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글로벌세아그룹(글로벌세아) 산하 제지 계열사인 태림페이퍼가 선제적인 가격 인상 카드를 꺼내 들었다. 시장 안팎에서는 원가 부담 해소라는 목적에 더해 향후 매각을 염두에 둔 몸값 높이기에 나선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 작년 말 가격 인상 '총대'…매각설 불거진 시점과 겹쳐
5일 제지업계 등에 따르면 태림페이퍼는 지난해 말 거래처를 대상으로 골판지 원재료인 골판지 원지 가격을 인상하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다. 실제 가격 인상은 통보 직후부터 일부 적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골판지 원지는 표면지(겉지)와 이면지(속지) 사이에 들어가는 구불구불한 골심지 등을 지칭한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태림페이퍼가 골판지 원지 업체 중 가장 먼저 가격 인상 포문을 열었다는 점이다. 통상 골판지 업계는 가격 인상에 신중한 편이다. '펄프·고지→원지→원단→상자'로 이어지는 산업 구조상 최하단에 위치한 영세 상자제조사에 비용 부담이 전가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골판지 원지 가격이 20% 오르면 상자 가격도 약 12% 인상되는 등 파급력이 크다. 때문에 골판지 원지 업체들은 총대를 메기보다는 경쟁사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인상 시기를 조율하는 '눈치보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공교롭게도 태림페이퍼의 가격 인상 단행은 매각설이 대두된 시점과 맞물린다. 의류 주문자위탁생산(OEM) 기업 세아상역을 모태로 둔 글로벌세아는 지난해 말 투자은행(IB)업계와 접촉했다. 제지사업 부문의 기업가치 측정을 위한 단순 의뢰 목적이었다는 입장이지만, 매각을 준비하기 위한 사전작업의 일환이라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글로벌세아가 공격적인 인수합병(M&A)으로 사세를 키우는 동안 총차입금이 2조4000억원(2024년 기준)에 달할 만큼 재무구조가 부실해졌다는 이유에서다.
◆ 글로벌세아, 제지사 인수에만 1.5조 투입
글로벌세아는 2019년 인수합병(M&A) 시장 매물로 나온 태림페이퍼(옛 동일제지)와 태림포장, 동원페이퍼, 동림로지스틱, 태림판지 등 제지 계열사를 약 7300억원에 인수했다. 태림페이퍼와 동원페이퍼는 골판지 상자의 재료가 되는 원지를 생산하는 업체이며, 태림포장과 태림판지는 골판지 상자 제조를 주력으로 한다. 글로벌세아가 의류 수출 과정에서 골판지 상자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한 것이다.
글로벌세아는 2023년 골판지 원지 생산 업체인 전주페이퍼와 열병합발전소인 전주원파워를 총 6500억원에 사들이기도 했다. 국내 최대 신문용지 제조사이던 전주페이퍼가 신문 수요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골판지 원지 사업을 시작한 만큼 태림페이퍼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글로벌세아는 같은 해 농심 계열사 율촌화학의 판지사업부도 430억원에 품었다.
그 결과 글로벌세아의 제지사업 부문은 '김웅기 회장 일가→글로벌세아→세아상역→태림페이퍼→태림포장(율촌화학 판지사업부 흡수)·티앤제이인베스트먼트→전주페이퍼·전주원파워'의 지배구조를 구축하게 됐다.
시장에서는 글로벌세아가 매각 계획을 공식화 할 경우 태림페이퍼의 지배를 받는 계열사를 통째 매각할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 원가 상승 탓 수익성 약화…비싸게 팔려면 가격 인상 불가피
주목할 부분은 글로벌세아 제지 부문 지배구조 꼭대기에 위치한 태림페이퍼의 실적이 마냥 좋은 상황은 아니라는 점이다. 비상장사인 태림페이퍼는 2024년 말 연결기준 매출이 40.3% 증가한 1조2543억원을 달성했지만, 영업이익은 무려 77.3% 급감한 248억원에 그쳤다. 이처럼 외형 성장과 수익성이 상반된 주된 요인으로는 매출원가 부담이 확대된 데다, 각종 비용부담이 늘어난 영향으로 파악된다.
문제는 지난해 골판지 원지 업황도 우호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태림페이퍼와 함께 국내 골판지 원지 업계의 '톱5'로 분류되는 ▲아세아제지 ▲신대양제지 ▲삼보판지 ▲한국수출포장공업의 영업이익이 모두 위축되고 있다. 실제로 아세아제지는 지난해 3분기 말 누적기준 영업이익이 10% 가량 감소했으며, 신대양제지는 약 6% 줄었다. 삼보판지의 경우 28% 축소됐고, 한국수출포장은 적자전환했다. 빅5 중 유일한 비상장사인 태림페이퍼의 경우 정확한 실적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경쟁사들과 마찬가지로 이익이 감소했을 가능성이 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글로벌세아가 매각에 앞서 태림페이퍼의 기업가치를 보전하기 위해 원지 가격 인상을 단행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에서 추정하는 태림페이퍼와 계열사의 몸값은 약 2조원 수준이다. 수익성이 약화되면 기업가치 책정에 불리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 글로벌세아 관계자는 "제지사업 부문과 관련한 IB 접촉은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여러 방면에서의 전략을 모색하기 위한 차원이었을 뿐 매각과 관련해 정해진 내용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 관계자는 또 "환율 상승기에 수출 물량 증가로 국내 재고가 감소한 데 따른 시장의 수급 변화와 수년간 누적된 제조 원가 상승 요인을 반영한 것"이라며 "태림페이퍼 뿐 아니라 다른 제지사도 이런 흐름에 따라 최근 가격을 불가피하게 조정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특히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매각을 추진한다는 일부 이야기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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