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전한울 기자] 금융당국이 가상자산 2단계법 세부안을 조율 중인 가운데 글로벌 스탠드로 떠오른 '미국 크립토 3법'이 모범선례로 자리매김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정의부터 신뢰·혁신성 담보 방안까지 차세대 금융 전반을 포괄하기 위한 첫 시도로 기록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선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에 대한 논의 과정에서 정체 양상을 보이고 있는 만큼 '100% 준비금', '자금세탁방지(AML)' 등 신뢰성 제고를 위한 안전장치가 적극 반영될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빠른 규제·제도 변화가 이뤄지는 신산업 특성 전반을 고려하면 규제 샌드박스 등 추가적인 제도·정책적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는 게 시장의 시각이다.
앞서 미국 하원은 최근 '크립토 3법'으로 불리는 가상자산 관련 법안 3개를 통과시켰다. 구체적으로 ▲스테이블코인 국가혁신지침법(지니어스법) ▲가상자산 명확화법(클래리티 법안) ▲중앙은행디지털화폐 감시국가 방지법(CBDC 금지 법안) 등이 포함된다. 이처럼 세 가지 법안을 한 번에 통과시키면서 스테이블코인 발행·유통·감독 등 전주기를 포괄하는 규제안 초석을 빠르게 다졌다는 평이다. 이들 법안은 스테이블코인 체계·규제·신뢰의 초석을 다지는 한편, 미국 연방준비은행의 중앙은행디지털화폐 발행 및 운영을 금지함으로써 '탈중앙화 통화' 체계를 구축하는 데 중점을 둔다.
국내 금융당국과 국회도 가상자산 2단계법 세부안 조율 과정에서 미국 크립토 3법을 적극 참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실물 경제와 빠르게 직결되는 상황 속 '글로벌 경쟁력에서 뒤처지면 안된다'는 공감대가 십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담보 자산이 미국 국채·달러로 제한된 만큼 원화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선 가상자산 규제·진흥안을 글로벌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스테이블코인 생태계를 최대한 빠르게 구축하고 팽창시켜 달러 패권을 강화해 나가는 게 목표"라며 "금융·통화 구조가 빠르게 디지털화되고 있는 상황 속 이러한 추이에 제때 편승하지 못한다면 추후 구조적 종속도 피할 순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美, 금융사 진입요건 강화해 非금융사 유도…AML 등 추가의무 부과
당장 관건은 최대 쟁점으로 떠오른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에 대한 합의 여부다. 현재 금융당국과 국회는 '가상자산 안정성 확보냐, 혁신성 강화냐'의 기로에 서있다. 안정성 확보 측면에선 '기존 은행권이 컨소시엄 지분 과반 이상을 차지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지만, 한편에선 핀테크·빅테크 참여가 제한되며 가상자산 혁신성이 크게 저하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이에 대해 미국은 금융사 진입 요건을 강화하며 비(非)금융사의 참여를 유도하는 방안을 택하고 있다. 먼저 'CBDC 금지법'을 통해 연방준비은행이 CBDC나 이와 유사한 디지털 자산을 발행 혹은 간접 제공하지 못하도록 금지한다. 이와 동시에 '지니어스법'을 통해 은행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경우 발행자를 자회사로 두도록 하거나 특정 요건을 충족한 회사를 인가해 발행하도록 한다. 스테이블코인 발행 자격 및 업무 범위 전반을 제한하는 셈이다. 은행권 참여간 진입장벽을 높여 핀테크·빅테크 참여도를 대폭 끌어올리려는 복안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추가 의무를 더해 가상자산 신뢰도를 끌어올린다. 100%의 준비금은 미국달러 혹은 단기국채로 마련해야 하며 관련 내역은 정기적으로 공개하도록 한다. 이 밖에 스테이블코인 발행자를 대상으로 자금세탁방지(AML) 등 추가 의무를 부과하고 파산시 코인 보유자의 청구권을 우선시하는 등 자산 오용·남용 가능성을 원천 방지하는 데 중점을 둔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국회에서도 '100% 준비금', '자금세탁방지' 등 규제 전반을 다듬는 데 집중하고 있다. 다만 당장 '컨소시엄 내 은행권 비중'에 대한 이견부터 좁혀지지 않으면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는 게 시장의 시각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정부는 스테이블코인을 투자자산이 아닌 결제수단으로 구분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며 "이는 곧 차세대 디지털 금융의 출현과 더불어 핀테크와 은행권의 적절한 조화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韓·美 규제 방식에 괴리…규제 샌드박스 등 제도적 지원 必
양국 규제 방식에서 발생하는 괴리 역시 변수 중 하나로 꼽힌다. 미국 산업계는 전반적으로 '네거티브' 규제 방식을 따르고 있다. 법률·정책적으로 금지한 규제가 아니면 모두 허용하는 방식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법률·정책적으로 허용한 조항 외엔 모두 금지하는 '포지티브' 방식을 널리 활용 중이다. 미국 정부가 주도 중인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움직임을 따라잡기 위해선 조속한 규제 개선이 뒤따라야 하지만, 기존 방식으론 빠른 변화에 발 맞추기 어려울 것이란 게 시장의 시각이다.
이에 규제 샌드박스 등 제도적 대안을 적극 도입해 빠른 시장 변화에 편승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규제 샌드박스는 신산업 분야에서 혁신 서비스 출현을 앞당기기 위해 일정 기간 동안 기존 법률이나 규제를 면제 혹은 유예하는 제도다.
가상자산 2단계법 현안에 정통한 복수의 관계자는 "현 지니어스법은 미국 수준의 제도 및 인프라를 기본 요건으로 하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미국 기준을 적극 참고해 나갈 필요가 있다"며 "다만 한국 규제 환경과 괴리가 커 이를 어떻게 좁혀나갈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표적으로 현행 은행법과의 충돌에 따른 발행 사업자 분류 등 세부안이 차근차근 다듬어져야 하는 상황"이라며 "미국이 스테이블코인 제도화와 유통 시점을 앞당기려 하는 만큼 우리 정부도 발 빠른 대응에 나서야 글로벌 스탠더드에 뒤쳐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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