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미국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현대자동차그룹(현대차·기아)의 경영 불확실성이 확산하는 모습이다. '트럼프 2기' 출범으로 강력한 보호 무역주의와 자국 중심주의가 재현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직격탄을 피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제47대 미국 대통령으로 재선에 성공하면서 기존 조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 정책을 대대적으로 손 볼 전망이다. 이 같은 정책 변화는 한국 산업 전반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 보편적 관세 부과 땐 조단위 영업익 '증발'…현지 생산도 쉽지 않아
가장 먼저 보편적 관세 도입을 꼽을 수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미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국가의 제품에 원칙적으로 10~20%의 관세를 매기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중국산 수입품(60%)보다는 낮은 세율이지만, 한국 경제의 미국 무역수지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만큼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10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한국 기업의 미국 수출은 역대 10월 중 최대인 104억달러(14조5000억원)를 기록했으며, 이는 15개월 연속 월별 최대 실적이다. 자동차의 경우 지난달 전년 동기 대비 5.5% 증가한 62억달러(8조6000억원) 규모의 수출액을 올렸으며, 자동차 부품 수출 역시 5.9% 성장한 18억8000만달러(2조6000억원)로 나타났다.
글로벌 완성차 판매 3위 업체인 현대차·기아는 지난해 북미 시장에서 전년 대비 14% 성장한 총 165만대를 판매했다. 글로벌 총 판매 대수(730만대)의 23%에 해당하는 규모이며, 전체 수출 물량(597만대)의 28%에 달한다. 특히 올 들어 10월까지 누적 139만여대를 판매했는데, 사상 첫 북미 시장 점유율 10% 돌파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현대차그룹이 미국에서 판매하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나 전기차, 제네시스 등 고부가가치 차종의 대부분이 국내에서 생산된다는 점이다. 현대차그룹은 현지 생산을 지속적으로 늘려왔다. 하지만 부적합 모델이 많을 뿐더러 글로벌 생산 최적화 측면에서도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걸림돌이 적지 않다.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 부가가 현실화할 경우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IM증권에 따르면 현대차와 기아는 관세 부과에 따라 각각 매달 최대 4000억원, 2000억원의 수출 부담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투자증권은 세율이 10%일 경우 현대차와 기아의 영업이익 실적이 각각 1조6000억원, 1조4000억원씩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만약 20%의 관세가 붙으면 양사 영업이익은 3조2000억원, 2조8000억원 씩 줄어든다.
강성진 KB증권 연구원은 "트럼프 재집권으로 시장금리가 인상되거나 금리 인하 속도가 둔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완성차 판매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관세와 반(反)이민 정책이 강화되면 미국 내 물가를 상승시키고, 신차 판매를 축소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 IRA 축소 또는 폐기, 보조금 혜택↓…'밀월' 테슬라, 주도권 장악
트럼프 당선인은 조 바이든 정부의 여러 정책을 폐기할 것이라는 점은 우려를 더하는 부분이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도 전동화 전략 수정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국내 완성차 업체의 수출 불확실성이 커졌다"며 "해리스 부통령과 달리 무역 정책의 방향성을 예측할 수도 없어 '플랜B'를 세우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 당선인이 기후변화나 탄소중립에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해 온 터라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역시 당초 예상보다 더 장기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예컨대 미국 정부가 2022년 8월 발효한 인플레이션방지법(IRA)법은 바이든 대통령의 대표적인 성과로 평가받는다. 해당 법은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 세제 혜택을 지급하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인은 IRA 생산 인센티브를 축소하고, IRA 전기차 보조금을 축소 또는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강조해 왔다.
현대차그룹은 IRA 혜택을 받기 위해 미국 조지아주에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건설을 마치고, 지난달 초 시험 가동에 돌입했다. 트럼프 2기 체제에서는 미국 현지에서 전기차를 생산하더라도 보조금 혜택이 줄어드는 만큼 판매 정체가 예상된다.
미국 정부의 정책 변화는 현대차그룹의 전동화 '퍼스트 무버'(선구자) 전략에 제동을 걸 수밖에 없다. 현대차·기아는 올 들어 10월까지 미국에서 전기차 총 10만1333대를 팔았다. 이는 전년 동기보다 30.3% 늘어난 수치이며, 지난해 연간 기록(9만4340대)을 훌쩍 압도한다.
여기에 더해 트럼프 당선인이 미국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를 전폭적으로 밀어줄 것이라는 전망은 불안감을 키우는 요인이다. 테슬라 창업주인 일론 머스트 최고경영자(CEO)는 트럼프 당선인을 공개 지지하는 등 상당한 유대관계를 유지 중인데, 이에 상응하는 정책적 특혜를 줄 것이라는 시각이다.
하인환 KB증권 연구원은 "테슬라는 트럼프 정책인 전기차 보조금 축소로 오히려 시장 점유율을 상승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라며 "특히 내년 중반께 저가 모델을 출시할 예정인데, 전기차 시장 점유율 뿐 아니라 침투율까지 높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 HMGMA, 하이브리드 혼류생산 가능…원화 약세 땐 이익력↑
다만 현대차그룹이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 경쟁력을 크게 높인 상황인 데다, 외부 변수에 대한 뛰어난 대응력을 갖춘 만큼 트럼프 체제의 충격파가 단기적일 것이라는 시각도 제기된다.
현대차그룹이 HMGMA에서 전기차 뿐 아니라 하이브리드 차량을 혼류생산할 수 있도록 설비를 구축한 점은 다행스러운 부분이다. 특히 현대차그룹이 현지에서 하이브리드 경쟁력을 확대 중인 만큼 HMGMA 가동률을 일부 방어하고, 현지 판매 부진을 상쇄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현대차·기아는 지난달 미국에서 하이브리드차 2만2000대를 판매했는데, 전년 동기 대비 65% 가량 급증한 숫자다.
송선재 하나증권 연구원은 "한국 완성차 업체들은 전기차 외에도 내연기관차와 하이브리드차 등 다양한 차종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창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현대차그룹은 수익성이 높은 내연기관 물량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원화 약세 시 수익성을 일부 만회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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