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조은비 기자] "과거에는 중국에서 만든 '밀키트(전구체)'를 수입해 요리했다면, 이제는 우리가 직접 농사지은 '원재료'로 흑백요리사처럼 직접 요리(배터리 제조)를 시작하는 겁니다."(배터리 업체 고위 임원)
1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막한 '인터배터리 2026'은 역대 최대 규모인 14개국 667개사가 참여한 가운데 '중국 없는 공급망(Supply Chain)'을 향한 K-배터리의 기술 독립 의지가 눈에 띄었다. 특히 전구체 시장을 장악한 중국의 그늘에서 벗어나 원료부터 최종 제품까지 국내에서 해결하는 '기술 주권' 선언이 잇따랐다.
엘앤에프(L&F) 부스의 핵심 키워드는 '자체 소싱'이었다. 엘앤에프는 세계 최초로 구현한 '95% 울트라 하이니켈' 양산 기술과 더불어 이번 전시에서 'Fe2O3 공법 기반 3세대 및 초고밀도 LFP' 개발 현황을 최초 공개하며 비중국 공급망 구축 의지를 다졌다.
엘앤에프 관계자는 "LS와의 합작사인 'LS-L&F 배터리 솔루션(LLBS)' 공장이 올해 상반기 셋업을 완료하고 3분기 양산에 들어간다"며 "기존 NCM은 엘앤에프가, 저가형 LFP는 '엘앤에프 플러스'가 담당하는 듀얼 전략으로 중국산 전구체 배제는 물론 가격 경쟁력까지 확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LS 그룹 역시 7개 계열사의 역량을 집결한 통합 배터리 생태계를 선보였다. 특히 LS MnM 울산 공장에서 직접 정제한 니켈·코발트·망간이 LLBS로 공급되는 수직 계열화 구조는 이번 전시에서 K-배터리의 핵심 경쟁력을 입증했다. 현재 시운전 중인 울산 공장은 올해 하반기 본격 가동될 예정이다.
LS MnM 관계자는 "최근 휴머노이드 로봇, 드론 등 '피지컬 AI' 시장이 커지면서 배터리 보안이 국가 안보와 직결되고 있다"며 "중국산 부품이 섞일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데이터 해킹 위험을 원천 차단하는 순수 한국형 모델은 미국 등 글로벌 OEM 사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비 분야에서는 '인터배터리 어워즈 2026' 수상 기업인 ㈜티더블유(TW)가 독보적인 기술력을 과시했다. 티더블유는 배터리 적층(Stacking) 공정에서 기술적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구조와 제어, 메커니즘을 전면 재설계한 초고속 설비를 공개했다.
현재 중국 장비의 표준 적층 속도가 헤드당 0.4초 수준인 데 반해, 티더블유는 이를 0.2초로 단축하며 생산성을 정확히 2배 끌어올렸다. 티더블유 관계자는 "중국 업체들은 헤드 숫자를 늘려 덩치를 키우는 방식으로 속도를 맞추려 하지만, 이는 공장 부지 비용 폭증으로 이어진다"며 "단일 헤드 자체를 고속화해 설비 사이즈를 소형화한 티더블유의 기술은 공장 건설비와 운영비를 동시에 줄여 중국의 저가 인건비 공세를 무력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장에서 만난 업계 관계자는 "이번 전시회는 K-배터리가 단순한 제조를 넘어 제조 알고리즘과 원료 자립이라는 '권력'을 선점했음을 보여주는 자리"라고 평가했다.
물리적인 장비와 원료의 자립을 넘어, 공장을 운영하는 '지능'의 국산화도 이번 전시의 핵심이다. LG CNS는 배터리 제조 공정에 AI 기술을 접목한 'AX(AI 전환) 솔루션'을 전면에 내세웠다.
배터리 테스트를 위해 사람이 수 시간 동안 입력하던 복잡한 시뮬레이션 설정(레시피)을 AI가 즉시 생성하고, 1년치 방대한 테스트 데이터를 분석해 보고서를 만드는 데 소요되던 일주일 이상의 시간을 '보고서 초안 자동 생성'을 통해 획기적으로 단축한다.
LG CNS 관계자는 "설계부터 제작까지 처음부터 국산 기술로 개발된 설비"라며 "단순히 가격이 싼 중국산 설비와 달리, AI를 통한 고도의 데이터 분석 밸류를 제공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K-배터리의 기술적 열기는 기록적인 참관객 수로도 증명되고 있다. 지난해 총 참관객 수가 약 5만명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올해는 개막 첫날에만 이미 5만2000명을 넘어선 상태다. 현재 현장에서 사전 등록과 현장 등록이 실시간으로 계속 진행 중인 점을 고려하면, 역대 최다 관람객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올해는 배터리 3사 최고경영자(CEO)들이 모두 불참하고 개막식에 산업부 장관이 아니라 차관이 참석하면서 예전과 같지 않은 분위기도 느껴졌다. 배터리 산업이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에 직면하고 글로벌 점유율도 과거 50% 수준에서 현재는 17~18% 수준까지 떨어지면서 행사 무게감도 많이 약해졌다는 평가다.
배터리 3사의 경우 CEO를 대신해 김우섭 LG에너지솔루션 전무, 최익규 삼성SDI 부사장, 박기수 SK온 미래기술연구원장이 참석했다. 이밖에 채대석 LS일렉트릭 대표, 최문호 에코프로비엠 대표, 허재홍 엘앤에프 대표, 고려아연 김기준 부사장 등도 VIP투어에 함께했다.
국내 배터리 3사의 최고경영자(CEO)들은 수주를 위한 유럽 등 해외 출장의 이유로 불참했다. 지난해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사장과 최주선 삼성SDI 사장이 행사 첫날 기자들과 약식 문답을 나눈 것과는 대조적이다. 올해는 엄기천 포스코퓨처엠 사장이자 신임 배터리산업협회장이 나선 것이 전부다.
엄기천 사장은 "(배터리 3사 CEO들이) 원래는 다 오기로 했으나 업계가 어려운 상황에서 수주를 하러 해외 출장을 가면서 참가가 어렵게 됐다"며 "수주를 해 오면 오히려 업계에 더 도움이 되니 생태계에 대해 너무 염려하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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