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주명호 기자] 올해 역시 금융사들은 가파른 변화 속에서 올바른 방향성을 수립하는데 총력을 다하고 있다. 특히 AI(인공지능) 중심의 업무 혁신, 스테이블코인을 비롯한 디지털 자산 생태계 진입, 금융소비자보호에 대한 선제적 대응, 시장 전반에 이어진 불확실성 관리는 이제 불가결한 생존 과제로 여겨진다. 자본시장 전문매체 '딜사이트'는 이 같은 흐름을 핵심 키워드 중심으로 짚어보며 2026년 금융사 전략 지형도와 업권별 대응 방향을 집중 조명했다.
딜사이트는 11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핵심 키워드로 본 2026 금융사 전략 지도'를 주제로 포럼을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네 가지 핵심 키워드를 중심으로 금융사들의 대응·활용 전략을 종합적으로 점검하고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승호 딜사이트미디어 이사회 의장은 개회사에서 "금융산업을 둘러싼 환경 변화가 어느 때보다 가파르다"며 "이같은 변화들은 단순한 디지털화 등의 단계를 넘어 금융의 본질과 역할에 대한 재정의를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의장은 "AI를 기반으로 한 업무·의사결정 구조의 변화, 블록체인과 디지털 자산을 둘러싼 새로운 질서, 그리고 금융의 신뢰 기반을 지탱하는 제도적 과제들이 동시에 금융사를 시험하고 있다"며 "각 업권이 직면한 현실적인 과제는 무엇이며, 변화 속에서 금융의 신뢰와 안정성을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지 함께 고민하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날 포럼에는 오순영 AWS코리아 수석 솔루션즈 아키텍트, 김용태 법무법인 화우 고문, 조문희 금융위원회 금융소비자정책과장, 하건형 신한투자증권 리서치본부 매크로팀장 등 업계 전문가 및 정책 관계자들이 연사로 나섰다.
오순영 수석은 '금융 AX 트렌드 : AI 대전환 이후 금융권의 방향성', 김용태 고문은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원년, 지급결제 혁신 속 금융권 추진 전략'에 대해 강연을 진행했다. 조문희 과장은 '금융소비자보호 정책 현황 및 향후 과제'를, 하건형 팀장은 '상수된 불확실성, 2026 금융리스크와 대응 방안'을 주제로 참석자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금융 AX 성패, 운영 거버넌스가 핵심…도구 아닌 공존으로 조직체질 바꿔야"
첫 연사로 나선 오순영 AWS코리아 수석 솔루션즈 아키텍트는 최근 금융권 최대 화두 중 하나인 AX(AI 전환)에 대해 운영 거버넌스가 실질적인 금융사의 경쟁력을 좌우할 것으로 내다봤다. 단순히 AI 도입 속도만 내세울 게 아니라 운영 성숙도를 주된 경쟁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오 수석은 최근 국내 망분리 개선, 클라우드 이용 가이드 구체화 등 규제 변화를 언급하며 "최근 감독 체계의 변화는 규제 완화라기보다는 책임의 중심을 금융사로 옮기는 구조적 전환"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개별 AI 기능은 이제 거의 평준화되고 있다"며 "앞으로는 AI 운영 철학이나 책임 설계 등이 차이를 만들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AWS의 금융 특화 설계 원칙인 'FSI(금융 서비스 산업) 렌즈'를 통해 구체적인 책임 설계 방법론을 제시했다. 단순히 성능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AI의 판단 과정을 분해하고 검증하여 기록으로 남기는 '감사 가능성'이 설계의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AI를 도입할 때 흔히 매몰되는 비용과 시간 중심의 사고도 벗어나야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 운영 단계에서 나올 수 있는 질문들에 미리부터 대비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오 수석이 꼽은 핵심 질문은 ▲AI 판단의 책임자는 누구인가 ▲AI 오판 시 즉시 차단 가능한가 ▲잘못된 답변을 감지·검증하는 체계가 있는가 등이다.
