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우찬 기자] 고려아연이 미국 제련소 건설을 위해 10조9000억원 규모 현지 투자에 전격 나서면서 영풍·MBK 파트너스와의 경영권 분쟁도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영풍·MBK를 상대로 선전포고를 한 것으로도 평가된다. 양 쪽의 경영권 분쟁은 내년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수면 아래에 있었는데 이번 대미 투자로 수면 위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지분율 싸움에서 뒤지는 최 회장이 경영권 분쟁 와중에 미국 투자라는 변수를 끌어들이면서 경영권 분쟁의 판을 뒤집은 것으로 분석된다.
우선 이번 투자는 산업 관점에서 의미가 남다른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이 전략광물의 탈중국 공급망 재편을 위해 고려아연을 전략적 파트너로 선택한 것이다. 투자은행(IB) 관점에서는 고려아연의 이번 투자로 미국이 고려아연이 주도하는 합작법인 주주로 참여하게 되고 영풍·MBK와 벌이고 있는 경영권 분쟁도 전환점을 맞게 된 것이다. 최 회장이 미국을 파트너로 끌어들이면서 경영권 분쟁을 넘어 안보·국익 관점으로 판을 바꾼 것으로 풀이된다.
최 회장은 이사회 우위를 바탕으로 지금까지는 경영권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내년 3월 고려아연 쪽 이사 5명이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어 분쟁은 예정된 수순으로 평가됐다. 최 회장은 지분 싸움에서 열세에 놓여 있어 3월 주총이 경영권 분쟁의 분수령이었다. 9월 말 기준 최 회장 쪽은 우호세력을 포함해 32%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영풍·MBK 쪽은 44%가량의 지분율 소유하고 있다. 계산기를 두드리면 최 회장 쪽이 언제든지 경영권을 잃어버리기 쉬운 구도다.
다만 이번 미국 제련소 투자로 경영권 분쟁의 프레임이 바뀌었다. 숫자 싸움에서 뒤지는 최 회장이 명분 싸움으로 프레임을 바꿔놓았다. 국익·안보 관점의 미국 전략 동맹을 분쟁 국면으로 끌어온 것으로 평가된다. 최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리더십을 공격해온 영풍·MBK 쪽도 향후 국익·안보와 맞물려 있는 고려아연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전략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제련소 투자로 미국의 돈과 안보, 전략적 동맹이 얽혀 있는 복잡다단한 문제로 확장된 것이다. 고려아연은 제련소 건립을 위해 15일 이사회에서 2조8500억원의 3자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제련소 투자를 위해 설립되는 크루시블 메탈스 홀딩스(Crucible Metals Holdings) 투자를 위해서다. 3자배정 투자자는 크루시블 JV(Crucible JV)로 최대 출자자는 지분율 40.1%의 미국 전쟁부(U.S. Department of War)로 확인됐다. 합작사가 고려아연 주주로 등극하는 것이다.
미국 현지에 설립될 합작법인 설립과 공장 건립 등 총 사업 규모는 10조9000억원이다. 합작법인에는 고려아연과 미국 상무부·전쟁부, 미국 방산기업의 돈이 한데 얽히게 된다. 고려아연을 축으로 한국과 미국의 전략적 동맹 관계도 확대 발전하는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실제 고려아연이 국내에서 유일하게 생산하는 전략광물 안티모니는 '국가자원안보 특별법'에서 정한 핵심광물 30여개에 속해 있다. 미국 내 기업 10여곳에 공급되며 ▲철갑 저격탄 제조용 합금 ▲반도체 제조업·군사 전자 장비 ▲항공우주 분야 솔더 합금 ▲잠수함용 밸러스트 제조용 합금 등 특수 용도로 쓰인다. 특히 무기 제조 원료로 사용돼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EU) 등 주요 국가에서도 중요하게 관리하는 전략광물자원이다.
재계 관계자는 "미국기업과 전략적 협업을 이어온 고려아연이 이번 미국 현지 투자를 통해 관계를 더 공고히 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경영권 분쟁 국면에서 미국 쪽 지분은 고려아연 현 경영진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큰 것으로 해석하는 게 합리적이다"고 평했다.
영풍 쪽은 고려아연의 미국 투자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이날 "미국이 제련소 직접 투자가 아닌 고려아연 지분에 투자하는 것은 고려아연의 경영권 방어용 백기사 구조라는 점을 보여준다"며 "주주가치 훼손하는 배임이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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