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노우진 기자] 2025년 기업공개(IPO) 시장의 키워드 가운데 하나는 중복상장 논란이었다. 새로운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으로 이른바 암소 주권을 보장하고 송아지 상장을 막겠다며 중복상장 금지 기치를 내걸자 대기업 자회사 상장은 하반기 이후 완전히 틀어막혔다.
상장을 추진하던 대기업 계열사들이 줄줄이 계획을 포기하면서 시장에선 사실상 공모주 대어의 씨가 말랐다. 이런 맥락에서 IPO 업무에 주력하던 전통적인 하우스들은 적잖은 부침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탄탄한 트랙레코드를 기반으로 수임했던 빅딜이 빛 좋은 개살구가 됐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동일한 악조건 속에서도 대응법에 따라 하우스 사이의 실적 결과는 크게 차이가 벌어졌다. 현실을 인정한 미래에셋증권은 재빠르게 중대형 재고를 확보해 파고를 넘어 실속을 챙겼다. 그러나 챙겨놓은 대기업 물건을 써먹지 못하고 먼 산만 바라보던 한국투자증권은 물살에 휩쓸려 10위권 끝 부근까지 순위가 밀리는 굴욕을 맛봐야 했다는 지적이다.
9일 딜사이트가 집계한 2025년 리그테이블에 따르면 실제 미래에셋증권은 KB증권에 이어 2위에 이름을 올리며 빅딜 실종 상황에서도 선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래의 대표주관금액은 6512억750만원이고, 대표주관건수는 16건으로 오히려 경쟁사를 압도하는 실적으로 1위를 기록했다. 반면 IPO 업계에서 전통의 강호로 꼽히던 한국투자증권은 9위를 기록하는데 그쳤고, 대표주관금액도 930억7730만원, 건수는 7건에 그쳤다. 상위권 하우스 가운데 추락에 가까운 성적표를 면치 못한 것이다.
사실 미래와 한투는 둘 다 중복상장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미래는 5조원의 몸값으로 기대를 받던 DN솔루션즈는 대표 주관사였지만 모회사 DN오토모티브가 상장사라는 이유로 상장을 철회하자 닭 쫓던 꼴이 됐다. 한투 역시 롯데글로벌로지스의 대표 주관을 맡았지만 그룹 계열사라는 점이 부각되자 고배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양사는 동시에 SK엔무브의 공동 대표 주관사였는데 이 역시 SK그룹의 중복상장 논란을 겪으면서 IPO 재고로는 허수로 남겨지게 됐다.
하지만 동일한 조건 속에서도 항로는 갈렸다. 미래는 이후 체급을 가리지 않았다. 규모와 무관하게 알짜 기업 발굴에 집중하면서 차곡차곡 트랙레코드를 쌓았다. 반면 한투는 빅 딜 외길을 고집하면서 대기업 계열사에 편중된 포트폴리오라는 한계를 스스로 극복하지 못했다. 하우스 관계자는 "(한투는) 사실 하반기에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다"며 "맨데이트(주관 계약)부터 상장까지 통상 2년에서 3년이 소요되는데 기민하지 못한 전략적 판단이 성과를 갈랐다"고 지적했다.
◆ 고군분투한 미래, 올해 왕좌 탈환
미래는 지난해 유가증권시장과 코스피를 가리지 않고 다수의 상장을 이끌었다. 상반기 서울보증보험과 달바글로벌 등 대어들을 데뷔시켰고 하반기에는 더핑크퐁컴퍼니, 티엠씨, 리브스메드 등 다양한 섹터로 변주를 줬다.
미래가 이끈 흥행의 화룡점정은 에임드바이오다. 에임드바이오의 수요 예측에는 국내외 기관 2414곳이 참여했는데 가격 미제시 포함 주문의 99.9%가 희망가격 상단 이상에 들어왔다. 의무보유 확약 비율도 신청 수량의 74.2%에 달했다. 청약에서는 15조3552억원에 달하는 증거금을 모으며 기염을 토해냈다.
