특히 주당 배당금은 전년(1000원)보다 142% 증액됐다. 지난해의 경우 순이익이 전년보다 축소된 349억원이었으며, 총 배당금은 25% 수준인 87억원이었다. 다만 이 기간 주당 배당금은 전년 대비 11분의 1 수준인 220원에 그쳤는데, 이는 지난해 실시한 액면분할로 주식수가 5배 늘어난 데 따른 착시효과다.
자사주 매입과 소각도 꾸준히 병행하고 있다. 아세아제지는 2022년 말까지 자사주를 전혀 보유하지 않고 있었으나, 2023년 말 52만9792주로 늘었다. 지난해 말에는 302만6960주로 더욱 확대됐다. 특히 아세아제지는 올 들어서도 50만1000주를 추가로 매수했다. 자사주 소각은 매년 1회씩 이뤄지고 있다. 먼저 지난해 9월 200만주(155억원)를, 올해 3월 115만주(85억원)를 각각 소각했다.

그 결과 2022년 말 14%에 불과하던 아세아제지의 주주환원율(배당과 자사주 매입액 합을 순이익으로 나눈 비율)은 2023년 63%로 껑충 뛰었고, 지난해에는 82%로 집계됐다.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주가는 극적인 상승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아세아제지가 주주환원책을 발표하기 직전인 2023년 7월11일 기준 종가는 주당 3만4700원(액면분할 반영 시 6940원)으로, 시가총액은 3108억원이었다. 이달 18일 종가는 7940원이고 시가총액은 3306억원으로 나타났다. 지난 2년간 주가 상승폭은 1.14배였다.
◆ 기존 정책 유지…경영권 승계 비핵심 계열사, 주가 누를 이유 '無'
새 정부가 '코스피 5000 시대'를 위해 저PBR주 퇴출에 나설 것으로 전망되는 점은 아세아제지의 부담을 키우는 요인이다. 하지만 아세아제지는 인위적인 방법으로 주가를 견인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올해 중으로 지난해 말까지 취득한 자사주 중 미소각한 수량의 76%를 태워 없애고, 궁극적으로는 2027년에 모든 자사주를 소각할 예정이다. 배당의 경우 기존대로 별도 순이익의 25% 이상을 지급한다.
아세아제지 관계자는 "현 상황에서는 앞서 발표한 대로 주주환원책을 이행하는데 집중할 계획"이라며 "당장은 골판지업 경쟁력을 향상시켜 주가가 자연스럽게 오를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 관계자는 "정부의 규제가 명확해지면 적절히 대응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아세아제지는 아세아그룹 지주사를 최대주주로 두고 있으며, 지배구조는 '이병무 명예회장→아세아㈜→아세아제지·아세아시멘트→한라시멘트'다. 현재 오너 2세인 이병무 명예회장과 오너 3세 이훈범 회장이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아세아제지 주가가 오너가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때문에 아세아그룹이 아세아제지 주가를 억지로 누를 필요성도 크지 않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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