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기령, 김규희 기자] 이재명 정부가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를 계획했지만 정작 정책자금을 운용해야 할 기관 가운데 대표적인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의 리더십 공백은 장기화하고 있다. 대표이사와 투자운용본부장(CIO) 자리가 모두 비어 있지만 인선을 결정해야 할 금융당국과 대통령실이 대부분 미국 관세 협상과 부동산 대책에 매몰된 터라 우선순위가 계속 밀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성장금융은 사실 공공기관운영법 제4조(공공기관)에 따르면 공공기관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설립을 주도한 금융위원회가 그동안 임원 인사추천권을 행사해 왔다. 또 사실상 설립 당시 인원이 대부분 한국산업은행에서 옮겨왔고 정부 예산 수혈창구로 국책은행이 주로 역할을 다하면서 주무 당국인 금융위가 대부분의 결정을 주도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2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성장금융은 지난 8월 말 허성무 대표의 임기가 만료됐지만 당국인 금융위는 아직 후임 대표를 선임하지 못한 상황이다. 대표이사는 물론이고 지난 3월 조익재 전 CIO가 퇴임한 이후 투자를 집행할 컨트롤타워마저 공석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허성무 대표는 연임을 원하는데 당국은 몇 가지 사유로 장고를 거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CIO 직무는 장철영 혁신금융실장이 대행하지만 중요 결정은 미룰 수밖에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 대통령 칭찬한 권대영 부위원장…인사 망설이는 까닭은
업계 안팎에서는 8월 초까지만 해도 허성무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거론됐다. 하지만 본인의 강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당국에선 연임은 불가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성장금융 임원의 경우 금융위 내에서도 부위원장이나 상임위원, 사무처장의 결정이 중요한 것으로 전해진다.
성장금융의 허성무 대표는 부임 전까지 과학기술인공제회 자산운용본부장(CIO)을 맡아왔다. 메리츠증권 상품본부장과 산은자산운용(현 멀티에셋자산운용) 부동산투자본부장을 거친 이력도 갖고 있다. 지난 2022년 2월 허성무 현 대표 등 이사 5명에 대한 선임 안건이 주주총회에서 의결될 예정이었지만 윤석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요청으로 6개월간 인사가 보류됐다. 허성무 대표는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나섰고 결국 금융위 신임으로 허 대표의 임기가 그 해 9월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허성무 대표 체제 3년간 성장금융은 다양한 한계점을 노출해왔다. 올해만 해도 2건의 모펀드 유치에 실패했다. 과기정통부 주관 5000억원 규모 기술혁신펀드에서 탈락했고, 1000억 규모의 원전 산업펀드 수주도 실패했다. 게다가 최근 지역활성화 관련해 이미 기획재정부에서 배정 받은 펀드의 소진율이 미미하다는 지적을 얻고 있다. 실제 지난해와 올해 프로젝트 투자는 한 건도 집행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재명 정부가 사활을 건 국민성장펀드 150조원 가운데 40% 가량이 지역활성화에 배정될 예정인 것을 감안하면 이런 성장금융을 당국이 믿을 수 없게 된 상황이라는 비판도 가능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민성장펀드 국민보고 말미에 150조원이나 되는 큰 자금을 잘못 운용한다면 부패의 온상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이런 맥락에서 운용역은 누가 보더라도 전문성과 시장성을 갖춘 인물로 선임돼야 하고, 운용사는 이 자금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영해야 하는데 현재 성장금융은 그렇지 못하다는 인식을 금융위가 갖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대통령으로부터 최근 연달아 칭찬을 받아 국민성장펀드 구조설계를 도맡고 있는 이억원 금융위원장과 권대영 부위원장은 성장금융이 펀드를 맡을 자격이 있는가를 걱정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 금융위 출신 서종군에서 고대인맥으로 뒤바뀐 주류
성장금융은 지난 2016년 박근혜 정부 당시 창조경제의 정책 큰 틀에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제249조의3(일반 사모집합투자업의 등록)에 기반해 금융위 주도로 설립된 투자운용사다. 2013년부터 시작된 성장사다리펀드 관리가 주된 업무로 펀드오브펀드, 즉 모펀드를 운용하는 기관이다. 김용범 현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금융위에 있을 때 주도적으로 만들었고, 김 실장이 금융위 서기관 출신의 서종군 현 부산기술창업투자원 원장을 투자본부장(CIO)으로 사실상 임명하면서 급성장했다.