오 수석은 기업이 AI를 단순히 보조 도구로 쓰는 단계를 넘어 "AI와 공존하며 함께 일하는 조직으로 체질을 개선해야 할 때"라고 제언했다. 특히 AI가 처리할 단계와 인간이 개입할 승인 지점을 촘촘하게 엮어내는 업무 흐름(워크플로우)의 맥락 설계 역량을 강조했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멀티 에이전트' 구조를 제시했다. 정보 수집, 판단 및 추천, 규정 검증 등 업무 단위를 분산해 각각의 에이전트가 수행하게 하되 최종 결정은 인간이 내리는 방식이다. 오 수석은 "개인은 결국 똑똑한 앱을 원하는 게 아니라 내가 믿고 맡길 수 있는 금융 파트너가 필요하다"며 "중요한 일들에 대해서는 사람의 클릭으로 승인되는 구조가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스테이블코인發 지급결제 재편…중앙집중형 결제망 흔들 것"
올해 금융산업의 또 다른 키워드는 스테이블코인이다. 김용태 법무법인 화우 고문은 스테이블코인을 단순한 '결제 수단'이 아닌 전통적인 지급결제 구조를 재편할 수 있는 '인프라 혁신'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제 수단이 새롭게 추가되는 수준이 아닌 기존 인프라를 대체할 수 있는 새 플랫폼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고문은 "기존 카드·계좌 기반 결제는 은행 등 다수 중개기관이 개입해 승인, 청산, 결제가 분리된 다층적 구조로 운영돼 왔지만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코드 기반 결제는 스마트컨트랙트를 통해 지급-청산-결제를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식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거래금액 대비 과도했던 정산비용도 합리화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물자산(RWA) 토큰화와 스테이블코인의 결합 역시 구조적 변화를 예고하는 요소로 제시됐다. 김 고문은 "기존 금융 체계에서는 자산 이전, 결제, 장부 기록이 각각 분리된 단계로 처리되지만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하면 거래 발생과 동시에 장부가 생성되는 구조를 구현할 수 있다"며 "이 같은 구조가 정착되면 운영 비용을 낮추는 동시에 정산 지연에 따른 리스크도 상당 부분 완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변화 속에서 금융기관의 역할도 재정의될 것으로 봤다. 그는 "앞으로 금융사의 역할은 단순한 거래 중개를 넘어 거버넌스 설계, 리스크 관리, 컴플라이언스 체계 구축 등 '신뢰 설계'로 재정의될 것"이라며 "경쟁력의 기준도 자산 규모가 아니라, 얼마나 신뢰 가능하고 통제 가능한 시스템을 설계하느냐에 달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 고문은 스테이블코인 활용에 따라 금융규제 역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내놨다. 그는 "현재는 금융사가 사후적으로 장부를 제출하고, 규제 당국이 이를 감시·감독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며 "차세대 규율 체계는 사전 차단 중심에서 벗어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실시간 모니터링 감독 방식으로 전환돼야 혁신도 함께 뒷받침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금융소비자 보호, 사전예방·사후규제 유기적 결합 필요"
세 번째 키워드인 금융소비자보호는 금융당국의 올해 핵심 현안 중 하나다. 전반적인 금융정책·감독의 중심에 금융소비자보호를 놓고 방향성을 재편하는 게 골자다. 연사를 맡은 조문희 금융위원회 금융소비자정책과장은 "금융회사가 소비자 권익보다 이익 추구에만 몰두한다는 비판과 금융 거래 관행 전반에 불공정 소지가 여전하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며 이같은 변화의 필요성과 방향성을 함께 제시했다.
조 과장은 소비자 보호 사각지대가 확대되고 있지만 현행 제도는 이를 충분히 흡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우선 지적했다. 규정 중심·균등 적용 방식의 소비자 보호 규율이 변화한 금융 환경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그는 "국내 금융소비자 보호 규율과 감독은 규정 중심의 균등 적용 성격을 띠고 있다"며 "디지털화와 판매 채널 다변화 등 환경 변화에 신속하고 유연하게 대응하는 데 구조적 제약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사전적 예방과 사후적 구제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체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게 조 과장의 진단이다. 금융위는 이를 위해 ▲금융소비자 중심 행정 ▲소비자 보호 문화 정착 ▲금융범죄 척결 ▲금융접근성 개선 ▲맞춤형 금융교육 등 5대 정책 방향과 12대 세부 과제를 세우고 추진 중이다.
