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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방산' 100조 수주 호황의 착시 현상
조은비 기자
2025.12.08 08:25:13
금융·보증·수출, 장기 계약 리스크…정책 인프라 지원 시급
이 기사는 2025년 12월 05일 08시 37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딜사이트 조은비 기자] 지정학적 갈등 장기화와 각국의 국방비 확대 속에서 'K-방산'을 둘러싼 환경은 분명히 달라졌다. K9 자주포와 전차, 항공·미사일 체계까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입증하며 K-방산이라는 이름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하지만 지금의 호황이 구조적으로 지속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은 어려운 상황이다.


지표상으로 보면 K-방산은 탄탄해 보인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국항공우주산업(KAI), 현대로템, LIG넥스원을 포함한 국내 4대 방산기업의 합산 수주잔고는 100조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이 해외 수출 물량으로 단순 일회성 계약보다 수년간 이어지는 장기 프로젝트가 대부분이다. 폴란드, 중동, 동유럽 등을 중심으로 전차·자주포·항공·유도무기 체계 수주가 누적되며, 가시적인 일감만 놓고 보면 향후 수년간의 매출 기반은 이미 확보된 상태다.


문제는 항공기·전차·자주포와 같은 대형 체계는 개발부터 생산, 납품까지 수년이 걸리는 구조에 있다. 실제 방산기업 다수는 최근 실적 설명에서 "단기 수주 확대보다 기존 계약의 안정적 이행이 중요해진 국면"이라고 언급했다. 긴 사이클 동안 재고자산과 매출채권은 늘고, 자금 회수는 지연될 수밖에 없는 것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수주잔고가 많아질수록 운전자본 부담이 함께 커지기 때문이다.


수주잔고 부담은 항공 분야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현대로템은 폴란드를 중심으로 K2 전차 대규모 수출 물량을 확보하며 수주잔고를 빠르게 쌓았지만, 장기간에 걸친 순차 납품과 현지 생산 전환이라는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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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전력 체계의 특성상 초기 계약 성과보다 이후 이행 속도와 품질 관리가 더 중요해지는 국면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역시 K9 자주포를 비롯한 유럽 수출 확대에 대응해 생산능력 확충과 설비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다. 수주가 급증한 만큼, 생산·납기·재무 부담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실적 이상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집행과 관리의 부담이 커지는 국면에서 구조적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은 일부 핵심 기업의 현재 모습에서도 드러난다. KAI는 2025년 현재 수개월째 대표이사 공석 상태다. 전임 사장 퇴임 이후 5~6개월 넘게 최고 의사결정 축이 비어 있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항공·우주와 방위산업은 단순 제조업이 아니다. 한 번의 판단 지연이 수주 경쟁, 기술 개발 일정, 해외 협상 전반으로 이어진다. '공백'은 숫자로 잡히지 않지만, 시장에서 가장 빠르게 소모되는 자산인 시간만큼은 분명히 흘러간다.


전자전 항공기 도입 사업도 이같은 시간 리스크를 그대로 비춘다. 국내 최초로 추진되는 전자전기 사업은 1조8000억원대 핵심 전력 사업이지만, 체계 주도권과 역할 분담을 둘러싼 논의가 길어지며 속도는 좀처럼 붙지 않고 있다. 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본계약 단계로 이어지지는 못한 상태다. 


사업 초기 단계부터 체계 주도권과 역할 분담을 둘러싼 조율이 이어지면서, 계약 체결까지의 일정은 당초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애초 10월 중 가시적인 진전이 있을 것이란 관측도 나왔지만, 실제 절차는 보다 신중하게 이어지는 모습이다. 


전자전기는 단순한 장비 도입이 아니라 플랫폼 개조, 전자전 장비 통합, 임무 체계 설정이 동시에 맞물리는 고난도 체계 사업이다. 이 때문에 사업 초반의 역할 분담과 주도권 설정이 향후 일정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글로벌 방산 경쟁이 무기 성능을 넘어 금융·후속지원까지 묶은 '패키지'와 납기 경쟁으로 이동하는 상황에서, 전략 사업마저 제 속도를 내지 못하는 모습은 경고음에 가깝다.


수주가 늘고 계약 규모가 커질수록, 방산 산업을 떠받치는 제도와 정책의 역할도 함께 시험대에 오른다. 개별 기업의 판단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금융·보증·수출 지원, 장기 계약 리스크 관리가 동시에 작동하지 않으면 '속도'는 쉽게 발목이 잡힌다. 방산 호황의 이면에서 산업을 받쳐야 할 정책 인프라의 준비 속도는 과연 현장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고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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