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주연 기자] 미국 정부가 쏘아 올린 상호 관세로 TV 시장의 공급망이 재편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시장으로 수출되는 TV의 경우 미국과 무관세 협정을 맺은 멕시코에서 생산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관세 불확실성으로 대규모 투자가 이뤄졌던 베트남 법인의 경우 미국 상호 관세가 20%대로 책정되면서 과잉 생산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에 베트남에서 미국 외 유럽, 신흥시장으로 수출되는 제품의 생산을 담당하게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관세로 인해 미국 시장에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사실상 제한된 만큼 삼성전자·LG전자도 유럽, 신흥국 시장에서 경쟁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중국 업체가 저가 공세로 밀어붙이고 있는 만큼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글로벌 지배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업계에 따르면 미국 관세 부과 이후 LG전자와 삼성전자의 멕시코 생산 라인이 북미 시장을 위한 주요 생산 거점으로 거듭나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멕시코에서 생산하는 물량만으로는 북미 시장의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올해 트럼프 정부가 상호 관세 정책을 내세우자 한국 기업 등이 기민하게 멕시코 법인의 생산량을 올렸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멕시코 케레타로와 티후아나 공장에서 북미 시장에 판매하는 세탁기, TV, 모니터 등을 생산하고 있다. 용석우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VD)사업부장(사장)은 지난 4월 열린 기자회견에서 "삼성전자 TV 대부분은 멕시코에서 생산한다. 관세 영향은 경쟁사 대비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LG전자는 레이노사, 몬테레이에서 TV와 냉장고 등을 생산하는데 마찬가지로 멕시코 생산 비중 확대를 통해 상호 관세 부과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한국 기업뿐 아니라 중국 기업들도 '메이드 인 차이나' 딱지를 떼기 위해 멕시코 TV 생산 물량을 늘린 것으로 파악된다. TCL은 멕시코 몬테레이에 위치한 생산 시설에 대형 TV 라인 3개를 증설하는 등 선제적 대응에 나서며 TV 생산량을 늘렸다. 로사리토에 TV 생산 공장을 보유하고 있는 하이센스도 멕시코 내 북미용 TV 생산을 늘린 것으로 파악된다.
업계 관계자는 "관세 관련 발표 후 90일간의 유예 기간 동안 많은 제조사들이 생산능력(캐파)을 확대하고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 등과 파트너십을 맺는 등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현재 멕시코 생산량만으로 미국 시장의 수요를 감당하기엔 충분하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북미 시장의 TV 수요는 총 4750만대였다. 그러나 TV 제조업체의 멕시코 생산 캐파는 4460만대로, 부족한 수요의 일부를 중국·베트남 생산을 통해 메워왔던 것으로 파악된다. 올해는 멕시코 캐파가 늘어나면서 약 4780만대의 TV 생산이 가능해졌고 미국 시장의 수요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업계 관계자는 "멕시코도 미국 관세를 해결하기 위한 완벽한 해법은 아니다. 노동력 부족과 물류비 상승이 새로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관세를 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워낙 크기 때문에 주요 TV 제조사들은 멕시코를 북미 시장의 '핵심 생산 거점'으로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관세 불확실성으로 TV 제조업체들이 중국 대신 차세대 생산 법인으로 지목했던 베트남의 경우 제품이 과잉 생산되는 형국을 맞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베트남의 경우 중국 생산 법인을 대체할 지역으로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꾸준히 투자해왔다. 게다가 상호 관세 발표 전 멕시코에도 25%의 관세가 부과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업체들이 베트남으로 생산 물량을 옮긴 결과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베트남에 미국 상호 관세 20%가 부과되면서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으로 관세 0%인 멕시코보다 불리한 위치를 점하게 됐다. 업계 관계자는 "베트남의 경우 중국을 대체할 생산지로 꼽혔지만 기본 3.9% 관세에 90일 유예 기간 동안 10%의 추가 관세가 부여됐다"며 "이에 따라 베트남 공장도 미국 시장을 위한 생산지로서의 매력이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업계에서는 향후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이 베트남 공장 생산 물량을 유럽과 중동, 신흥국 시장으로 돌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TV 공급망이 미국을 겨냥한 멕시코 공급망, 유럽과 신흥 시장을 겨냥한 베트남 중심 공급망으로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TV 업체들이 베트남의 잉여 생산 캐파를 활용해 생산 물량을 무관세인 유럽연합(EU) 시장으로 보낼 가능성이 크다"며 "다만 글로벌 TV 시장에서 새로운 수요 상승 이벤트를 찾아보기 어려운 만큼 유럽, 신흥국 시장에서의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이라고 했다.
게다가 관세 여파로 미국 시장의 TV 시장 성장이 제한되면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유럽, 신흥국, 중남미 시장의 파이를 확보하기 위해 나설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제는 저가 공세로 무장한 중국 기업들이 해당 시장에 빠르게 침투하고 있다는 점이다.
프리미엄 TV 시장의 경우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여전히 강점을 갖고 있지만 신흥국·유럽 시장이 가성비와 준수한 성능을 중시하는 시장인 점을 고려하면 중저가 볼륨존에서는 TCL과 하이센스의 우세가 예상된다는 분석이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TCL의 유럽 시장 TV 출하량은 전년(2023년) 대비 25~30% 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관세로 인해 미국 시장의 성장이 제한되면서 유럽, 신흥국, 중남미 시장에 자원을 재배치했다"며 "그러나 이 지역에서는 이미 중국 업체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더 이상 예전처럼 절대적인 지위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 "중국의 공세는 단기 현상이 아니며, 저가 라인으로 진입해 빠르게 점유율을 늘리고 있다"며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프리미엄 라인을 유지하기 위해 투자를 지속하고 있지만 관세·비용·환율 등 모든 요인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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