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주명호 기자] 금산분리 완화가 현 정부 들어 속도를 내고 있다. 기업들의 규제 개선 요구에 대통령이 직접 화답하면서 기업형 벤처캐피탈(CVC)을 중심으로 한 제도 완화가 현실화 국면에 접어들었다. 산업 부문에서 시작된 변화가 금융권 규제 완화로까지 확산될지 주목된다.
15일 금융권 등에 따르면 금산분리 규제 완화 목소리가 수면 위로 떠오른 계가는 지난 9월 열린 국민성장펀드 국민보고대회였다. 당시 토론회에서는 대기업의 스타트업 투자 확대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금산분리 규제가 집중적으로 거론됐다.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은 "금산분리로 인해 대기업이 (스타트업에) 자유롭게 투자하지 못하고 있다"며 "CVC에 대한 금산분리 적용 제외가 필요하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일반지주회사가 CVC를 설립할 경우 지분 100%를 보유한 완전자회사 형태로만 가능하다. 외부자금 조달은 펀드 총액의 40% 이내로 제한되고, 해외투자 비중은 총자산의 20%, 차입 한도는 자본총액의 200%로 묶여 있다. 업계는 이러한 규제로 CVC에 투자할 수 있는 자금 규모가 제한돼 중장기적 성장이 어렵다고 지적한다.
정부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10월 이재명 대통령은 샘 올트먼 오픈AI 대표와의 면담 이후 금산분리 완화 검토를 공식 지시했다. 규제 완화가 무분별하게 확산되거나 독점 폐해로 이어지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전제로 하되,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현행 규제를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 같은 기조는 지난달 열린 기업성장포럼에서도 이어졌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고 있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달 20일 열린 기성성장포럼에서 "AI(인공지능) 분야의 초대형 투자를 감당할 제도가 필요하다"며 제도적 뒷받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금산분리 규제를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투자 확대를 위해 기존 규제 체계의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정부는 이러한 요구에 호응해 이달 중 금산분리 규제 완화책을 차례로 내놓을 방침이다. 앞서 지난 10일 '인공지능(AI) 시대의 K반도체 비전과 육성 전략 보고회'에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은 "금산분리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 중인데 거의 다 됐다"며 규제 완화 현실화를 언급했다.
업계의 얘기를 종합하면, 우선 정부는 첨단산업 투자 활성화를 위해 일반지주회사의 증손회사 의무 지분율을 현행 100%에서 50% 이상으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지방투자와의 연계, 공정거래위원회의 심사·승인을 전제로 한다. 정부는 이를 위해 국가첨단전략산업법에 반도체 업종과 관련한 특례 규정을 마련키로 했다.
CVC에 대한 투자 규제도 완화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40%로 제한된 CVC의 외부자금 조달한도를 50%로 상향하고, 해외 투자한도 역시 20%에서 30%로 상향시키는 개선방안이 유력하다. 이 같은 내용은 이번주 예정된 금융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의 대통령 업무보고에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권은 산업 중심의 금산분리 완화가 향후 금융사 규제 완화로 이어질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CVC 규제가 완화되면 금융사들의 모험자본 투자가 한층 활성화될 수 있다"며 "지분 규제 전반을 재검토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진옥동 신한금융그룹 회장 역시 "은행들이 더 적극적으로 모험자본 시장에 나설 수 있다"며 CVC 규제 완화에 찬성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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