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서재원 기자] SK와 두산이 실트론 빅딜을 성사한 배경에 과거 대한상공회의소 수장 전승 과정과 오너가 사이의 신뢰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박용만 전 상의 회장으로부터 회장직을 넘겨받으며 정·재계 중심에 섰고, 이 과정에서 상당한 직·간접적 이익을 누려 그에 대한 답례가 필요했을 거란 평가다. 한국을 지탱해온 양대 그룹과 오너가 사이의 교감이 자칫 껄끄러울 수 있던 오너의 지분 문제를 매끄럽게 풀어내고 있다는 설명이다.
1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두산은 SK실트론 인수를 위한 실사 작업을 상당 부분 마무리하고 매각 지분에 포함되지 않는 최태원 회장의 지분 약 30%를 어떻게 예우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르면 이달 중 양측이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양사는 SK실트론 기업가치를 4조원~5조원 수준에서 협의 중으로 알려졌다.
앞서 SK는 지난해 12월 SK실트론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두산을 선정했다. SK는 지난해 4월부터 매각을 추진했지만 인수 후보자들과 기업가치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그러던 중 두산이 인수전에 전격 뛰어들며 거래가 급물살을 탔다. SK는 반년 넘게 협상을 이어온 한앤컴퍼니와 두산이 각각 제시한 조건을 저울질한 끝에 두산을 선택했다. 일각에서는 최 회장의 SK실트론 잔여 지분 29.4%를 둘러싸고 그룹 총수 간 협상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최 회장이 두산 측 제안을 수용하면서 빅딜이 성사됐다.
업계에서는 이번 거래의 배경으로 과거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 전승 과정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거론한다. 최 회장은 지난 2021년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의 추천을 받아 대한상의 회장으로 추대됐다.
당시는 국정농단 사태 여파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위상이 급격히 추락하고 반대급부로 대한상의가 재계를 대표하는 최대 경제단체로 부상하던 시기다. 이 같은 환경 변화 속에서 최 회장은 상의 회장직을 통해 상당한 반사이익을 누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정부·국회·재계를 잇는 공식 소통 창구를 확보하며 정책 논의의 중심에 섰고 대한상의 회장 자격으로 경제사절단을 이끌며 정부의 해외 순방길에 수차례 동행했다. 지난 2024년 연임에 성공하면서 올해 본격 가동되는 국민성장펀드 등 대규모 정책 자금 논의 과정에서도 상의 회장으로서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실제 국민성장펀드의 첫 메가프로젝트 투자처로 SK하이닉스가 추진 중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전경련과 달리 대한상의는 전통적으로 4대 그룹(삼성·SK·LG·현대차)과의 인연이 깊지 않았다. SK그룹 역시 그룹 총수가 대한상의 회장직을 맡은 것은 최 회장이 처음이다. 반면 두산그룹은 대한상의와 각별한 인연을 맺어온 대표적 기업집단으로 꼽힌다. 박두병 초대 회장을 비롯해 박용선·박용만 전 회장이 대한상의 회장을 역임했다. 전문경영인 출신인 정수창 전 회장까지 포함하면 두산그룹에서만 네 명의 상의 회장을 배출했다.
최 회장 입장에서는 박용만 전 회장의 추천을 통해 상의 회장직을 넘겨받으면서 계산하기 어려운 직·간접적 이득을 얻었다는 평가다. 특히 내란혐의를 받아 재판을 받고 있는 윤석열 전 대통령 시절 뿐만 아니라 탄핵 이후 들어선 이재명 정부에서 최태원이 회장이 예우를 받는 배경에는 대한상의 회장 타이틀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전경련이 유명무실해진 가운데 대한상의는 과거 경제5단체 가운데 유일하게 정치권과 소통하는 재계의 소통창구로 평가된다. 최태원 회장은 특히 개인사와 이혼소송 문제로 어려움을 겪던 와중에도 상의 회장직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재계의 요구 뿐만 아니라 반도체 산업의 아이콘이 된 SK그룹의 애로사항을 정부에 직간적적으로 전달해왔다. 업계 관계자는 "SK와 두산 간에 지난 5년간 충분한 교감이 형성돼 왔고 이번 SK실트론 인수 과정에서 박정원 두산 회장과 최태원 회장이 먼저 신뢰를 형성하면서 실무진의 협상을 원활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두산은 박용만 전 회장 재임 시절 주류기업에서 중공업 중장비 업종으로 그룹의 주력 업종을 전환했다. 하지만 최근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가장 유망한 산업 분야인 반도체 진출을 위해 절치부심하며 최근까지 두산테스나를 중심으로 반도체 수직계열화를 추진해왔다. 그러나 관련 산업에서 유력한 캐시카우가 없던 찰나에 최태원 회장이 구축해온 관련 산업 네트워크에 올라탈 기회를 얻은 것은 서로에게 득이 될 거란 평가다.
최태원 회장은 본인의 실트론 지분 30% 가량을 남기는 구조를 통해 적잖은 이익을 누릴 것으로 보인다. 두산이 향후 SK실트론 경영권을 확보한 뒤 투자를 통해 기업가치를 끌어올릴 경우 중장기적으로 최 회장이 보유 지분을 더 높은 가격에 정리할 수 있는 여지가 열리기 때문이다. 최태원 회장 입장에서는 리스크는 제한적으로 지고 주가 상향의 기회는 같이 가져가는 구조가 되는 셈이다.
SK 관계자는 그러나 "대한상의 전임, 후임 회장 관계와 SK실트론 지분 매각 관련 논의는 전혀 무관하다"며 "SK실트론 인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은 제안가격, 인수조건 및 미래 성장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 결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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