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배지원 기자]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인적분할한 뒤에도 신규 상장을 5년 간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 최근 중복상장에 대한 주주가치 훼손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시장의 불신을 선제적으로 차단하려는 조치로 해석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국내 상장된 에피스홀딩스를 새로운 바이오 사업 상장 지주사로 두고 그 아래 2개의 100%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와 신설 바이오 회사를 키워 나스닥 등 미국 증시에 상장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5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삼성은 인적분할로 설립되는 신설법인 '삼성에피스홀딩스'의 정관에 향후 5년간 상장을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을 명시할 계획이다. 이는 중복상장이 가져올 수 있는 기업가치 희석 우려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공표 의지로 풀이된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주주들의 원성을 살 수 있는 물적분할 대신 인적분할을 선택한 배경에는 최근 정치권과 시장 내 형성된 반(反) 재벌 정서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인적분할은 기존 회사 주주들이 신설 회사의 주식도 기존 지분율 대로 동일하게 배분하는 방식이다. 주주는 존속법인과 신설법인의 주식을 모두 보유하게 돼 지분 희석 없이 권리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물적분할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주가치 훼손 우려를 덜 수 있다. 하지만 대주주 입장에서는 분할에 따른 자본적 실익이 당장은 없기 때문에 지주사 설립을 통한 지배구조 재편 때에 이를 주로 활용한다.
게다가 최근 자본시장에선 계열사 중복상장이나 상장 모회사를 둔 신설 자회사의 추가 상장에 대한 투자자 반감이 확산하고 있다. 정서법에 따른다면 인적분할도 '기업 쪼개기'로 비춰질 수 있어 인적분할마저도 주주들의 불만을 완전히 잠재울 무결점 해법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한국거래소가 2023년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16~2023년 사이에 진행된 45건의 인적분할 가운데 재상장 이후 존속사와 신설사를 합산한 시가총액이 분할 전 수준을 웃돈 사례는 11건(약 24%)에 불과했다. 분할 직후 시가총액이 오히려 10% 이상 줄어든 케이스도 있다. GS리테일과 GS피앤엘 분할 거래(2024년)로 이는 이른바 '분할 디스카운트'가 현실화한 사례다.
특히 모회사와 자회사가 모두 증시에 상장될 경우 이 할인 문제는 발생할 여지가 크다. 투자자들의 반발을 사 기업이 적정가치를 잃어버리는 결과다. 기업가치가 중복 계산되는 것을 우려하는 투자자들로 인해 모 회사에 대한 '지주사 디스카운트'가 발생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것이다. 모회사 가치에는 자회사 지분 가치가 포함되지만, 자회사가 상장되면 해당 지분 가치는 시장에서 별도로 평가된다. 때문에 삼성은 삼성에피스홀딩스의 자회사를 당장 5년 간은 상장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 기간 이후 상장을 추진한다면 관련 총계는 다시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실제 과거 BGF와 CU가 인적분할을 단행했을 당시, 사업 실체가 미약했던 지주사(BGF)의 가치가 하락하면서 전체 기업가치는 축소된 사례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에 신설되는 삼성에피스홀딩스의 독립 운영 능력과 자본시장 신뢰도 확보 가능성에 시장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홀딩스는 앞으로 별도의 수익원 없이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에서 받는 배당금과 수수료 수익을 기업활동의 전부로 할 것으로 보인다. 그룹의 지원이 없다면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수익으로 신약 개발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때문에 시장에서는 추후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상장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이번 분할이 주가순자산비율(PBR) 측면에서 착시를 일으키는 구조라는 점에서도 부정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대기업 한 곳이 지주회사 A사와 사업회사 B사 등으로 분할되면 자산이 늘어난 것처럼 보이는 효과가 발생한다. 지주회사 A사는 B사 지분만큼 자산이 중복 계산되기 때문이다.
다만 삼성이 장기적인 사업활동을 염두에 두고 구조를 글로벌 영업이나 자금모집, 국내적 정치 상황에 따른 고육지책을 짜낸 것이라는 해석에도 설득력이 있다. 최근 미국은 바이오시밀러 사업과 신약개발 등 관련 산업에서도 자국 우선주의를 주장하고 있다. 미국에 집중 분포한 이른바 빅파마들과 경쟁을 위해선 인재 확보나 연구개발(R&D) 자금모집 차원에서라도 현지 진출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이런 이유로 반도체 분야에서 경쟁자들에 밀려 기술 우위를 잃어가고 있는 삼성은 이재용 회장이 주창한 그룹 내 신수종 산업인 바이오테크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배수의 진을 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내 증시에 상장된 삼성에피스홀딩스는 관련 중간 지주사로 유지하더라도 본 사업을 진행하는 삼성바이오에피스와 신약개발 신설사는 미국에 두고 국제 자본시장의 도움을 받아 성장을 가속화할 거란 예상이다.
업계 관계자는 "자산가치 중복 등의 문제 때문에 미국 등 선진국은 지주회사 한 곳만 상장하기를 권고한다"며 "만약 5년 후 삼성바이오에피스가 미국 시장에서 상장한다면 삼성에피스홀딩스의 가치는 자회사 사업 내용에 따라 할증될 수도, 할인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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