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HMM의 마지막 남은 영구전환사채(CB)의 향방에 관심이 쏠린다. 해당 CB는 올해 4월부터 스텝업(금리 상향)이 발동하는 만큼 HMM이 중도상환청구권(콜옵션)을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HMM 대주주인 산업은행(산은)과 한국해양진흥공사(해진공)가 콜옵션을 거부할 수 있는 데다, 오히려 주식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HMM이 인수합병(M&A) 시장의 상시 매물이라는 점이다. 안 그래도 HMM 대주주 지분율이 67%에 달하는 터라 잠재적 인수 후보들의 부담이 상당한데, 추가적인 CB의 주식 전환은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어서다. HMM 입장에서도 현금 곳간을 쉽사리 건들 수 없다. 다운 사이클에 대비하고 매각전 흥행을 위해 최대한 유보금을 쌓아둬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 대주주 보유 마지막 CB, 올 4월 스텝업 발동…콜옵션 가능
1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HMM은 오는 4월23일부터 '제197회 무기명식 이권부 무보증 전환사채(CB)'의 금리가 기존 연 3%에서 연 6%로 인상된다. 여기에 더해 연 0.25%의 이율이 매년 1년마다 누적된다. 예컨대 내년 4월24일부터 2027년 4월23일까지 해당 CB의 연간 이자율은 6.25%으로 늘어나고 ▲2028년 6.5% ▲2029년 6.75% ▲2030년 7%가 된다.
앞서 HMM은 2020년 시설자금과 운영자금 조달을 위해 7200억원 규모의 197회 CB를 발행했다. 산은과 해진공은 공평하게 3600억원씩 투입해 전환사채권 각각 720만주(전환가액 5000원)를 확보했다. 현재 HMM은 3개월마다 54억원의 이자를 지불하고 있는데, 1년에 총 216억원이다. 만약 스텝업 조항에 따라 이자가 6%가 되면 1년에 내는 이자만 432억원이 되며, 2026년는 매년 18억원씩 추가 가산된다.

이렇다 보니 시장에서는 HMM이 금리가 오르기 전에 잔여 CB를 처분하려 할 것으로 예상한다. 가장 단순한 방법은 콜옵션이다. 김경배 HMM 대표이사 사장도 지난해 9월 잔여 CB를 조기 상환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내비친 바 있다. 실제로 HMM은 2021년부터 공적 기관을 상대로 발행한 CB의 스텝업이 실현되기 전 수차례 중도상환청구권을 행사했다. 지난해 4월에는 1000억원 규모의 194회차 CB에 대해 콜옵션을 발동했으며 2023년 총 1조원 규모의 192·193회차 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갚겠다고 밝혔다.
당시 HMM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달성한 호실적 덕분에 충분한 실탄을 축적해 둔 상태였다. HMM이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기록한 2022년 말 기준 이 회사가 보유한 현금성자산(연결기준, 유동자산·유동금융자산 포함)이 12조원을 웃돌았다. 이 기간 HMM이 미상환한 CB와 BW를 모두 더한 금액인 2조7000억원을 일시에 정리하고도 남는 돈이었다.
◆ 매번 주식 전환, 배임 논란 의식…경영권 딜 규모만 18조원 추정
HMM의 콜옵션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희박한 상황이다. 이 회사가 콜옵션을 부를 때마다 번번이 실패했다는 이유에서다. 산은과 해진공이 HMM의 중도상환 예정일이 도래하기 전 전환청구권과 신주인수권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사채들의 우선순위가 사채권자에 있던 만큼 해당 CB는 전부 보통주로 전환됐다. 그 결과 HMM의 주식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이 회사의 유통주식수는 2020년 말 3억2673만주에서 지난해 말 8억8104만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그동안의 산은과 해진공 행보를 되짚어보면, 마지막 남은 CB도 보통주로 전환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총 유통주식수는 10억2504만주가 되며 산은과 해진공의 지분율 총합은 종전 67.05%에서 71.69%로 4.64%포인트(p) 상승하게 된다.
산은과 해진공이 콜옵션을 거부하는 주된 요인으로는 배임 논란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주식 전환으로 생기는 평가이익이 큰 상황에서 콜옵션 수용은 오히려 이익에 반한다는 입장이다. 산은과 해진공이 마지막 CB를 보통주로 바꾼다면 2조원에 육박하는 차익을 거두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날 HMM 종가 1만8900원 기준 해당 주식가치는 2조7000억원을 훌쩍 상회한다.
하지만 HMM의 민영화 작업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은 우려를 키우는 대목이다. HMM 대주주 지분율이 과도하게 높은 탓에 딜(Deal) 성사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197회차 CB 전환 이전을 기준으로 산은과 해진공의 HMM 주식가치는 10일 종가 기준 11조2000억원이다. 여기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붙이면 최대 15조원이다. 197회차 전환까지 완료된다면 프리미엄을 고려해 딜 규모는 약 18조원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 산은·해진공 보유분 자사주로 매입 가능성…유보금 소진 쉽지 않아
일각에서는 HMM이 지난해 말 기준 14조원으로 추산되는 사내유보금을 활용할 수 있다고 내다본다. 산은과 해진공 보유분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대주주 지분율을 낮추는 동시에 원매자의 인수 부담을 완화시킬 수 있어서다.
통상 최대주주 지분율이 30% 이상이면 안정적인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보수적인 접근으로 최대주주 지분율을 45%로 맞춘다면, HMM은 산은과 해진공이 보유한 주식 중 약 2억주를 취득해야 한다. 여기에 투입되는 현금은 3조8000억원 상당으로 추정된다. 특히 인수 후보자가 내야 할 HMM 경영권 거래 대금은 13조원 수준으로 축소된다.

하지만 이 방법 역시 실현 가능성을 예단할 수 없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해운업은 '글로벌 경기침체→물동량 감소→해상운임 하락→선박 발주 감소→공급 부족→해상운임 상승'으로 이어지는 업황 사이클을 타는데, 최근 침체기 도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HMM이 과거 해운업 불황으로 극심한 유동성 위기에 시달린 경험을 가진 만큼 철저한 현금 통제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더군다나 국내 대기업 중에서도 10조원이 넘는 HMM M&A 대금을 감당할 수 있는 곳은 손에 꼽힌다. 인수금융으로 현금을 조달해야 하는 상황인데, HMM로부터 안정적인 배당금 수취가 가능한지 등이 흥행 여부로 부상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해운사 얼라이언스 재편에 따른 HMM의 점유율 하락이 예상될 뿐 아니라 글로벌 컨테이너선 공급 과잉 심화와 물동량 위축 등 비우호적인 영업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며 "하지만 매각 재추진 로드맵을 짜는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과도하게 높은 대주주 지분율과 몸값"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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