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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증 함정'에 빠진 K-풍력…핵심 터빈, 국산 버리고 '외산'
조은비 기자
2026.03.09 08:00:17
①케이블은 '국산' 터빈은 '외산'…엇박자 행정이 만든 공급망 불균형
이 기사는 2026년 03월 09일 06시 00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이미지=챗 GPT)

[딜사이트 조은비 기자] 국내 최대 민간 시행사인 한화오션이 국산 터빈 대신 유럽산을 선택했다. 터빈 시장은 빠르게 대용량화되고 있지만, 국산 기자재가 이를 증명할 실전 기록(Track Record)을 쌓을 기회가 오랫동안 부족했던 결과다. 8조 수출 효자인 K-풍력이 정작 국내에선 데이터 미비로 외면받는 역설이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에 따르면 한화오션은 '신안우이' 해상풍력 프로젝트의 인허가 절차를 마무리하는 단계이며, 오는 4월 초 PF(프로젝트 파이낸싱) 클로징을 앞두고 있다. 한화오션은 해저케이블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국산 공급망을 선택했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해저케이블은 이번 달 중 LS전선과 정식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며, 향후 대한전선까지 공급처를 다변화해 리스크를 관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발전기의 핵심인 터빈은 국산 대신 유럽산인 베스타스(Vestas) 제품을 채택했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이에 대해 "국내 사업 지연으로 인해 국산 터빈은 아직 15MW급 대용량 실증 데이터(Track Record)가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시행사 입장에서는 조 단위 금융 조달을 위해 '검증된 제품'을 쓸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에 부딪힌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실적 공백'의 근본 원인으로 지난해 3월 해상풍력특별법(해풍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음에도 지지부진했던 정부의 세부 실행 로드맵을 꼽는다. 김상렬 한국풍력에너지학회장은 "해상풍력은 단지 개발사, 부유체 제조사, 시스템사 등 이해관계가 얽힌 '다차 방정식' 같은 SOC 사업"이라며 "정부가 장기적인 비전과 통합 가이드라인을 보여주지 못하면 각 산업군은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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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10여 개 부처의 29개 관련 법에 묶인 인허가 '핑퐁'이 장기화되면서, 국산 터빈사들은 대형 모델을 실제 바다에 설치해 신뢰성을 증명할 결정적 시기를 놓쳐왔다. 특히 신안우이와 같이 대규모 자금이 투입되는 사업은 금융권의 PF 조건이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금융사는 오직 검증된 실물 실적만을 담보로 인정하는데, 과거부터 이어진 인허가 지연으로 실증 기회를 갖지 못한 국산 터빈은 입찰 단계에서부터 '은행 문턱'을 넘기 힘든 구조적 한계에 직면한 것이다.


취재 과정에서 확인된 모 프로젝트는 인허가가 지연되는 사이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가 폭등하며 터빈 가격만 무려 1200억원이 상승했다. 비용 폭증을 견디다 못한 시행사들이 국산보다 30% 이상 저렴한 중국산 터빈이나 유럽산 터빈을 택하는 현실적인 이유다. 최근에는 중국산 부품을 국내 조립 제품으로 둔갑시키는 이른바 '택갈이' 의혹까지 불거지며 공급망 주권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세계 1위인 LS전선은 최근 동해 5공장을 준공하며 HVDC 해저케이블 생산 능력을 기존 대비 4배나 끌어올렸다. 하지만 선제적 투자로 확보한 생산 라인은 정작 '국내용'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특히 차세대 먹거리인 부유식용 '다이나믹 케이블(Dynamic Cable)'의 경우, 2020년 정부 과제로 기술 개발을 마쳤음에도 국내 실전 기록이 전무하다.


단조 부품 세계 1위인 태웅의 사정은 더욱 드라마틱하다. 베스타스, GE 등 글로벌 공룡들이 줄을 서는 태웅이지만, 정작 국내 터빈사(두산, 유니슨 등)와의 협력은 미미하다. 국내 시장 규모가 태웅의 거대한 생산 스케줄을 감당할 만큼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상렬 학회장은 "태웅 같은 거대 기업이 주력하기엔 국내 수요가 민망할 정도로 적은 상황"이라며 "규모의 경제가 안 맞고, 결국 세계 1위 부품사가 국내 프로젝트에서 소외되는 역설이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결국 한화오션이 비난을 감수하고 외산을 택한 배경에는 '사업의 연속성'과 '수익성 확보'라는 현실적 계산이 깔려 있다.


금융권의 자금 수혈을 받기 위해서는 글로벌 시장에서 검증된 베스타스의 대용량 터빈을 선택해야 하고, 사업 내부수익률(IRR)을 극대화하기 위해 검증된 최첨단 외산 모델을 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K-풍력 산업은 이미 국가 경제의 핵심 보루로 성장했다. 2023년 재생에너지 제조업 수출액은 약 8조1700억원에 달한다. 이는 2010년부터 2023년까지 13년간 원전 분야의 누적 수출액(4.6조)을 단 1년 만에 두 배 가까이 압도한 수치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해풍법 시행령이 본격 가동되며 골격이 만들어진 만큼, 이제는 디테일한 규제 해소와 SOC 차원의 국가적 투자가 뒤따라야 공급망 주권을 지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가 실질적인 실증 기회를 조속히 제공해 우리 기업들이 실전 데이터의 벽을 넘을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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