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이세연 기자]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의 HBM3E 12단 퀄 테스트를 통과해도 당장 유의미한 수익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그간의 제품 개선 작업을 통해 올 하반기 퀄 통과 가능성은 예년에 비해 높아졌지만, 이미 공급망에 선제적으로 진입한 SK하이닉스가 물량의 대부분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돼 삼성전자가 대규모 물량을 배정받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엔비디아가 공급사 다변화에 대한 니즈가 있고, SK하이닉스의 높은 단가와 마이크론의 낮은 수율로 인해 삼성전자의 HBM 품질이 올라온다면 엔비디아 내 HBM 점유율 향상도 기대해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HBM3와 HBM3E 8·12단을 업계 최초로 양산해 엔비디아에 납품 중이다. 'HBM 후발주자'인 마이크론도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칩 'GB300'에 맞춰 설계한 HBM3E 12단 제품의 대량 양산에 들어간 상태다. 반면 삼성전자는 당초 퀄 테스트 통과 시점을 6~7월로 잡았지만 일정이 지연되면서 사실상 하반기는 돼야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관측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삼성전자 HBM3E 12단 제품의 엔비디아 '단품칩 인증'은 사실상 통과된 것으로 볼 수 있고, 엔비디아에서도 '쓸만하다'는 평가를 받은 것으로 들었다"며 "현재는 완성품 인증 절차를 진행 중인 단계"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그간 엔비디아의 요구 사항에 맞춰 HBM3E 12단 제품을 개선해왔으며, 현재는 납품을 위한 퀄 테스트를 받고 있다. HBM 퀄 테스트는 D램 단품의 성능을 평가하는 '단품칩 인증'과 이를 적층해 완제품 상태에서 성능을 검증하는 '완성품 인증'으로 나뉜다. 삼성전자는 앞서 HBM3E 8단 제품의 단품칩 인증은 두 번 통과했으나, 완성품 인증에서는 모두 탈락한 전례가 있다.
단품칩 인증이 퀄 테스트 가운데 가장 난이도가 낮은 만큼, 아직 공급망 진입 여부에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퀄 테스트 통과 가능성이 예년에 비해 다소 높아졌다는 평가다. 이에 이르면 올해 상반기 중으로 엔비디아 퀄 테스트 통과를 할 가능성도 있다. 앞선 관계자는 "그간 삼성전자가 퀄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던 이유는 속도와 전력 소모 측면에서 엔비디아의 기대치에 부합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그렇다고 설계를 전면 수정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통과한다고 해도 엔비디아로부터 유의미한 수준의 수주 물량을 확보할 수 있는 지다. 현재로선 대규모 발주는 기대하기 힘들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앞서 공급망에 선제적으로 진입한 SK하이닉스가 GB300에 탑재될 HBM3E 12단의 초기 공급을 맡고 있으며, 수주 물량 역시 현재로서는 사실상 독점하는 구도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확보할 수 있는 물량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또 엔비디아 입장에서는 이미 SK하이닉스의 물량이 확보돼 있고, 마이크론도 최근 제품 수율이 올라오면서 굳이 삼성전자의 HBM까지 물량을 늘릴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오히려 물량 확대로 제품 가격 인하 등의 이슈가 나올 수 있어 고객사들의 상황에 따라 퀄 통과와 물량 확보 등의 계획을 세울 것으로 예측된다.
반대로 엔비디아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간 관계를 전략적으로 조율하는 과정에서 고민이 길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SK하이닉스 제품은 성능이 뛰어나지만 가격대가 높고, 새로 공급망에 진입한 마이크론은 아직 수율과 생산능력(CAPA)에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이 때문에 엔비디아는 납품업체 다변화를 염두에 두고 삼성전자를 또 다른 카드로 검토 중이라는 설명이다.
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엔비디아도 납품처 다변화에 대한 니즈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다만 삼성전자에 물량을 섣불리 많이 배정할 경우, SK하이닉스와의 협업 관계에서 부담이 생길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한편 삼성전자는 올해 HBM 사업 전망을 낙관적으로 보고, 예상 공급 계획을 상향한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지난 1분기 HBM 판매량은 10억기가비트(Gb)를 밑도는 수준이었고, 2분기 또한 유사할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전자는 하반기 엔비디아 납품 가능성을 고려해 3분기에는 판매량이 현재의 두 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1분기 실적발표에서 "HBM 판매량은 1분기 저점을 찍은 후 매분기 계단식으로 회복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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