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노우진 기자] 코스피 5000 시대를 맞이한 국내 자본시장이 일시적 상승을 넘어선 '구조적 대전환'의 기로에 섰다. 시장 전문가들은 인공지능(AI) 혁신에 기반한 반도체 사이클의 장기화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 지수 안착의 핵심 변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부동산에 편중됐던 자금이 자본시장으로 이동하는 머니무브를 가속화하기 위해 기업의 자본 효율성 향상과 지배구조의 투명성 확보가 시급하다는 진단이다.
3일 한국거래소는 여의도 한국거래소 홍보관에서 '코스피 5000 앤 비욘드(and Beyond, 그리고 그 후)'를 주제로 기념식 및 세미나를 개최했다. 최근 급등한 증권시장의 성과를 점검하고 전망과 과제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행사는 금융당국의 정책 기조를 확인한 1부에 이어 증권업계의 실무적 제언을 청취하는 2부 세션으로 구성됐다. 조수홍 NH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과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이 각각 지속 가능한 성장 조건과 자본시장의 경제 기여도를 주제로 발표했고 패널토론이 이어졌다.
조수홍 NH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코스피 5000 시대, 안착 및 도약을 위한 조건'을 주제로 증시 상승 요인을 진단했다. 조 센터장은 "코스피 주가 상승 요인은 크게 세 가지"라며 "반도체 중심의 이익 성장세, (새 정부의) 자본시장 정상화 정책, 글로벌 유동성이라는 삼박자가 어우러진 결과"라고 분석했다. 전날 발생한 지수 급락에 대해서는 상승 동력의 근본적 훼손이 아닌 일시적 변동성 확대라는 시각을 견지했다.
조 센터장은 이어 올해 금융시장을 관통할 세 가지 키워드로 유동성, 양극화, AI를 제시했다. 각국 경기부양 정책에 더해 국방 인프라 지출 확대와 국가적 차원의 AI 투자로 인해 유동성이 풍부한 가운데 섹터나 기업별 수익 창출 능력에 따른 양극화 현상은 심화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실제 코스피 매출과 이익 전망은 상향 조정되고 있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 이상이다. 핵심 변수는 AI 기술이다. AI 기술이 전방위적인 산업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진다면 지수의 추가 상승을 견인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조 센터장은 증시를 견인하는 반도체 섹터의 전망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현재의 투자 규모를 고려해도 2028년까지 수요가 공급을 압도하는 시장 구조가 지속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AI 기술의 보편화와 더불어 텍스트에서 비디오로 진화하는 멀티모달 모델의 확산이 수요 증가를 견인할 핵심 동력으로 꼽혔다. 조 센터장은 "신기술 탄생이 투자와 혁신을 거쳐 생산성 개선으로 이어지는 것이 하나의 사이클"이라며 "(AI 기술은) 혁신 단계를 지나 생산성 개선으로 진입하는 초입에 있어 반도체 사이클은 과거보다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주가 상승은 한국경제에 어떻게 기여하는가'를 화두로 던졌다. 코스피 5000 돌파를 한국 경제의 무게중심이 자본시장으로 이동하는 상징적 사건으로 규정했다. 이어 머니무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총량적 국부라는 관점에서는 실물자산보다 금융자산의 중요도가 높다는 설명이다. 김 센터장은 "부동산에 돈이 묶여서는 경제가 장기적으로 어렵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다"며 "주식이라고 하는 대안이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게 되면 부동산 쏠림 현상도 완화될 테고 한국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도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식시장과 실물 경기 사이의 괴리에 대해서는 글로벌 공통 현상이지만 국내의 경우 기업과 가계 간 연결고리 약화로 더 두드러진다고 진단했다. 김 센터장은 "기업 이익 증가가 임금 상승을 거쳐 민간 소비 확대로 이어져야 하지만 국내 대기업의 고용자 수는 전체 취업자 수의 14% 정도"라며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현대차 등 실적이 우량한 일부 대기업에 고용된 인원은 이보다 더 적다"고 지적했다.
다만 기업이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을 노동시장 지표만으로 재단하기는 어렵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김 센터장은 삼성전자와 애플을 대조하며 주주가치 제고 측면에서는 애플이 우위지만 실질적인 사회적 기여도와 경제적 파급력은 삼성전자가 높다고 평가했다. 김 센터장은 "애플은 벌어들인 이익 대부분을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 등 주주환원에 투입하지만 삼성전자는 막대한 설비투자를 한다"고 짚었다. 이로 인해 디스카운트되는 면이 있지만 주주가치라는 잣대 너머에 존재하는 공적 가치를 재조명해야 한다는 취지다.
두 센터장은 코스피 5000 시대 안착을 위해 자본시장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담보돼야 한다는 데 입을 모았다. 조 센터장이 강조한 자본 효율성 제고와 김 센터장이 역설한 지배구조 투명성 확보는 결국 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 글로벌 자금의 장기 유입을 유도해야 한다는 의미다. 김 센터장은 "(코스피 지수가) 1000포인트에서 2000포인트로 가는 데 18년 걸렸고, 공교롭게도 2000포인트에서 4000포인트가 되는 데도 18년이 걸렸다"며 "하지만 거버넌스 개선 등이 이뤄지면 4000포인트에서 8000포인트까지 가는 데 18년보다는 훨씬 단축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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