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차화영 기자] 미국 출장 일정을 잡는 건 쉽지 않았다. 현지 주재원과 인터뷰 시간을 맞추는 게 가장 큰 난관이었다. 땅은 넓고 인력은 한정돼 있다 보니 주재원의 출장이 잦았다. 때마침 워싱턴 D.C.에서 IMF 연차총회도 열렸다. 한국에서 날아온 그룹 회장단 의전과 현장 지원으로 현지 주재원들은 분주했다.
그렇게 겨우 잡은 인터뷰였다. 일로 만난 사이였다. 짧게는 30분, 길어야 두 시간 남짓. 그 시간 동안 한국계 은행의 미국 사업 현황과 전략을 듣고 현지 영업 구조와 규제 환경을 물었다. 기사에 필요한 팩트를 확인하고 숫자를 받아 적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계속 떠오른 건 정작 그런 내용이 아니었다.
시중은행의 한 법인장을 만났을 때다. 그는 미국 진출의 역사부터 영업 구조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그러다가 인터뷰 끝자락에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묻자 현지 직원들 얘기를 꺼냈다. 그는 "정말 좋은 분들을 만나서 행복하다"며 같이 일하는 동료를 향한 감사를 표현했다.
협력하는 조직 문화를 만드는 건 해외에서 사업을 이어가는 모든 기업의 고민이다. 나고 자란 곳이 달라 문화 차이가 큰 만큼 주재원과 현지 직원 사이 갈등이 생기기 쉽다.
올해 업무를 시작한 다른 시중은행 법인장은 미국에서 경력을 쌓게 된 것을 두고 "굉장히 운이 좋았다"고 표현했다. 자신의 성취를 '운'으로 돌리는 겸손함에 놀랐다. 또 해외에서 해외로 이동한 첫 사례라는 그는 후배들에게도 기회가 생길 수 있도록 좋은 성과를 내고 싶다고 했다. 단순한 경영 목표가 아니었다. 그의 말에는 후배를 생각하는 선배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뉴욕에 오기 전 해외 작은 사무소에서 혼자 근무했다던 한 주재원은 "직장생활 20년 만에 처음 혼자 일해봤는데 너무 재밌었다"며 그 시절을 돌아봤다. 고독할 법한 시간을 성장의 기회로 받아들인 것이다. 다른 시중은행 지점장도 "고민을 나눌 사람이 없어 외로울 때도 있지만 스스로 단단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들의 언행과 태도 속에서 본받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동료에게 감사할 줄 아는 마음, 외로움을 성장으로 바꾸는 자세. 후배를 위해 길을 닦는 책임감. 모두 법인이나 지점을 이끄는 리더였는데도 한 명의 직장인으로서 가진 뜨거운 인간미가 느껴졌다.
뉴욕은 생각만큼 화려했다. 밤에도 네온사인과 헤드라이트 불빛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하지만 한국계 은행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공기는 달라졌다. 화려함은 사라지고 키보드 소리, 전화 통화 소리, 서류 넘기는 소리만 남았다. 세계 금융의 심장부에서도 그들은 조용히 하루를 쌓고 있었다.
미국을 떠나 한국에 돌아온 지 일주일이 조금 넘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봤던 반짝이는 불빛과 타국 땅에서도 열정을 잃지 않고 오히려 즐겁다며 웃던 그들의 얼굴. 두 가지 이미지가 계속 떠오른다. 오늘도 묵묵히 K-금융을 지탱하고 있을 K-은행원에게 조용한 응원을 보낸다.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딜사이트 무단전재 배포금지
Ho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