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장수 해운사인 고려해운은 복잡한 지배구조로 유명하다. 창업주를 도와 회사를 성장시킨 2명의 전문경영인은 고려해운이 오너 2세 체제로 진입하자 주식 현물출자 방식으로 지주사를 세웠고, 경영권을 가져왔다. 하지만 고려해운은 지배구조가 완전히 정리됐다고 볼 수 없다. 고령의 창업주 2세가 상당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데다, 전문경영인 가문 간 지분 우위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딜사이트는 고려해운의 현황과 추후 과제에 대해 짚어본다. [편집자주]
[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국내 2위 해운사인 고려해운은 창업주 가문이 전문경영인들(현 오너일가)에 의해 경영권을 내려놓은 기업이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가장 많은 과실(果實)을 얻은 것은 창업주 쪽이다. 전문경영인 일가는 고려해운을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보유 주식수를 쪼갤 수밖에 없었다. 반면 창업주 가문은 주식수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매년 수백억원의 배당금을 챙기고 있다.
◆ 창업주 2세, 2004년 경영 이선 후퇴…박정석 회장 가문 '장악'
1954년 고(故) 이학철 창업주가 설립한 고려해운은 ▲한국-일본 ▲한국-중국 ▲한국-동남로 항로를 운영하는 컨테이너 정기선사다. 2000년 초반만 해도 국내 5위권에 머물던 이 회사는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해운사 파산 행렬에도 안정적인 성장세를 보여 왔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고려해운의 특이한 지배구조다. 현재 고려해운의 최대주주는 지분율 42%의 지주사 고려HC(고려에이치씨)이고, 2대주주는 창업주 아들인 이동혁 전 회장(40.87%)이다. 고려에이치씨는 창업주를 도와 고려해운을 키워온 전문경영인 고 박현규 명예회장(전 해사문제연구소 이사장)과 신태범 KCTC(옛 고려종합운수) 회장 2인의 일가가 50대 50 공동 소유한 회사로 이사회에서 실질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다. 박 명예회장과 신 회장은 국립한국해양대학교 동창이며, 사돈 관계로도 알려져 있다.
창업주와 현 오너일가 간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은 2004년 이동혁 전 회장이 경영 이선으로 후퇴하면서다. 2·3대 주주인 박씨와 신씨 가문이 전 회장을 견제한 결과라는 추측이 조심스레 제기됐다. 실제로 고려해운 최대주주는 이 전 회장이었고 ▲신태범 회장(18.2%) ▲박현규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정석 대표이사 회장(13.17%) ▲박 명예회장 차남 박주석 경희대 명예교수(12.06%) 등이 주요 주주에 올라 있었다.
물론 두 집안이 힘을 합치면 우호 지분율이 43.43%에 달하는 만큼 창업주 가문을 손쉽게 밀어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최대주주 교체는 불가능했다. 결국 2012년 고려해운을 지주사 체제로 전환시킨 것도 고려해운을 안정적으로 지배하기 위한 선택으로 해석된다. 여기에 자녀세대에 지분 승계 시 발생하는 막대한 세금 부담을 덜기 위한 목적도 고려됐을 것이란 분석이다.
두 오너일가는 기 보유한 고려해운 주식을 현물출자하는 방식으로 고려에이치씨를 세웠다. 출범 직후 이 회사 주주 구성은 ▲신태범 회장 43.3% ▲박정석 회장 24.7% ▲박주석 교수 23.8%였다. 그 결과 고려해운 지배구조는 기존 '이동혁→고려해운'에서 '신태범→고려에이치씨→고려해운'으로 바뀌게 됐다.
하지만 지배구조는 2017년 다시 한 번 변동된다. 신 회장이 기 보유하던 고려에이치씨 주식을 자녀와 친인척에게 증여했기 때문이다. 이에 지배구조는 '박정석→고려에이치씨→고려해운'로 바뀌었다. 다만 우호지분 등을 모두 고려하면 고려에이치씨 지분은 두 집안이 50대 50으로 나눠 공동소유하고 있는 상황이다.
◆ 이 전 회장, 5년간 누적 배당금 2000억…박 회장 측 고배당 수혜 '제한'
창업주 2세인 이동혁 전 회장은 1985년부터 2004년까지 고려해운 대표이사 직을 수행했지만, 경영권 위협을 받은 이후 기타비상무이사로만 이사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동혁 전 회장이 사실상 경영 전면에서 물러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고 보고 있다. 고려해운 이사회가 ▲박정석 회장 ▲신태범 회장 차남 신용화 사장 ▲신 회장 친인척 김웅한 씨 ▲박주석 교수로 구성돼 있다는 이유에서다. 전문경영인 일가로 꾸려진 이사회에서 이 전 회장이 목소리를 내기는 쉽지 않은 만큼 이 전 회장의 등기임원 직 유지는 일종의 '예우' 차원으로 풀이된다.
주목할 부분은 고려해운이 매년 고액배당을 실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려해운은 올 3월 지난해 결산실적에 대한 현금 배당으로 주당 12만5000원을 지급했다. 총 배당금 규모는 1500억원인데, 그해 벌어들인 순이익(별도 기준 5930억원)의 25% 이상을 주주에게 돌려줬다.
표면적으로 고려해운으로부터 가장 많은 배당금을 수취한 것은 고려에이치씨다. 지난해 배당금의 절반 가량인 630억원을 챙겼다. 하지만 이 돈이 고스란히 박 씨 일가 주머니로 들어가진 않는다. 고려에이치씨가 지난해 실적 보상을 위해 지급한 배당금은 주당 8만3333원, 총 210억원이었다. 이 중 박정석 회장는 52억원을, 박주석 교수는 50억원을 각각 받았다. 특히 박 회장이 고려해운 주식을 소수(2.8%) 들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두 회사에서 배당으로 확보한 현금만 94억원으로 추정된다.
개인별 배당금을 살펴보면 이동혁 전 회장이 압도적이다. 그가 고려해운에서 결산배당으로 받은 현금은 613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5년간 누적 배당금은 2000억원을 웃돈다. 지주사 전환 이후 배당금(2012~2024년)은 총 2150억원에 달한다. 더군다나 고려해운을 보유한 이 전 회장 가족이 전무한 만큼 해당 현금은 몽땅 이 전 회장에게 유입됐다.
현재 두 오너일가의 공동경영 체제가 굳건하지만 업계는 이 전 회장 지분의 향방에 관심을 두고 있다. 1947년생인 이동혁 전 회장이 여든을 바라보는 고령이지만 지분 증여 등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어서다. 지난해 말 기준 고려해운의 주당가치는 453만원으로 추산되며, 이 전 회장 지분가치는 2조2203억원이다. 상속·증여가 이뤄질 경우 1조3322억원 가량을 세금으로 납부해야 한다. 주식 대량 매도에 따른 프리미엄(20~30%)를 고려하면 최대 3조원에 달하게 된다.
한편 고려해운은 지난해 말 연결기준 매출 3조1441억원과 영업이익 4180억원을 기록하며 '12년 연속 매출 1조원, 39년 연속 흑자'를 달성했다. 선박운항능력(선복량)은 15만6031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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