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기령 기자] 난치성 뇌전증 치료제 개발사 소바젠이 자금난을 겪던 지난해 초 곽상훈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 부사장은 고심 끝에 먼저 손을 내밀었다. 기술 이전 성사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었지만 과감한 투자를 결정한 것이다. 지난해 말 에이티넘 삼성동 본사에서 만난 곽상훈 부사장은 "소바젠은 지금까지 진행한 투자 가운데 가장 과감한 도전이었다"며 "회사 주변에서도 다들 불안한 눈치였지만 기술력과 경영진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딜을 밀어붙였다"고 소회를 밝혔다.
하지만 우려하던 결과는 반년 만에 희소식으로 바뀌어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소바젠은 지난해 9월 이탈리아 제약사와 약 7500억원 규모의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고 회사는 단숨에 바이오 업계가 모두 주목하는 기술 기업으로 자리잡았다.
곽상훈 부사장은 "소바젠이 개발한 기술은 뇌전증 발작 증상에 대한 근원적 치료가 가능한 수준이었다"며 "재무적 리스크를 안고 가더라도 환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가치를 가져 벤처캐피탈(VC)이라면 그 본질적인 사명감에 맞게 반드시 투자해야 할 기술이라고 판단했고 그것이 다행히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올해 국내 바이오 기업들의 기술 이전 규모는 20조원에 육박한다. 이런 성과 뒤에는 초기 단계부터 묵묵히 자본을 공급해온 벤처캐피탈들의 역할이 있다. 에이티넘은 그중에서도 바이오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해 인투셀과 지투지바이오 등 복수의 피투자사가 증시 입성에 성공했고 아이엠바이오로직스와 넥스아이, 파인트리테라퓨틱스도 올해 상장을 앞두고 있다.
◆연구해본 사람만 아는 노하우
에이티넘 바이오 부문의 강점은 심사역 구성이다. 곽상훈 부사장을 포함한 6명의 심사역 전원이 제약·바이오 기업에서 파이프라인 개발, 임상 전략 등 실무를 경험한 전문가들이다. 1세대 바이오 벤처캐피탈리스트로 꼽히는 황창석 사장을 중심으로 곽상훈 부사장, 장찬일 상무, 백성현·김수원·노애린 수석 심사역이 한 팀을 이루고 있다. 이들은 올릭스와 유한양행, 안국약품, LG화학 등에서 연구·개발 경험을 가진 진짜 전문가들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곽상훈 부사장은 "바이오는 다른 산업처럼 매출이나 단일 수치만으로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실무 경험이 있는 인력을 심사역으로 채용한다"며 "임상 데이터를 기반으로 효과를 예측하고 임상 단계마다 어떤 데이터가 필요한지 해석하는 능력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곽 부사장 역시 서울대 약학대학 학사와 석사를 졸업한 후 LG화학(당시 LG생명과학)에 입사해 연구자의 길을 걸었다. 이후 CJ제일제당을 거쳐 LG생활건강에서는 파이프라인 기술이전 업무를 담당했다. 하지만 자본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기술도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다는 현실을 절감했다. 2016년 에이티넘에 합류하면서 본격적으로 바이오 투자자로서의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2020년에는 에이티넘 바이오 부문 대표 겸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황창석 사장의 뒤를 잇는 차세대 바이오 전문가로 평가된다.
곽상훈 부사장은 "연구자로 일하면서 기술 개발이 본질적으로 중요하지만 그를 배양하고 양육할 때 필요한 상용화 자금 지원이 어떤 시기에는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며 "그래서 VC로 전향해 꼭 필요한 기술들을 상용화하는데 도움을 줘야 겠다고 다짐하게 됐다"고 회상했다. 그는 "바이오 기업 상장은 단순히 돈을 번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며 "상장을 계기로 많은 약을 개발할 수 있게 되면 환자를 한 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다는 측면에서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투자원칙 세가지는…기술·사람·시간
곽상훈 부사장의 바이오 투자 원칙은 명확하다. 뛰어난 기술력을 갖춘 기업이 가장 우선이다. 특히 플랫폼 기술을 보유한 기업에 주목한다. 임상에서 모든 기업이 성공할 수는 없지만 플랫폼 기술이 있으면 파이프라인을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고 자본력은 투자자가 도와주면서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곽 부사장은 "기술성을 6이라고 보면 나머지 4는 사람을 본다"며 "대표이사나 경영진이 전략적 유연성을 가졌는지, 얼마나 논리적으로 기술을 설명할 수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팀과 기술을 가진 기업이라면 시장이 아무리 꺾여도 선두권에 진입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어떤 경우는 3년 이상 보고 있지만 아직 투자하지 않은 기업도 있을 정도로 한 기업을 오래 보고 투자하는 편"이라며 "시중에 떠다니는 딜 보다는 특정 질환이나 영역에 대해 미리 스터디를 해놓고 특정 기업을 만나는 식으로 투자를 진행한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한번 투자를 결정하면 후속 투자까지 꾸준히 진행하는 것도 특징이다. 실제로 에이티넘은 리가켐바이오에는 여섯 차례, 아이엠바이오로직스에는 네 차례 연속 투자를 단행했다. 인투셀에도 프리IPO 라운드를 제외한 모든 라운드에 참여했다.
◆"2026년 상반기까지 바이오 상승세 이어질 것"
곽상훈 부사장은 올해 바이오 시장에 대해 상반기까지는 긍정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코스피가 4000선을 훌쩍 넘은 것에 비해 바이오 기업이 많이 상장된 코스닥 시장은 유가증권시장의 상승폭에 달하지 못하고 있다"며 "지난해 국내 바이오 기업들의 기술이전 규모가 20조원에 달한다는 건 한국의 관련 기술력이 글로벌 시장에서 예전과 다르게 인정받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에 올해 역시 시장을 상승세를 지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미국 증시 하락이나 금리 인하 가능성 축소 등 매크로 변수가 있다면 상승은 제한적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10년 차 투자자로서 곽상훈 부사장이 추구하는 모델은 단순한 재무적 투자자(FI)에 그치지 않는다. 피투자기업과 동반자 같은 관계를 형성하고 싶다는 게 그의 목표다. 곽 부사장은 "피투자기업이 언제나 모든 걸 상의할 수 있는 친구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며 "투자를 통해 지속적으로 함께 성장하는 구조를 추구하고 사후 관리를 같이하는 게 벤처캐피탈의 존재의미"라고 말했다.
동료 심사역들에게는 "요즘 기술 이전에 성공하는 기업에만 투자가 몰리는 경향이 있는데 심사역들이 좀 더 합리적 상상력을 갖고 투자해야 한다"며 "'로우 리스크 로우 리턴이라는 보수적인 전략보다는 본인의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좀 더 선제적으로 투자하는 모험적인 정신이 늘어나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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