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조은지 기자] 가상자산 시세를 인위적으로 조정한 혐의로 기소된 일당에게 법원이 유죄를 선고했다.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시행 이후 해당 법을 적용한 첫 판결로, 시세조종 행위의 판단 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법원은 피고인들이 자동매매 프로그램을 이용해 고가 매수와 저가 매도를 반복하고, 체결 의사 없는 허수 매수 주문을 병행해 거래량과 호가창을 왜곡했다고 판단했다. 다만 검찰이 주장한 71억원 상당의 부당이득에 대해서는 입증이 부족하다며 일부만 인정했다.
4일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4부(부장판사 이정희)는 가상자산 운용업체 대표인 이 모씨(34)에게 징역 3년과 벌금 5억원을 선고했다. 8억4656만원 상당의 추징금도 명령했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공범 강 모씨(29)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다만 법 시행 초기 사건이라는 점과 피고인들이 불구속 상태로 성실히 재판에 임한 점을 고려해 법정 구속은 하지 않았다.
이들은 가상자산 발행재단으로부터 판매를 위탁받은 ACE 코인에 대한 시세조종 주문을 내 71억원 상당의 부당이익을 챙긴 혐의를 받았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2024년 7월 22일부터 약 3개월간 ACE 코인의 거래량을 부풀려 의도적으로 시장가를 상승시켰다는 설명이다.
이날 재판의 쟁점은 이들의 거래량 부풀리기 방식을 단순 유동성 공급(LP)로 볼 수 있는지 여부였다. 재판부는 피고인 이 씨가 2024년 7월부터 약 3개월간 특정 가상자산을 대상으로 시세보다 현저히 높은 가격의 매수 주문과 낮은 가격의 매도 주문을 반복적으로 제출했다고 밝혔다. 시세 변동과 무관하게 동일한 방식의 주문이 지속됐고 이 과정에서 거래 자체로 손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는 점을 지적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A코인을 시장가보다 비싸게 매수한 뒤 곧바로 시장가보다 저렴하게 매도하는 '히트 주문'을 반복했다. A코인의 일평균 거래량은 2024년 7월 1~21일까지 약 16만개에 불과했지만 범행이 시작된 22일에는 15배가 넘는 245만개까지 급증했다.
피고인들은 고가 매수·저가 매도와 함께 체결 가능성이 낮은 대량의 허수 매수 주문을 반복적으로 제출·취소했다. 재판부는 이 같은 행위가 호가창 하단에 매수 벽을 형성해 시장 참여자들에게 매수세가 유입되는 것처럼 오인하게 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통상적인 투자 목적이라면 가격 상승 국면에서 일정 기간 보유 후 매도하는 방식이 합리적"이라며 "피고인의 거래는 시세 흐름과 무관하게 거래량을 부풀리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거래량 급증과 함께 거래가 활발히 이뤄지는 외관을 형성했고 이는 자연스러운 수요·공급에 따른 가격 형성을 왜곡한 것"이라고 밝혔다.
피고인 측은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에 '시세'의 정의가 없어 명확성 원칙에 반한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가상자산 시장에서 시세란 해당 거래소 내 수요와 공급에 따라 형성된 가격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수범자가 금지 행위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또 "여러 거래소에 가격이 분산돼 있더라도 피고인이 실제 거래한 국내 거래소의 시세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데 법리상 문제가 없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피고인들이 가상자산을 순매도해 71억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취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거래 내역과 수수료, 체결 가격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검찰측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수수료와 체결 가격 등 부당이득을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산정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일부 금액만 추징 대상으로 인정했다.
끝으로 재판부는 "가상자산 시장의 공정성과 투자자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한 범행"이라며 "인위적으로 형성된 거래 외관에 유인된 일반 투자자들에게 예측하기 어려운 손해 위험을 초래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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