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서재원 기자] 국내 인수합병(M&A) 재무자문 시장의 주도권은 10년 만에 토종 주권을 확인하는 결과로 확연히 바뀌었다. 과거 대기업 M&A 재무자문은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 등 글로벌 투자은행(IB)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회계법인과 회계법인 출신 인사들이 이끄는 하우스들이 대기업 네트워크를 장악해 실무 키맨과 밀착하는 전략을 앞세워 시장의 중심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8일 '딜사이트 자본시장 리그테이블'에 따르면 삼일PwC와 삼정KPMG는 2025년 M&A 재무자문 부문에서 나란히 상위권을 차지했다. 삼일PwC는 자문실적 24조788억원으로 1위에 올랐고 삼정KPMG는 13조8585억원의 실적을 기록하며 3위에 안착했다. 딜사이트 리그테이블 기준으로 양사는 최근 4년간(2022~2025년) 5위 이내 순위를 유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외국계 IB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국내 재무자문 시장의 판도가 뒤집혔다는 평가가 나온다. 과거에는 높은 수수료를 감수하더라도 골드만삭스 등 이른바 알려진 일류 브랜드를 선호했다면 최근에는 회계법인들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들 회계법인은 대규모 구조조정 M&A가 늘어나는 환경 속에서 단순 자문을 넘어 거래 구조 설계와 내부 의사결정 지원까지 아우르는 패키지형 자문을 제공하며 밀착 서비스를 펼치면서 외국계 IB들을 압도하고 있다는 평가다.
실제 삼일PwC는 지난해 ▲SK스페셜티 매각(2조7000억원) ▲SK온-SK엔무브 합병(1조6622억원) ▲SK온-SK엔텀 합병(9724억원) ▲SK엔펄스 CMP 패드 사업부 매각(3361억원) 등 SK그룹의 주요 리밸런싱 거래 대부분을 수행했다. 단일 거래가 아닌 연속적인 구조조정 국면에서 그룹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강점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눈길을 끄는 점은 과거 회계법인들이 중·소형 거래를 다수 수임하는 박리다매형 전략을 펼쳤다면 이제는 규모가 크고 구조가 복잡한 조 단위 빅딜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삼일PwC가 자문을 맡은 리뉴원·리뉴어스·리뉴에너지충북 매각(1조7800억원)이 대표적이다. 해당 거래는 차입금 리파이낸싱과 재무적투자자(FI) 지분 매각이 동시에 이뤄져야 하는 고난도 구조다. 삼일PwC는 매각 개시 후 8개월 여 만에 글로벌 인프라 펀드 KKR에 매각하는 성과를 거뒀다.
회계법인 출신들이 이끄는 외국계 하우스들이 재무자문 순위 상위권에 오른 점도 주목된다. 과거에는 해외 뱅커 출신이 IB 부문 헤드를 맡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최근에는 회계법인 출신 대표를 전면에 내세워 국내 시장 밀착 전략을 강화하는 하우스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자문순위 2위를 차지한 BoA메릴린치는 2021년 박승구 전 대표 퇴임 이후 삼정KPMG 출신의 조찬희 대표가 IB 부문을 이끌고 있다. 조 대표는 취임 이후 두산공작기계, 대우건설 등 굵직한 거래를 수행하며 BoA메릴린치의 존재감을 회복시킨 인물로 평가된다. 작년에도 ▲글랜우드PE의 LG화학 수처리 필터사업부 인수(1조3940억원) ▲LG디스플레이 광저우·차이나 매각(2조256억원) 등 조 단위 거래에 참여하며 저력을 과시했다.
자문순위 4위에 오른 UBS도 지난 2023년 삼일PwC 출신 이경인 IB부문 대표가 헤드를 맡은 이후 국내 재무자문 시장의 다크호스로 부상했다. UBS는 이 대표 취임 후 에코비트, SK렌터카, 롯데렌탈 매각 등 주요 거래를 연이어 수행했으며 지난해에는 SK이노베이션의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여주·나래에너지서비스) 유동화 거래에도 참여하며 국내 자문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일각에서는 외국계 증권사들이 과도한 경쟁을 유도하며 거래 가격을 끌어올리는 방식이 한 세대를 지나온 국내 대기업들의 성향과 맞지 않게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브랜드 파워보다는 거래 실행력과 내부 이해도, 이해상충 관리 능력을 중시하는 흐름이 강화되면서 회계·재무·구조조정 역량을 동시에 갖춘 하우스들이 선택 받고 있다는 설명이다.
최근 골드만삭스·모건스탠리가 매각을 진행 중인 이지스자산운용이 대표적이다. 해당 거래의 경우 주관사가 매각가를 높이기 위해 활용한 프로그레시브 딜이 문제가 되면서 법적 공방으로 이어진 상황이다. 일단락 되기는 했지만 매각 과정에서 이지스자산운용의 주요 출자자(LP)인 국민연금의 펀드 관련 정보가 인수 후보자들에게 유출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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