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전한울 기자] 최근 SK텔레콤에 닥친 전대미문의 해킹 사태는 오만의 결과일까 태만의 폐해일까. 이 회사가 지난 22년 동안 '통신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켜오면서도 기본적인 정보보호 투자는 소홀히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오만과 태만 사이 그 어딘가에 서있는 듯 하다.
그 결과는 더할 나위 없이 침울하다. 해킹 사태 이후 26만명이 넘는 가입자가 물밀 듯이 빠져나갔고, 주가 역시 10% 이상 하락했다. 이 과정에서 20년 이상 서비스를 이용해 온 충성고객도 타 통신사로 이동하는 현상이 감지되고 있다. 기업을 향한 신뢰가 흔들리면서 20여년간 이어져 온 '통신왕국' 근간이 뿌리채 휘청이는 상황이다.
과거 해킹사태를 겪은 바 있는 KT·LG유플러스가 정보보호 투자를 늘리는 동안 SK텔레콤이 관련 투자를 소홀히 해온 점을 고려하면 당분간 비난의 화살은 온전히 회사를 향할 것으로 보인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유심 보유량이 교체 수요를 한참 하회하는 등 미흡한 사후대응이 이어지면서 고객들의 배신감은 한층 쌓이고 있다.
이에 일부 소비자들은 SK텔레콤과 대대적인 소송전을 예고하고 나섰다. 보안기술 문제가 사회·국가적 이슈로 번지기까지 불과 한달이 채 걸리지 않은 셈이다.
물론 정보보호 투자액을 늘리는 자체가 완벽한 보안을 담보하진 않는다. 하지만 새 먹거리인 인공지능(AI) 투자에 매몰돼 기초를 저버렸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일례로 그동안 시장에선 5G 품질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지만, SK텔레콤은 관련 투자를 지속적으로 줄였다. 5G 부문이 성숙기에 접어든 뒤 가입률이 둔화하면서 품질 투자 필요성이 크게 낮아진 이유로 풀이된다. 5G 이용자들을 '잡은 물고기'로 여긴다는 날선 비판이 제기되는 까닭이기도 하다.
기업 입장에선 수익성 위주의 경영은 당연한 일이다. 상장 기업의 최우선 목적은 주주가치 창출에 있기 때문이다. 다만 기초를 저버린 경영은 수익성은 물론 장래성까지 앗아가는 독으로 돌아올 뿐이다.
시장 일각에선 이번 해킹사태가 통신 인프라를 필수로 하는 'AI 신사업'에도 일부 타격을 가할 것이란 가능성까지 우려하고 있다. 보안이 생명인 'AI 시대'에서 기업 브랜드가 한층 중요한 요인으로 부상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가 남기는 시사점은 분명하다. 업계를 장기간 쥐락펴락하는 퍼스트무버일지라도 기초 투자없는 신사업은 부실한 기반 위의 모래성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견고한 기반 투자로 고객 안전성과 사업 안정성을 우선 확보하는 것이 지속 가능한 밸류업의 첫 걸음이라는 교훈을 통신업계는 되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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