금융위는 구체적으로 금융정책 설계 과정에 소비자 의견이 실질적으로 반영되도록 평가위원회를 설치하고, 소비자 보호 전담 조직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각 규제가 현장에서 실효성을 갖도록 가이드라인을 구체화하고, 기술 환경 변화에 맞춰 소비자 보호 장치를 지속적으로 점검·개선하겠다는 목표도 수립했다.
현장 체감도를 높이기 위한 대책도 내놨다. 보이스피싱 통합 대응 AI 플랫폼을 구축해 통신사와 금융권 간 의심 정보를 공유하고, 피해 예방 책임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조 과장은 "은행 점포 폐쇄 시 사전 영향평가를 강화하고 디지털 라운지와 이동점포를 확대해 대면 서비스 공백을 최소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사들이 도입한 책무구조도와 관련해서는 내부통제의 실효성 확보가 관건이 될 것으로 봤다. 조 과장은 "책무구조도의 안착을 통해 내부통제를 강화하고, 보안사고나 건전성 악화 발생 시 임직원과 대주주의 책임을 보다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경제' 정책 기조, 양극화 심화될 경우 인플레이션 리스크 더 키울 수"
마지막 연사로 나선 하건형 신한투자증권 리서치본부 매크로팀장은 인플레이션을 올해 거시경제 시장의 숨은 리스크 요인 중 하나로 지목했다. 현재 고소득층이 소비를 주도하며 경제 성장축을 지탱하고 있지만, 향후 경기가 회복되면 물가 상승에 따른 리스크가 더 크게 부각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 팀장은 미국 소비경제 상황을 예로 들며 리스크 요인을 분석했다. 그는 "최근 미국의 고용 여건은 둔화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전체 소비는 소득 상위 20%가 떠받치고 있는 구조"라며 "이들 고소득층은 근로소득 외에도 금융자산에서 추가 소득을 얻고 있으며, 특히 AI 등 첨단 산업 관련 기업 가치가 상승하면서 자산 효과(wealth effect)가 소비를 자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 소비 양극화 구조가 경기 반등 시 새로운 악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이다. 하 팀장은 "침체기에는 기업들이 재고 조정과 마진 축소를 통해 관세·원자재 가격 상승 등 비용 부담을 자체 흡수해왔지만 소비 수요가 회복되면 그간 누적된 비용을 가격에 반영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할 수 있다"며 이점이 물가상승으로 이어져 실질 구매력을 제약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양극화 심화의 배경으로는 정부의 '신경제(New Economy)' 중심 정책 기조가 지목됐다. 신경제는 IT·AI 등 기술 혁신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성장을 견인한다는 이론이다. 문제는 이러한 산업에 정책·재정·통화 지원이 집중되면서 자산 가격 상승이 특정 계층에 더 큰 혜택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하 팀장은 통화완화책을 펼치고 있는 미국을 예로 들면서 시장 신뢰를 유지하는 데 기여해 미 국채 수요를 뒷받침하지만, 통화 완화의 부작용으로 물가 상승 압력이 누적될 수 있다"며 "결국 인플레이션 부담은 경제 주체 전반에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국내 역시 '생산적 금융'을 내세운 신경제 지원 기조가 강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가 민·관 합동으로 150조원 규모의 자금을 조성해 첨단 전략산업을 지원하는 '국민성장펀드'가 대표 사례로 꼽힌다.
하 팀장은 "국민성장펀드가 실질적으로 집행되는 시기는 올해 말로, 실물 경제 효과는 내년부터 조금씩 반영될 전망"이라며 "미국의 경우 통화 완화 기대감이 한풀 꺾인 데 반해 국민성장펀드를 계기로 한국의 시장 유동성은 개선 흐름을 띨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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