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최지혜 기자] OK금융그룹의 상상인·페퍼저축은행 인수·합병(M&A)이 결렬 위기에 처하면서 금융당국의 저축은행 M&A 활성화 정책에 찬물이 끼얹혔다는 지적이 나온다. OK금융이 먼저 인수 의향을 밝힌 페퍼저축은행뿐 아니라 금융당국으로부터 지분매각 명령을 받은 상상인저축은행마저 쉽게 최종 계약에 이르지 못하고 있어서다.
저축은행업계에선 인수가격을 무리하게 낮추려는 OK금융의 공격적 협상 전략 탓에 매물로 나온 저축은행의 과도한 몸값 하락과 함께 M&A 분위기를 위축시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상상인그룹은 OK금융에 상상인저축은행 매각 협상 중단을 통보했다. 양 사는 당초 상상인저축은행 매각가격(1082억원) 조율을 마치고 주식매매계약(SPA) 체결을 앞두고 있었으나 고용승계 등 세부적인 사안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현재 상상인그룹은 복수의 인수 후보자와 협상을 벌이며 최종 조건을 검토 중이다. 인수 후보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없지만 사모펀드(PE)와 비금융사업자 등으로 알려졌다.
주목할 부분은 금융당국의 매각명령으로 M&A 성사가 절실한 상상인그룹이 먼저 OK금융에 협상 중단을 요청했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업계에선 상상인저축은행의 몸값을 과도하게 깍으려고 한 OK금융에 귀책 사유가 있다고 지적한다. 상상인그룹 입장에선 과도한 매각가격 축소로 추가 인수 후보자와 M&A 판을 새롭게 꾸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상상인그룹과 OK금융 간 조율된 상상인저축은행의 매각가격을 봐도 저평가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상인저축은행의 올해 1분기 말 자기자본은 2279억원으로, 매각 가격에 적용된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47배에 불과하다. 과거 다올저축은행(PBR 0.9배), 대한저축은행(1.4배), JT저축은행(1.2~1.4배) 등의 사례와 비교하면 크게 낮은 수준이다.
상상인그룹은 최저 PBR 0.8배 수준을 희망해왔다. 통상 저축은행은 자기자본에 더해 영업구역의 입지에 따라 웃돈을 얹어 매각하는 것이 관례다. 더이상 저축은행 추가 인가가 나지 않아 희소성이 있는 데다, 고유의 영업구역에 대한 프리미엄이 붙기 때문이다.
최근 성사된 저축은행 M&A도 비슷한 기조 하에 가격이 형성됐다. 지난달 KBI국인산업이 인수한 라온저축은행의 경우 지분 100% 기준 113억원 수준에서 매각가가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PBR 1.04배를 적용받은 가격이다. 라온저축은행은 경북지역을 영업구역으로 둔 저축은행이다.
특히 경기·인천 등 수도권 영업권을 가진 상인저축은행의 매력도가 높지만, OK금융은 고용승계 등 임직원 처우에 관한 협상에서도 법적 최소 범위에만 합의하려는 입장이다. OK저축은행은 수도권에서 서울만 영업구역으로 확보해 상상인저축은행을 인수하면 수도권 전체로 세를 확장할 수 있다.
가격 외에도 상상인저축은행의 실적 회복세 역시 M&A 판이 뒤집힌 요인으로 꼽힌다. 상상인저축은행은 지난해 부실을 대거 털고 올해 상반기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이미 올해 1분기 112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하며 실적 턴어라운드에 성공했다.
다만 상상인그룹과 OK금융 모두 협상 결렬을 확정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양측의 얘기를 종합하면, 상상인저축은행 매각 협상이 중단된 것은 맞지만 협상 결렬을 선언하지 않고 있어서다. 상상인그룹 관계자는 "아직 매각 논의가 이어지는 중"이라고 말했다. OK금융 관계자 역시 "매각자의 의사가 더 중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금융당국 역시 협상 결렬 보고를 받지 않았다는 점도 이 같은 관측에 힘을 보탠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상상인저축은행 매각 관련 보고사항은 없었다"며 "통상 매각 중간단계에서보다는 확정 이후 보고되며, 당국에서 먼저 묻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M&A를 추진하는 기업들이 금융당국을 이용하는 것 같아 유쾌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업계에선 가격을 무리하게 깎으려는 OK금융의 태도가 변하지 않으면 M&A 성사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상상인저축은행의 경우 상상인그룹의 자율적 선택이 아닌 금융당국의 지분매각 명령으로 M&A가 추진되고 있음에도 과도하게 낮은 매각가로 협상이 지연됐다는 시각이다.
저축은행업계 관계자는 "상상인저축은행은 대주주의 법적 문제로 매물로 나왔지만 저축은행으로서는 손색없는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며 "OK금융이 협상에 우위를 점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도 상상인저축은행 몸값은 이례적으로 낮게 잡혔다는 게 중론"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평가는 OK금융이 상상인저축은행과 동시에 M&A를 추진하고 있는 페퍼저축은행의 인수가격 협상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당초 2000억원대 매각가가 거론됐으나 최근 SPA 체결을 앞두고 최종 1900억원대로 매각가가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페퍼저축은행의 올해 1분기말 자기자본(2948억원)을 고려한 PBR은 0.64배다.
금융당국은 저축은행 M&A 활성화를 위해 규제를 완화하고 업황 개선을 지원해 왔으나, OK금융의 과도한 가격 인하 전략으로 시장 분위기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저축은행업계 다른 관계자는 "대형 저축은행을 보유한 금융그룹의 M&A 사례가 드문 만큼 OK금융의 이번 인수가격은 향후 저축은행 전반의 몸값 책정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과도한 가격 깎기로 이번 협상이 결렬되면 시장 활성화를 위해 저축은행 M&A 규제를 완화했던 금융당국의 눈초리를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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