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제47대 미국 대선에서 재집권에 성공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미국의 대선 결과는 한국 경제에 상당한 충격파를 주는 모습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미국 우선주의'를 주창하며 맹방·우방할 것 없이 관세 등을 무기로 압박해올 것이 불 보듯 뻔해서다.
대(對)미국 수출 의존도가 높은 자동차 산업의 위기감은 유독 클 수밖에 없다. 특히 자동차 수출의 대부분을 책임지는 현대자동차그룹은 더욱 불안하다. 증권가는 벌써부터 트럼프 당선인의 공약이 현실화될 경우를 가정한 시나리오를 내놓고 있다. 현대차·기아의 연간 합산 영업이익이 5조원 이상 증발할 수 있다거나, 징벌적 관세 최대치를 고려할 때 영업손실 전환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등 암울한 전망 뿐이다.
현대차그룹의 전동화 전략은 수정이 불가피하다. 트럼프 당선인이 앞서 언급한대로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폐기는 쉽지 않겠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전기차 관련 지원책을 축소할 전망이다. 민주당과 공화당 양쪽 대선 후보를 각각 후원해 온 글로벌 타 기업과는 다르게, 트럼프 당선인만을 100% 후원해 온 일론 머스크(테슬라)는 현대차그룹의 발목을 잡을 공산이 크다.
이처럼 현대차그룹을 둘러싼 대외 환경이 썩 좋지 않은데, 안방을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야당과 노동계가 노동조합에 대한 손해배상을 제한하는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의 연내 입법을 추진하고 있어서다. 노란봉투법은 합법적 파업 범위를 기존보다 넓게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지만, 역으로 기업 입장에서는 노조 측에 파업에 따른 피해 보상을 물을 수 없어 역차별 논란이 적지 않다.
현대차그룹이 매년 연례행사처럼 노사 대립을 반복하는 '파업 맛집'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걱정을 쉽사리 떨칠 수 없다. 그룹사 맏형인 현대차의 경우 2019년부터 올해까지 6년 연속 무파업 행진을 이어갔고, 기아 역시 4년 연속 노사 충돌 없이 임금 및 단체협상을 마치긴 했다. 이는 현대차·기아가 역대급 보상안을 제시한 결과다. 모처럼의 호황을 맞았는데, 임단협 결렬 시 파업을 강행하겠다고 예고한 노조를 달래야 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현대차·기아 노조가 성공적으로 임단협을 마무리하면서, 그룹사 내 다른 계열사 노조들도 성과급 청구서를 내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예컨대 현대차와 기아에 변속기를 납품하는 현대트랜시스 노조는 영업일 기준 21일간의 파업을 끝내고 일터로 복귀했다. 이 기간 동안 현대차·기아는 약 2만7000대의 생산 차질을 입었으며, 약 1조원 규모의 피해액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노랑봉투법이 처리될 경우 '파업 만능주의'가 만연해지고, 결국 현대차그룹의 위기가 될 수 있다. 현대차 노조와 기아 노조가 주장하고 있는 정년 퇴직자의 노조 자격 유지나 고용세습을 관철시키기 위해 밥 먹듯이 파업에 나서도 손쓸 도리가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체제의 귀환은 현대차그룹의 탈한국을 부추기는 명분이 될 수 있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미통령으로 누가 당선되더라도 대응이 가능하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 놨다는 입장이지만, 가장 확실하고 명확한 대응책은 '현지 생산'을 늘리는 방법 뿐이다.
트럼프 2기가 존속되는 기간이 단 4년 뿐이니, 싫든 좋든 이 시간만 버티면 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은 지금의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탈피하고 경영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해외 진출을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
글로벌 완성차 판매 2위의 폭스바겐그룹은 최근 높은 인건비 부담을 이유로 독일 현지 공장 2곳의 문을 닫았다. 현대차그룹의 한국 탈출을 두고 현실감이 떨어지는 우스갯소리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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