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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수들에게 건넨 것…계약서보다 값진 '이미지'
신지하 기자
2026-06-12 09:53:51
번화가 삼겹살집서 보인 소탈함…총수 리더십에 새 바람 부나
이 기사는 2026-06-12 09:53:55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5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인근의 한 삼겹살 음식점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구광모 LG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의장과 회동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딜사이트 신지하 기자]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닷새간의 방한 일정에서 굵직한 사업 발표도 내놨지만 더 주목받은 것은 재계 총수들의 색다른 면모였다. 


지난 5일 저녁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 삼겹살집에서 열린 이른바 '삼소(삼겹살·소주)' 회동에는 황 CEO를 비롯해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이 한자리에 모였다.


참석자 중 가장 어린 구 회장(48)은 젓가락 등 테이블 세팅과 고기를 굽는 일을 도맡았다. 맏형 격인 최 회장(66)은 소주와 맥주를 섞어 황 CEO(63)에게 건넸고, 이 의장(59)은 쌈 싸는 법을 직접 설명했다. 황 CEO가 가게 밖으로 나와 시민들과 소통하자 남아 있던 총수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의 수장과 한국 대기업 총수들의 만남치고는 낯선 장면이었다. 통상 이 같은 회동은 호텔 연회장이나 외부와 차단된 비공개 공간에서 이뤄진다. 배석 인원과 의전 절차도 엄격하다.

하지만 이날 현장은 달랐다. 식당 선정부터 좌석 배치까지 엔비디아 측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소도 시민 누구나 드나드는 번화가 한복판이었다. 식사가 시작되자 가게 앞에는 회동을 보러 온 시민들로 북적였다.


평소 공개석상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구 회장과 이 의장도 이날만큼은 달랐다. 두 사람 모두 카메라 앞에서 활짝 웃으며 소탈한 면모를 드러냈다.


방한 마지막 날인 8일에도 비슷한 장면이 이어졌다. 서울 여의도 LG 사옥 1층 로비에 도착한 황 CEO는 그를 맞이한 구 회장과 인사를 나눈 뒤, 방문 소식을 듣고 로비로 몰려든 LG 직원들에게 다가가 악수했다.


직원 한 명이 황 CEO에게 사인을 요청하자 종이를 받아든 황 CEO는 옆에 있던 구 회장에게 건네며 함께 사인하도록 했다. 재벌 총수가 자사 직원에게 마치 스타처럼 사인을 해주는 장면은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이런 장면들은 지난해 10월 황 CEO의 방한 때도 연출됐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치킨집 '깐부치킨'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나란히 앉아 치맥을 나눈 황 CEO는 식사 도중 밖으로 나와 몰려든 시민들에게 치킨과 바나나우유를 직접 나눠줬다.


이 회장은 "왜 이렇게 아이폰이 많아요"라며 농담을 던졌고, 정 회장은 "제가 이래 보여도 여기서 막내입니다"라며 웃음을 유도했다. 공식 석상에서 신중한 발언으로 일관해온 두 총수에게선 보기 드문 모습이었다.


재계에서는 총수들이 이번 회동에서 사업 협력 못지않은 것을 얻었다고 분석한다. 젠슨 황이라는 글로벌 아이콘과의 공개 만남 자체가 '소통하는 리더'라는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입혔기 때문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엔비디아 입장에서 고대역폭메모리(HBM)나 인공지능(AI), 로봇 등 사업 협력은 더 나은 경쟁자가 나타나면 언제든 파트너가 바뀔 수 있다"며 "하지만 총수 이미지는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특히 기업과 총수가 하나의 연결고리로 인식된다"며 "기업이 수백억원을 들여 사회공헌 활동을 해도 총수의 이미지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삼겹살집 한 번 나온 것만으로 총수들 이미지가 달라졌다"고 했다.


실제로 이번 회동에서 총수들이 얻은 이미지 효과는 적지 않았다. 소탈하고 친근한 황 CEO의 행보가 옆에 선 총수들에게도 고스란히 번졌다. 구 회장이 집게를 들고, 이 의장이 쌈 싸는 법을 설명하는 장면은 어떤 광고나 홍보 캠페인으로도 연출하기 어렵다.


자연스럽기 때문에 더 강하다는 분석이다. 평소 베일에 싸인 총수일수록 그 효과는 컸다. 수백억원을 들여도 만들기 어려운 대중 친화적 이미지가 삼겹살 한 판, 사인 한 장으로 완성됐다. 젠슨 황이 판을 깔았지만 총수들도 그 판에서 각자의 몫을 챙겼다.


황 CEO가 이번 방한에서 만난 한 기업의 홍보 담당자는 "황 CEO와의 회동이 보여준 소통 방식이 국내에도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며 "앞으로는 총수들끼리의 만남이나 사업 발표도 이런 식의 공개 이벤트 형태로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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