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윤기쁨 기자] 사실상 양자협상 방식으로 진행되던 풍산과 한화 사이의 탄약사업부 거래 협상이 풍산 측의 일방적인 노딜 선언으로 최종 결렬된 것으로 확인됐다. 마음이 바뀐 풍산 오너일가는 일단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를 원점으로 되돌린 것으로 보인다.
이번 노딜은 가격 측면의 이해관계 불일치 뿐만 아니라 국내 방산 시장의 구조적 특수성, 양사가 직면한 내부적 이해관계, 정부 당국의 규제 기조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린 결과로 분석된다. 풍산이 먼저 결렬 의사를 밝혔지만 한화 역시 다른 원매자가 없다는 판단에 따라 가격을 후려치려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투자업계에 따르면 이번 빅딜의 가장 직접적인 무산 사유로는 매각 흥행 실패와 그에 따른 가격 입장 차이가 지적된다. 탄약 사업은 국가 보안 및 전략 자산으로 분류돼 정부 승인과 엄격한 안보 심사가 필수적이고 이에 따라 해외 매각이 어려워 사실상 국내 대기업으로 선택지가 제한적이었다는 평가다.
초기 인수 후보군으로 HD현대와 LIG그룹, 현대로템, 심팩 등이 거론됐지만 대부분 최종 제안서를 제출하지 않으면서 한화가 단독 후보로 테이블에 남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풍산은 당초 경영권 승계와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해 약 1조5000억원의 기업가치 평가를 기대했다. 하지만 한화는 이보다 현저히 낮은 가격에 대금 지급 조건도 매수자에 유리한 조건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협상은 매수자 우위(Buyer's market)로 전개됐고, 경쟁자가 부재한 상황에서 풍산은 제 값을 받지 못하는 바에야 차기 기회를 노리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해 협상 중단을 선언한 것으로 보인다.
한화 역시 내부적 재무 부담과 당국의 규제 역시 결정적 변수를 부담으로 여긴 것으로 보인다. 한화솔루션 등 주요 계열사의 대규모 유상증자 결정 이후 시장에서는 주주 가치 훼손과 무리한 자본 조달에 대한 비판 여론이 고조되고 있다. 계열사 주주들의 반발이 거센 상황에서 대규모 현금이 투입되는 M&A를 추가 추진할 경우 그룹 전체의 재무 건전성과 대외 신인도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회사 안팎의 우려가 제기된 것이다. 특히 금융감독원은 한화솔루션의 증권신고서에 대해 정정 요구를 지시하며 자금 조달 일정에 제동을 걸었다. 당국의 감시망이 강화된 상황에서 논란의 소지가 있는 대형 딜을 강행하기에는 한화 입장에서 부담이 컸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심사 문턱이 높아진 점도 인수를 주저하게 만든 주요 요인이다. 풍산은 국내 탄약 시장에서 독보적인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또한 관련 무기 체계와 일부 탄약 생산 라인을 운용하고 있다. 양사가 결합할 경우 국내 탄약 공급망의 사실상 100% 독점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는 공정위의 경쟁 제한성 심사를 통과하기 까다로울 것이라는 관측이다. 가령 조건부 승인을 획득하더라도 납품 단가 인상 제한이나 특정 자산 매각 등의 고강도 시정 조치가 동반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한화 입장에서는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사업부를 인수한 효과가 사실상 상쇄되며, 결과적으로 규제 리스크 대비 기대 실익이 낮다는 판단이 한화의 인수 의지를 꺾는 결정적 요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한화그룹은 현재 유도무기, 우주항공, 인공지능 기반의 하이테크 방산 시스템 구축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풍산이 영위하는 탄약 사업은 최근 글로벌 수요 확대로 방산 수출의 핵심 품목이 됐지만, 한화 입장에서는 이를 외부에서 조달하는 것과 직접 소유하는 것 사이의 기회비용을 따질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화가 초기 인수를 검토한 목적은 포-탄 패키지 수출의 효율성과 공급망 밸류체인 확보에 있었지만, 협상 과정에서 노출된 가격적 부담과 규제 이슈가 전략적 이점을 희석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매각 결렬 이후 풍산의 행보는 더욱 촉박해질 전망이다. 이번 매각 추진의 본래 목적이 류진 회장 일가의 승계 구도 확립과 상속세 재원 확보에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최종입찰제안서를 단독으로 제출하며 유일한 원매자로 남았음에도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서 풍산의 계산은 더욱 복잡해진 모습이다. 핵심 수익원인 탄약 사업부를 유동화해 승계 자금을 마련하려던 계획이 원점으로 돌아가면서, 풍산은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새로운 우회로를 모색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다만 유력 후보였던 한화가 이탈한 상황에서 사모펀드나 제3의 후보자를 찾는 작업조차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방산 업종 특유의 폐쇄성과 보안 규제 탓에 새로운 원매자 확보에 난항이 예상되며, 사모펀드의 경우 엑시트 전략이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방산 자산을 인수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가 있다. 결국 풍산이 향후 기업 가치를 끌어올려 또 다른 인수자를 찾거나 독자적인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를 다시 짜야 하는 등 복잡한 셈법을 이어갈 것이라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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