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이우찬 기자] HD현대그룹의 모멘텀 중 하나로 HD현대오일뱅크 기업공개(IPO) 카드는 꾸준히 거론돼왔다. IPO에 성공하면 그룹은 신사업 확대를 위한 재원을 확보하고 HD현대오일뱅크는 악화된 재무구조를 크게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HD현대는 지난해 말 기준 HD현대오일뱅크 지분 74%를 보유하고 있다.
다만 지금까지 IPO 여정이 녹록지 않다. 앞서 3차례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모두 철수했다. IPO 카드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형국이다. 정유업 부진으로 실적 하락이 이어지면서 몸값은 5조원 이상 감소한 것으로 분석된다.
HD현대오일뱅크는 2012년 처음 IPO에 도전했지만 2개월 만에 발을 뺐다. 유럽발 재정 위기 탓에 증시가 얼어붙은 탓이다. 2018년에는 쉘베이스오일의 자회사 편입 여부를 놓고 회계처리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금융감독원 감리로 징계를 받으며 고배를 마셨다. 2021년 호실적을 앞세우며 3번째 도전장을 내밀었는데 또다시 제동이 걸렸다. 유사기업의 저평가와 국내 증시 부진이 겹쳤다.
회사 측은 상장에 거듭 도전하면서 사업포트폴리오 변화를 강조했다. 2018년에는 석유화학(올레핀) 사업을 장착하며 정유 의존도 줄이기에 주력했고 2021년에는 정부의 친환경 정책 속에 수소사업, 친환경 화학소재 등의 사업을 강조했다. 다만 석유화학 사업부문은 공급 과잉 이슈로 지난해 적자 전환했고 수소사업은 산업 측면에서 인프라 확장 속도가 늦어 의미 있는 성과를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러 차례 IPO가 좌절된 가운데 실적은 뒷걸음했다. HD현대오일뱅크의 최근 3년(2022~2024) 매출은 각각 34조9550억원, 28조1078억원, 30조4686억원으로 유지했으나 영업이익은 각각 2조7898억원, 6167억원, 2580억원으로 급감했다. 2022년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가가 폭등했던 이례적인 시기였다.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0.8%다. 올해는 관세 전쟁을 비롯한 국제 정세 불안으로 유가가 4년 만에 최저가로 떨어져 실적 부진이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몸값도 크게 낮아질 것으로 분석된다. HD현대오일뱅크는 2018년 2차 IPO 도전을 철회한 이듬해 프리IPO를 통해 지분 17%를 아람코에 1조4000억원에 매각했다. 지분 100%로 환산한 예상 시가총액은 약 8조원이었다. 이는 지분 19.9% 매각 계획을 처음 공시했을 때 산정한 예상 시총 10조원과 비교하면 2조원가량 줄어든 규모였다.
5년이 지난 지금의 몸값은 2019년 산정됐던 9조원과 비교하면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분석된다. 사업 모델이 가장 유사한 에쓰오일의 지난해 말 기준 EV/에비타(EBITDA)는 10.4배다. HD현대오일뱅크의 지난해 에비타(1조2049억원)에 에쓰오일의 10.4배를 적용한 EV는 12조5310억원이다.
여기서 순차입금을 차감한 예상 시총은 4조원에 미치지 못하는 3조9200억원가량으로 산출된다. 2019년 프리IPO 때와 비교하면 몸값이 절반 이상 증발한 셈이다. 경쟁사 에쓰오일의 시총도 2019년 말 10조7000억원에서 지난해 말 약 6조2000억원으로 4조5000억원가량 줄었다.
HD현대오일뱅크는 시장 환경이 우호적이지 않은 만큼 IPO를 급하게 타진하지 않을 것으로 파악됐다. 아람코에 지분을 팔 때도 IPO 시기 등의 조건을 달지 않은 만큼 급하게 상장을 추진할 동력도 없다. 업계 관계자는 "HD현대오일뱅크는 IPO를 당장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며 "시장 상황도 몸값을 제대로 평가받기 어렵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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