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전한울 기자] 금융당국이 가상자산 2단계 법안 설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1단계 법안이 이용자 보호에 중심을 뒀다면, 2단계 법안은 발행·유통 등 시장 질서 전반에 대한 포괄적 규율을 대거 포함할 것으로 관측된다.
그동안 외국인·법인 거래 및 파생상품 등을 금지해오면서 글로벌 경쟁력이 뒤쳐졌다는 지적을 고려하면 혁신적인 후속 법안이 시급한 상황으로 비춰진다. 주요 쟁점으로 꼽히는 '스테이블코인'이나 '파생상품' 등과 관련해선 해묵은 우려보단 새 기대효과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게 시장의 시각이다.
5일 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최근 여당이 정부안 제출 기한으로 제안한 이달 10일을 목표로 '가상자산 2단계법' 세부안을 설계하는 데 매진 중이다. 가상자산 2단계 법안은 현재 시행 중인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1단계)'의 후속 법안으로, 발행·유통부터 스테이블코인 규율 등 시장 전반을 포괄적으로 규제하고 육성하는 데 목표를 둔다.
◆美 가상자산 제도화 가속에 韓 자금유출↑
이 같은 움직임은 최근 가상자산이 제도권에 빠르게 진입 중인 점과 무관치 않다. 앞서 미국 정부는 올 초 '비트코인 전략 자산화' 계획을 천명했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최근 '현지통화 기반 스테이블코인도 특정 조건 하에 현금성자산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밖에 비트코인의 현물 상장지수펀드(ETF)를 허용하면서 가상자산 수탁시장 등 저변 전반이 대폭 강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2017년 '가상통화 관련 긴급대책'을 발표하며 국부유출 및 자금세탁 위험을 원천 차단하는 데 집중해 왔다. 이에 따라 외국인·법인 거래부터 파생상품까지 금지하는 보수적 기조를 8년째 유지 중이다. 다만 이 같은 강경 기조가 외국인 투자 감소로 이어지면서 시장규모와 수요간 괴리가 커졌고, 이는 국내자금 유출로 이어졌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로 유입된 외국인 자금은 25억원에 불과하다. 이는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에 관한 법률(특금법)이 만들어진 2021년 대비 100% 감소한 수치다. 반면 해외로 빠져나가는 자금 규모는 계속 늘고 있다. 금융위에 따르면 국내에서 해외로 유출된 가상자산 관련 자금은 2023년 말 기준 27조원에서 지난해 말 76조원으로 1년 만에 2배 이상 급증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해외 가상자산 파생상품 거래 증가에 따른 수요 이전도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게 시장의 시각이다.
김재진 디지털자산거래소공동협의체(DAXA) 상임부회장은 "일반 법인의 시장 참여 로드맵과 외국인 시장 참여 여부가 중요한 상황 속에서 외국인들의 역진입이 불가해 자금이 유출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증권 시장의 경우 해외 투자자 유치를 위해 각종 규제를 폐지하고 있는 만큼 가상자산 시장에도 동등한 제도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 수탁 주체 논쟁…은행주도 vs 다양성보장
이에 따라 '발 빠른 혁신'을 향한 요구가 시장 전방위로 거세지고 있다. 관건은 가상자산 수탁 자격·기준이다. 가상자산이 수요 폭증에 힘입어 일정 수준의 신뢰·가치를 형성한 상황 속, '누가, 어떻게 관리·유통하느냐' 여부가 새 자산의 지속 가능성을 판가름하기 때문이다. 일찍이 신한은행·KB국민은행 등 5대 금융사가 가상자산 거래소들과 손잡고 가상자산 수탁업체를 구축하며 디지털 전환에 대비해 온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금융당국은 스테이블코인 발행 구조에 대한 고심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유력한 대안은 '은행 컨소시엄이 지분 51% 이상을 보유해야 한다'는 구상이다. 용이한 관리·감독·규제는 물론 금산분리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은행권 지분을 최대한 늘려야 한다는 공감대에 기반한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현행 은행법이 은행의 비금융회사 의결권 지분을 15%로 제한하는 등 기존 규제·법안과 상충하는 측면도 존재한다. 금융사업자 대상 투자에 한해선 예외를 두기도 하지만, 해당 예외가 적용되려면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의 금융사 편입 여부가 판가름나야 하는 선결과제도 있다.
한발 더 나아가 '5대 금융사 위주 구조를 타파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차세대 디지털 금융 출현에 발맞춰 관련 거버넌스에도 디지털 역량이 대폭 강화돼야 한다는 이유다. 이에 대해 안도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은행과 비은행 금융기관부터 핀테크·블록체인·디지털 유통 플랫폼 등 다양한 역량을 가진 주체가 참여하는 구조로 짜여져야 한다"며 "이 같은 다중 업권 참여 원칙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스테이블코인은 출발 단계에서부터 글로벌 경쟁력을 잃어버릴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같은 혁신 기조가 자리잡지 못한다면 해외 국가에 구조적으로 종속되는 결말을 맞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가상자산 관련 세미나에서 "영국의 영란은행은 가상자산 위험성을 인지하면서도 준비금 기준 등 적용 가능한 제도 설계를 먼저 제시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도 100% 안전자산 준비금이나 자금세탁방지(AML)·고객확인제도(KYC) 강화를 통해 해법을 찾아 나갈 수 있다"며 "진짜 위험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부재 속 위기가 닥칠 시 달러 스테이블코인에 쏠리는 상황 같은 구조적 종속"이라고 덧붙였다.
업계의 한 관계자도 "최근 비영리 법인 등에 한해 가상자산 거래가 이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조건부이며 외국인 거래는 여전히 규제 울타리에 갇혀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통 금융업계와의 이해관계를 비롯해 주식시장 규제 등과의 형평성 문제도 산적해있는 만큼, 단기간에 해결된 문제는 아니다"면서도 "자본유출 및 자금세탁을 방지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미국 주도 하에 가상자산이 빠르게 제도권에 진입 중인 만큼 발 빠른 법제화로 차세대 금융 경쟁력을 선제 확보할 필요성은 있다"고 부연했다.
한편 가상자산 2단계 법안은 내년 1월 임시국회 처리를 목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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