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에서 퇴직연금 제도가 2005년 12월 처음 시행된 이후 20년이 지났다. 그동안 국내 퇴직연금 시장은 적립금 기준 400조원을 넘었고 2040년 1000조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듯 빠르게 성장 중인 퇴직연금 시장을 놓고 다양한 금융 분야의 쟁쟁한 기업들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에 딜사이트는 개별 금융사들이 퇴직연금 사업을 어떻게 진행해 왔는지, 앞으로 어떤 전략을 펼칠 것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딜사이트 이규연 기자] 증권사가 최근 퇴직연금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관련 사업자로 등록하지 않은 중·대형 증권사도 있어 눈길을 끈다. 개인고객 비중이 큰 퇴직연금 시장의 특성상 리테일(개인금융)이 비교적 약한 증권사의 경우 수익성 확보가 쉽지 않다는 점이 고려된 결과로 풀이된다.
27일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에 따르면 증권사 14곳이 현재 퇴직연금 사업자로 등록한 뒤 관련 자산관리 및 운영관리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2024년 국내 증권업계 자기자본 1~20위 안에 이름을 올린 중‧대형 증권사다.
이는 자기자본 1~20위 증권사 중 퇴직연금 비사업자가 6곳에 달한다고 볼 수 있다. 메리츠증권(6위), 키움증권(9위), 교보증권(11위), IBK투자증권(16위), BNK투자증권(17위), 유진투자증권(20위) 등이다.
다만 키움증권은 올해 안에 퇴직연금 사업자로 등록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메리츠증권 등 5곳은 퇴직연금 사업자 등록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증권업계에서는 퇴직연금 특성상 리테일(개인금융) 영업에 속하는 만큼 이들 증권사에서 사업을 영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퇴직연금 사업에 따른 장점이 없다고 보는 셈이다.
예컨대 메리츠증권은 최근 리테일 사업을 강화하고 있지만 전통적으로 IB(투자은행) 강자로 불렸다. 연결기준 2024년 3분기 누적 순이익은 5452억원으로, 이 중 IB사업부문 비중은 42.9%(2340억원)에 이를 정도다. 반면 리테일사업부문 비중은 5.1%(280억원)에 불과하다.
교보증권과 IBK투자증권, BNK투자증권, 유진투자증권은 규모가 비교적 작고 주식위탁매매(브로커리지)나 자산관리(WM) 등 리테일 사업이 강하지 않은 편이다. 교보증권은 2005년 퇴직연금 도입 당시 사업자로 등록했다가 2014년 자진 취소하기도 했다.
골든브릿지증권(현 상상인증권), SK증권 등도 퇴직연금 사업자로 등록했다가 자진 취소했다. 이들 역시 리테일 사업부문이 상대적으로 약하고 다른 사업에 강점을 지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퇴직연금도 개인 근로자의 자산을 관리하는 점을 고려하면 리테일 사업이라고 볼 수 있다"며 "리테일에 강하고 근로자에게 친숙한 브랜드를 보유한 증권사일수록 퇴직연금 사업에서도 강점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퇴직연금 사업자는 자사 퇴직연금 계좌에 들어온 적립금을 운용하는 업무 등을 수행한다. 퇴직연금 사업자로 등록하지 않은 금융사도 퇴직금 재원이 투자되는 금융상품을 제공할 수 있지만 계좌 개설을 통해 자사 상품을 직접 판매할 수는 없다.
퇴직연금 시장에서는 개인 근로자가 퇴직연금 계좌 적립금을 직접 운용할 수 있는 DC형(확정기여형)과 개인형IRP(개인형 퇴직연금)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이 때문에 높은 인지도와 리테일 역량을 갖춘 중‧대형 증권사가 유리한 분야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기업평판연구소가 최근 내놓은 올해 2월 기준 증권사 브랜드 평판 빅데이터 분석결과에 따르면 1~9위를 모두 퇴직연금 사업자인 증권사가 차지했다. 특히 1위인 미래에셋증권은 2024년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 기준으로도 증권업계 선두를 차지했다.
증권업계 퇴직연금 적립금 2~5위를 살펴봐도 3위 한국투자증권, 4위 삼성증권, 5위 NH투자증권은 모두 대형 증권사이자 브랜드 평판 5위 안에도 이름을 올렸다. 퇴직연금 적립금 2위인 현대차증권도 브랜드 평판 8위로 비교적 규모가 작은 증권사치고는 높은 순위에 올랐다.
현대차증권의 경우 현대차그룹의 퇴직연금 물량을 쥐고 있다는 특이점도 고려해야 한다. 현대차증권의 2024년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 17조5152억원의 77%를 현대차그룹 계열사 물량이 차지한 것으로 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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