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박관훈 기자] 손해보험협회가 '파라메트릭(지수형) 보험' 도입을 예고한 가운데, 국내 보험사들도 관련 상품 개발에 속속 나서고 있다. 파라메트릭 보험은 기후위기 시대의 새로운 해법으로 해외에서는 활발히 도입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다. 제도 정비와 데이터 신뢰성 확보, 소비자 보호 장치 마련 등이 선행돼야 시장 안착이 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파라메트릭 보험은 사전에 설정한 객관적 지표(기후, 항공 지연 등)가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실제 손해 입증 없이 보험금을 자동 지급하는 구조다. 손해사정 절차 없이 빠른 보상이 가능해 기후 재난 등 예측 불가능한 리스크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25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손해보험협회가 올해 초 파라메트릭 보험 도입 의사를 공식화하며 제도적 기반 마련에 착수했다. 이병래 손보협회 회장은 "기후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한 파라메트릭 보험을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손보협회는 현재 기후 지표 선정 기준, 요율 산정 방식, 공공데이터 제공 체계 구축 등을 준비 중이다. 기상청,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등과 협업해 데이터 표준화 및 API(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 연동 기술을 논의하고 있으며, 보험개발원은 이미 지수형 보험에 대한 첫 참조 순보험요율을 산출했다.
손보협회 관계자는 "작년에 보험개발원에서 산출한 지수형 보험의 첫 번째 참조순보험요율이 나왔다"며 "올해부터 삼성화재 등에서 지수형 보험이 출시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또한 지금은 환경부에서도 지수형 보험과 실무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손보협회와 환경부는 오는 2026년 도입을 목표로, 지수형 기후보험을 공동 개발 중이다. 이는 이상기후로 인해 건설 현장 일용직 근로자의 야외작업이 중단될 경우, 소득 손실을 보상하는 구조로 설계되고 있다.
보험업계에서도 일부 보험사들이 파라메트릭 보험 출시를 시작했다. 삼성화재는 올해 초 '출국 항공기 지연·결항 보상(지수형) 특약'을 선보였다. 해당 특약은 국제선 여객기가 국내 공항에서 출발할 때 2시간 이상 지연되거나 결항될 경우, 지연 시간에 따라 최대 10만원까지 정액 보상을 지급한다.
기존 항공기 지연 보장은 항공사 증명서와 대기 시간 중 발생한 비용 영수증 등 다양한 증빙이 필요했지만, 삼성화재 상품은 공공 데이터와 연동돼 지연 발생 시 자동으로 고객에게 알림톡이 전송되고, 탑승권 사진만 업로드하면 보험금이 바로 지급된다. 삼성화재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지수형 보험이 사고에 대한 빠른 대응과 복구를 위해 적극적으로 도입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KB손해보험도 지난 4월 'KB다이렉트 해외여행보험'을 개정하며 지수형 보장을 강화했다. 개정을 통해 ▲지수형 항공기 지연보장 ▲온열질환진단비 ▲한랭질환진단비 등 총 3종의 특약을 새롭게 추가했다. KB손해보험 관계자는 "앞으로도 지수형 보장과 기후 질환 보장처럼 고객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상품 개발을 지속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파라메트릭 보험이 신속성, 예측 가능성, 간편한 절차라는 장점으로 기후재난 시대에 적합한 혁신 상품이 될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지표의 정확성과 데이터 신뢰성, 소비자 이해도 부족은 주요 걸림돌로 지적된다.
송성주 고려대 통계학과 교수는 "파라메트릭 보험의 기준 지표와 지급액의 설정에서 통계적 정합성과 신뢰성이 중요하다"며 "파라메트릭 보험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데이터 관측과 수집, 전송과 관리, 분포추정과 확률계산 및 데이터 분석 등 관련 분야의 발전된 기술력을 활용할 수 있도록 적절한 인적, 물적 투자와 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지수형 보험의 활성화를 위해 보험업계도 데이터 수집과 관리를 위한 장비와 기술, 데이터 분석과 모델링 등에 투자해서 정교한 상품을 개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소비자 보호 측면에서도 과제가 남아 있다. 아직 생소한 상품 구조로 인해 보험금 지급 조건에 대한 소비자 오해가 발생할 수 있고, 이에 따른 불완전판매 우려도 제기된다. 파라메트릭 상품이 소비자 혼란 없이 보급되려면 지표 신뢰도, 사전 설명, 모집과정의 명확성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를 위해 상품 설명서, 약관 표준 예시 개발, 감독 지침 마련이 시급하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 역시 제도화 기반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그린 스완(Green Swan·기후 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 및 금융 위기)을 대비해 지수형 날씨보험을 활성화하고, 자연재해 보장상품들도 개선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올해 말까지 관련 입법 등 제도 개선 작업에도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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