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태웅 기자] 국내 원화거래소 간 예치금 이용료율 경쟁이 사실상 마침표를 찍었다. 금융당국이 이용료율을 4.0%로 상향 조정한 빗썸에 제재를 가하면서다. 당국은 가상자산업감독규정에 따라 각 거래소가 예치금 이용대가를 지급할 때 자기부담금을 얹어 주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시장은 예치금 이용료율의 상한선이 사실상 운용수익률까지 정해진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29일 가상자산 거래소 업계 한 관계자는 "예치금 이용료율 여파가 이렇게 오랫동안 이어질 것이라곤 업계에서도 생각지 못했다"며 "금융당국이 개입하면서 사실상 이용료율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마련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원화거래소가 이용료 일부를 자기 부담할 수 있는 상황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당국에서 사전에 가이드라인(상한선 규정)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치킨게임으로 번질 수 있는 경쟁 양상을 사전에 방지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원화거래소 내부에서 이 같은 평가가 나오는 이유는 빗썸의 이용료율 정책과 무관치 않다. 빗썸은 지난 23일 이용료율을 2.2%에서 4%로 1.8%포인트 상향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4%의 이용료율은 실명확인 입출금 계좌 제휴를 맺고 있는 NH농협은행이 2%를 지급하고 나머지 2%는 빗썸이 부담하는 방식이다.
올해 1분기 기준 빗썸이 보유한 현금성 자산(단기 금융상품 포함) 규모는 2조3033억원이다. 이용자 예치금과 손실보존금으로 사용이 제한된 1조7570억원을 제외하더라도 5463억원의 현금을 가용할 수 있다. 여기에 빗썸이 보유한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가상자산의 가치는 1130억원에 달한다. 활용 가능한 유동성이 6000억원을 웃도는 만큼 빗썸이 어느 정도 손실을 감내하더라도 높은 이용료율을 책정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빗썸이 제시한 이러한 정책은 금융당국의 제재로 반나절 만에 철회됐다. 금융감독원은 규정상 원화거래소가 이용료를 추가로 부담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가상자산업감독규정 제5조(예치금이용료)를 보면 '가상자산사업자(거래소)는 예치금이용료 산정기준 및 지급절차를 마련하고 이에 따라 이용자에게 예치금의 이용대가를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적으로 이용료가 예치금을 운용해 얻은 대가를 지급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래소가 추가로 부담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이다. 금융감독원은 이 같은 관점에서 빗썸 외 다른 원화거래소도 이용료율을 합리적으로 책정하고 있는지 재검토하라고 주문한 상태다.
원화거래소 업계는 금융당국의 개입으로 이용료율 상한선이 명확해진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이용료를 예치금 운용 수익 안에서 지급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이용료율 또한 예치금의 운용 수익률을 넘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이는 국내 증권사들이 금융투자협회에서 마련한 '투자예탁금 이용료율 산정 모범규정'에서 규정하고 있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금융투자협회의 모범규정 제4조(투자자예탁금 이용료율 산정)에 따르면 회사는 예탁금으로부터 발생하는 운용수익과 직·간접 비용을 감안해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이용료율을 산정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회사는 총 비용을 세부항목으로 구분하고, 각 비용별로 예탁금과 연관 정도를 판단한다. 연관정도에 따라 비용을 직접 및 간접비로 구분하고 이를 이용료율 산정 시 전액 또는 비율 배분한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법 취지에 따라 예치금 이용료율이 합리적으로 산출했는지를 빗썸뿐만 아니라 다른 거래소에도 재검토하라고 이야기했다"며 "증권사들도 투자자 예탁금을 운용 수익 범위 내에서 지급하고 있는 것처럼 (금리 등에 따라) 이용료를 지속적으로 지급할 수 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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