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태은 기자] 이달 11일 오전 10시 30분. 전북 익산에 위치한 하림의 종합식품기지 '퍼스트키친'을 찾았다. 외부에서 바라본 퍼스트키친은 익숙한 하림 로고 아래 대규모 물류센터가 모여 있는 공간처럼 보였다. 하지만 내부로 들어서자 일반적인 제조공장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특히 더미식 사업부를 비롯한 각 부서 사무공간과 라면·즉석밥 생산라인, 닭고기 가공시설이 한 공간에 자리하며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현장을 둘러보니 하림이 단순한 식품 제조기업을 넘어 제품 개발과 생산, 유통을 하나로 연결하는 '푸드시스템' 구축에 힘을 쏟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하림 퍼스트키친은 라면, 즉석밥, 육수, HMI(Home Meal Itself) 제조공장과 스마트 물류센터를 갖춘 종합 식품 생산기지다. 하림은 오늘날 가정의 주방이 조리 공간보다 식사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퍼스트키친을 '온 국민의 공유주방'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세웠다. 2018년 기공 이후 단계적으로 확장해 왔으며 올해 완공을 앞두고 있다. 총면적은 12만3429㎡(약 3만7300평)로 축구장 17개를 합친 규모에 달한다.
거대한 냄비 모양의 문을 통과하며 라면 키친(K3)에 입장했다. 수출용인 '플레이밍 까르보나라' 제품의 반죽부터 포장까지의 생산 전 과정을 지켜봤다. 하림의 대표 사업인 '닭'의 육수를 면에도, 액상스프에도 활용하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변관열 하림지주 수석부장은 ""2022년 건면·유탕면 생산라인 2개로 시작했지만 제품군 확대에 맞춰 현재는 총 4개 라인을 운영하고 있다"며 "판매 증가 속도에 맞춰 생산라인도 지속적으로 확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방문한 밥 키친(K2)에서는 '당찬진미 백미밥' 생산 과정을 살펴봤다. 변 부장은 밥을 짓는 대형 원통형 취반 설비를 가리키며 "즉석밥도 쌀과 물로만으로도 만들 수 있음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 나사(NASA) 클래스 100수준의 클린룸"이라고 말했다. 나사 클래스100은 공기 중 부유입자를 100개 이하로 통제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는 하림 즉석밥이 첨가물 없이도 10개월의 소비기한을 확보할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메인 키친(K1)에서는 HMI와 냉동식품, 조미식품이 생산되고 있었다. 특히 380m에 달하는 육수 생산라인에서는 액상스프와 국·탕·찌개용 육수 등이 제조되며 하림 식품사업의 중추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메인 키친은 3만3468㎡(약 1만124평) 규모로 퍼스트키친 내에서도 가장 넓은 공간이다.
회사 관계자는 "아직 육수 시장이 개화하지는 않았지만 성장 가능성을 보고 지속적으로 두드리는 중"이라고 강조했다.
이후 건물 사이 연결 통로를 따라 스마트 물류센터 FBH(Fulfillment By Harim)로 이동했다. FBH는 생산과 물류를 직결한 국내 최초의 식품 물류 혁신 공간이다. 내부는 코스트코, 이마트 트레이더스 등 창고형 할인점 연상시켰다. 높은 층고 아래 제품들이 빼곡히 적재돼 있었고 입고·보관·출고·포장 과정 대부분이 자동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퍼스트키친 투어를 맡은 김시현 도슨트는 "(물류센터가) 생산시설과 컨베이어벨트로 연결돼 있어 제품의 신선도를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림이 이처럼 거대한 종합식품기지를 구축한 배경에는 '식품의 본질은 맛이며 최고의 맛은 신선함에서 나온다'는 철학이 자리하고 있다. 생산지에서 소비자 식탁까지 불필요한 시간을 줄여 신선도를 극대화하겠다는 것이다. 하림은 생산지에서 고객의 집까지 신선식품을 직접 배송하는 D2C(기업과소비자간직거래) 사업을 핵심 전략으로 삼고 있으며 향후 구독 서비스로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하림의 구상은 그룹의 사업 구조와도 맞닿아 있다. 하림지주는 팬오션, 제일사료, 하림, 선진, 팜스코, 엔에스쇼핑 등을 계열사로 두고 곡물 조달부터 해운, 사료, 축산, 도축, 가공, 식품 제조, 유통, 물류에 이르는 밸류체인을 구축했다. 퍼스트키친은 이 같은 밸류체인의 종착점이자 집약체다. 생산과 가공, 물류 역량을 한 곳에 묶어 식품을 소비자에게 직접 전달하는 하림의 구상이 이곳에서 구현되고 있었다.
이러한 시스템을 소비자와 연결하는 플랫폼이 바로 '오드그로서(Odd Grocer)'다. 오드그로서는 '특별한(Odd)'과 '식료품점(Grocer)'의 합성어로 '오늘 준비된 최고의 맛을 드립니다'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신선식품 직배송 플랫폼이다. 소비자가 오드그로서를 통해 식품을 주문하면 퍼스트키친에서 생산·가공·물류 과정을 거쳐 소비자에게 직접 배송된다.
생산과 가공, 물류를 아우르는 인프라와 이를 연결할 플랫폼까지 갖춘 만큼 하림의 밑그림은 어느 정도 완성된 모습이다. 다만 시장 안착 여부는 과제로 남아 있다. 오드그로서가 지난해 출범한 후발주자인 데다 쿠팡과 컬리 등 신선식품 시장 강자들이 이미 고객 기반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하림이 내세우는 '신선도'가 소비자의 선택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가 향후 사업 확장의 성패를 가를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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