하지만 2대 사장인 성기홍 대표 때부터 고려대 출신이 임원의 주류를 이루며 연세대 출신 서 원장과 불협화음을 노출했다. 이후 문재인 정부 당시 금융 펀드 운용을 한번도 해보지 못한 비전문가인 황현선 당시 유암코 감사가 뉴딜펀드 운영을 담당으로 부임하려다가 큰 논란을 일으키면서 인맥 학맥에 따른 낙하산 문제가 드러났다. 3대 사장인 허성무 대표는 고려대 출신이고, 최근 투자본부장 임기를 마친 조익제 CIO도 같은 학교를 나온 금융인이다. CIO 대행을 맡은 장철영 실장 역시 동문으로 전해진다.
성장금융은 지난 윤석열 정부 때부터 같은 배에서 태어난 산업은행에 밀리며 자금 공급자가 아니라 자금 요청자로 지위가 격하됐다는 지적을 받는다. 국회 역시 최근 공공기관도 아닌 성장금융에 수의계약 형태로 모펀드를 맡기는 것이 적절한가라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설립 당시엔 성장금융PEF가 59.21% 경영권 지분을 가졌지만 이 펀드가 지난해 6월에 해산하면서 지분이 한국증권금융과 한국거래소, 예탁결제원, 금융투자협회, 산업은행, 기업은행,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등에 분배되면서 확실한 컨트롤 타워가 부재하게 됐다는 지적도 받는다.
◆ 공정 투명한 인사로 쇄신해야…시장성 갖춘 인물 필요
이런 맥락에서 금융위가 인선을 고민하지만 공공기관이 아닌 성격과 대규모 민간 자금을 운용해야 하는 특성을 감안하면 시장성이 사람을 뽑는 기준의 우선 순위가 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 재정을 운영하는 한국벤처투자(KVIC)의 경우 민간 자금 없이 세금으로만 운영되기에 하우스가 직접 운용을 담당하는 구조이지만 150조원 규모 국민성장펀드는 민간 자금이 대규모로 참여할 예정이라 그 특성과 요구사항 등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시장과 적극 소통할 능력을 갖춘 인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문재인 정부 당시 만들어진 뉴딜펀드에서도 산업은행과 성장금융이 참여했지만 실제로는 민간을 경험하지 못한 공공기관 출신의 인사들이 운용을 담당하면서 시장의 요구를 반영하지 못한 측면이 컸던 것으로 지적된다. 이재명 정부가 만들 국민성장펀드의 경우 재정이 후순위를 받치고 은행과 연기금 등이 중순위를, 일반 국민 자금은 선순위가 되는 구조로 설계가 이뤄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 당시 뉴딜 정책에서 이미 활용한 구조이지만 당시는 규모가 20조원에 머물렀고, 이번 정부는 그 7배가 넘는 150조원을 계획한 만큼 훨씬 더 투명한 전문가 인선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벤처캐피탈(VC) 업계 관계자는 "통상 국민연금 등 연기금이나 공제회 CIO는 외부 공모를 통해 선발한다"며 "성장금융이 공공기관은 아니지만 정책자금 성격의 모펀드를 조성⋅운용하는 특성상 정부가 외부 인사 영입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 리더십 공백 신중히 메워 중장기 전략 마련해야
성장금융 임원은 임원후보추천위원회의 추천을 받아 주주총회를 거쳐 선임된다. 규정상 CEO 공백이 발생할 수 없어 허성무 대표는 후임 선임 시점까지 임시 형태로 직무를 이어갈 전망이다. 통상적으로 임기 만료 전 후임 인선 과정을 진행하지만 후임 관련 내용은 가시화된 게 없다. 성장금융 관계자는 "임추위 일정은 내부 규정상 외부에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리더십 공백이 길어지면서 정책자금 운용의 연속성과 의사결정 속도가 저하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장금융이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국민성장펀드의 핵심 운용사로 참여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리더십 공백이 장기화할 경우 정책 추진 속도에 제동이 걸릴 수 있어서다.
국민성장펀드는 5년간 총 150조원을 조성해 반도체와 인공지능(AI), 첨단소재 등 국가 전략산업에 투입하는 초대형 펀드다. 정부는 국민성장펀드를 통해 전략산업에 장기 자금을 공급해 민간 투자를 촉진할 구상이다. 정부가 75조원을 첨단전략산업기금으로 조성하고 연기금·금융회사 등 민간 자금을 75조원 매칭해 운용한다. 산업은행이 전담 조직을 설치해 운영할 방침이다.
성장금융과 산업은행은 다수의 출자사업을 함께 집행해 왔다. 아울러 산업은행은 성장금융이 운용하는 정책 모펀드의 주요 출자자이기도 한 만큼 산업은행이 주축이 된 국민성장펀드 운용에 있어서 성장금융의 역할이 클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대표와 CIO가 모두 부재한 임시 체제에서는 중장기적 투자전략을 세우거나 대규모 정책펀드 관련 의사결정을 신속히 내리기 어렵다"며 "정책펀드 조성 일정이 촉박한 만큼 인선 공백이 길어질수록 운용 방향성에도 불확실성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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