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배지원 기자] 금융감독원이 기업공개(IPO) 시장에서 상장심사 과정의 영향력을 한층 높이고 있다. 금감원의 최근 심사 방향이 밸류에이션 산식 전반을 직접 점검하는 형태로 진화했다는 설명이다. 금감원이 특정 밸류를 문제 삼아 정정 요구를 공시하도록 한 사례가 늘면서 시장에서는 형식은 정정 요구이지만 사실상 당국이 공모가 결정 구조에 개입하고 있다는 평가다.
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금감원은 최근 반도체 설계 스타트업 세미파이브에 비교기업군 밸류가 높다는 이유로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구했다. 또 바이오 기업 알지노믹스에는 두 차례나 보완을 요청했다. 삼진식품 역시 비교기업·PER·밸류 구조를 사실상 다시 작성해야 하는 상황을 맞기도 했다. 당국이 특정 기업의 밸류에이션 수준을 문제 삼는 정정 요구를 공시하도록 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정정 사례들은 이러한 흐름을 더 분명하게 한다. 기술특례상장에 도전하는 큐리오시스는 해외 비교기업 적용이 PER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신고서를 수정했다. 당초 PER 27.10배에서 23.68배로 낮춰 다시 산출했고, 이에 따라 기관 수요예측 일정도 10월 말로 밀렸다. 비교기업군 구성과 비교 기준 차이만으로 금감원이 정정 요구를 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확인된 셈이다.
금감원은 이달 5일 세미파이브, 6일 알지노믹스에 각각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했다. 세미파이브는 정정 사유가 공개되지 않았으나 투자자 판단을 저해할 정도의 불명확 기재에 해당하는 것으로 분류된다. 알지노믹스는 두 번째 정정 요구를 받은 사례다. 앞서 기술수출 가정 기반 추정 손익과 관련 안내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두 차례에 걸쳐 보완했지만 동일한 핵심 쟁점이 다시 제기됐다. 시장에서는 "금감원이 단순 문구 보완이 아니라 구조적 근거를 다시 검토하라는 신호를 주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정정 요구가 공시되면 해당 기업은 수정 내용을 반영한 정정신고서를 다시 제출해야 하고, 이후 효력발생까지 통상 15일의 대기기간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수요예측·일반청약·배정 일정이 일제히 밀린다. 일정 지연이 반복되면 상장은 예상 시기를 넘길 수도 있고, 자금조달 적기를 놓칠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식품기업 삼진식품 사례도 최근 금감원 심사 기조를 보여주는 지점으로 꼽힌다. 회사는 올해 3분기 누적 실적을 기준으로 재무지표를 다시 작성하며 정정신고서를 제출했다. 비교기업군의 PER이 19.17배에서 26.80배로 상승했지만 최초 평가가치를 유지하는 대신 상대 할인율을 키우는 선택을 했다.
시장에서는 금감원이 시장 가격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기존 공식이 사실상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는 반응이다. 비교기업군 구성, 주가수익비율(PER) 계산 방식, 기준 실적 산정 등 공모가 형성의 핵심 요소에 대한 지적이 반복되고 있다. 실질적인 공모가 레벨 조정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초 IPO 투자위험요소 기재요령을 개정해 잠정실적과 재무지표, 비교기업군 등 공모가 산정 근거의 기재 기준을 크게 강화했다. 잠정 매출과 손익, 영업환경 변동 전망까지 의무적으로 기재하도록 하면서 정정·기재보완 기준도 세세하게 마련했다. 이 조치 이후 상장 준비 기업에 대한 정정 요구가 늘고 있다. 가격 판단 권한은 없지만 개정안이 밸류에이션 구조를 다시 점검하도록 만드는 효과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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