미래의 다음 목표는 선두 탈환이다. 미래는 2023년 1위에 오른 후 간발의 차로 2년 연속 2위에 머물렀다. 그러나 올해는 초반부터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덕양에너젠과 액스비스는 예심을 통과하고 증권신고서를 제출했다. 덕양에너젠은 올해 1호 상장을 예고했고 액스비스도 조만간 상장일을 확정한다. 코드잇, 마키나락스, 매드업, 빅웨이브로보틱스, 피스피스스튜디오 등은 청구서를 접수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올해는 사실상 김진태 본부장의 실력 검증기이다. 김 본부장은 성주완 부사장의 후임으로 지난해 IPO본부 수장에 올랐다. 사조씨푸드, 웅진씽크빅, 교촌에프앤비, 하이브 등의 상장 작업에 참여했고, 상무 승진 후에는 필에너지, 신성에스티, KT밀리의서재, 전진건설로봇, 에이치엔에스하이텍 등의 거래를 이끌었다. 지난해 티엠씨 상장 당시 중복상장 논란을 돌파하고 성공을 견인한 주역이기도 하다.
IPO본부를 책임진 이후 곧바로 성과를 내고 있다. 헤이딜러 운영사인 피알앤디컴퍼니와 생성형 AI 스타트업 업스테이지의 대표 주관 자리를 모두 꿰찼다. 두 건 모두 치열한 구술심사(PT)를 거쳐 경쟁 끝에 얻은 승리다. 최근에는 조 단위로 거론되는 HD현대로보틱스와 구다이글로벌의 입찰제안요청서(RFP)를 받아 PT를 준비하고 있다. 발 빠르게 내년과 내후년 먹거리를 확보하면서 왕좌 탈환을 위한 포석을 마쳤다.
◆ 자존심 상한 한투…조직 재정비 돌입
한투에 시급한 건 영업 재개다. 지난해 7개 기업을 상장시키는데 그치면서 슬럼프가 지속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상반기에는 항체분해약물 접합체(DAC) 분야를 선도하는 바이오텍 기업 오름테라퓨틱의 상장을 이끄는 등 순조롭게 출발했으나 하반기에는 고작 1건의 실적으로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다. 마지막 주자였던 프로티나가 수요예측에서 1199대 1 경쟁률을 기록하고 청약에서는 1797대 1의 경쟁률로 4조 7187억원의 증거금을 모으는 등 흥행한 것이 위안을 줬다는 평가다.
중복상장 논란도 인한 타격도 무시할 수 없지만 근본 원인은 조직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투는 지난해 조직개편을 거쳐 IPO 담당 부서의 몸집을 줄였다. 이 과정에서 주요 인력 이탈이 발생했다. 박성봉 IPO 부서장과 김규덕 팀장 등 총 5명은 회사를 떠나 우리투자증권으로 이동했다. IB 관계자는 "흔히 허리라고 부르는 주력 실무진이 다른 부서로 이동하면서 공백이 생겼다"며 "IPO 관련 업무는 맨파워가 중요해 인력 유출이 곧 역량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감원은 부메랑이 됐다. 발행사에는 이른바 힘 빼기라는 부정적 시그널로 읽혔다. 주관사 선정 과정에서 한투를 고려했던 한 발행사 관계자는 "IPO 조직이 다시 세팅되는 과정에서 IPO에 대한 무게중심이 많이 줄었다"며 "대표가 바뀐 후 IPO보다는 다른 사업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선회했다"고 전했다.
2년 차를 맞은 방한철 본부장의 어깨가 무겁다. 방 본부장은 2024년 말 IB1본부를 맡아 1년간 지휘했다. 플레이어로서 이력은 현대로템, 제일모직 등 굵직한 딜을 수행하며 화려하다. 적을 옮긴 후에는 마녀공장을 성공적으로 상장시켰고 현역 중에서 손 꼽히는 베테랑이다. 지휘관으로서의 역량이 관건인데 강도 높은 역량 강화를 주문한 대표와 줄어든 인력으로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본부 사이를 조율하며 성과를 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한투는 최근 데카콘(기업가치 10조원 이상) 유력 후보로 꼽히는 무신사의 대표 주관사 자리를 꿰차며 분위기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PT에 대표이사급 인사가 직접 나설 정도로 치열한 경쟁에서 얻은 값진 성과로 보인다. HD현대로보틱스와 구다이글로벌의 주관사 자리도 노리고 있다. 얼리 스테이지 기업을 집중 공략하면서 지난해 사상 최대 수준의 주관 계약을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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