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은 더 이상 단순한 기계가 아니다.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국가 안위와 경제 주권을 지킬 전략 자산이자, 꺼져 가는 제조업에 다시 불을 지필 유일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글로벌 로봇 전쟁의 골든타임을 사수할 마지막 승부수는 결국 낡은 규제를 걷어낸 '특구(特區)'에 있다. 이에 딜사이트는 테슬라 '옵티머스'와 맞붙을 현대차그룹 '아틀라스'부터 생존을 위해 로봇 기업으로 변신하는 부품사의 사투, IPO(기업공개)와 동반성장펀드로 이를 뒷받침하는 자본의 흐름까지 치열한 로봇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을 생생하게 담아 본다. [편집자주]
[딜사이트 노우진 기자] HD현대로보틱스가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기업가치 재평가에 나선다. 기존 산업용 로봇 제조사의 한계를 탈피하고 이른바 피지컬 AI 기업으로 정체성을 재정의하는 게 골자다. 기업공개(IPO)를 통해 조달한 대규모 자금을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RFM) 개발과 외연 확장에 투입해 테크 기업에 걸맞은 기업가치 배수를 정당화하겠다는 포석이다. 관건은 에쿼티 스토리다. 충분한 실탄을 확보하기 위한 밸류에이션을 인정받으려면 실현 가능한 로드맵을 제시하고 시장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HD현대로보틱스는 중복상장 논란에도 불구하고 IPO를 추진할 방침을 내부적으로 굳힌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 당국과 여론을 의식해 킥오프 미팅을 전격 취소하기는 했지만 한국거래소의 중복상장 가이드라인 발표를 기점으로 절차를 재개할 것으로 보인다. HD현대 관계자는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 담보할 수는 없지만 상장 의지는 확고하다"며 "불가피한 경우 상장 시기를 올해가 아닌 내년으로 조정하는 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내부에서는 그룹을 총괄하는 정기선 회장의 의지가 강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기선 회장은 같은 항렬인 정의선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이 최근 발표한 새만금 로봇 클러스터 투자에 적극 공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만금을 개척한 조부인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유지를 계승하면서 동시에 로봇이라는 새로운 산업을 빠르게 일궈내 한국을 관련 생태계의 초일류 국가로 도약시키겠다는 가문의 의지가 강하게 투영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현대차그룹 등 과거 현대그룹 관계사들은 새만금에 로봇 관련 대규모 클러스터를 조성할 청사진을 마련할 계획이다.
HD현대그룹 역시 현재의 변곡점을 놓칠 수 없다는 전략적 판단을 하고 있다. 글로벌 로봇 산업이 단순 하드웨어 경쟁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급격하게 재편되는 시점이다. 산업이 개화 국면에 들어서며 경쟁이 치열해지고 시장 선점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수동적 산업 로봇을 넘어 피지컬 AI로 무게 중심을 옮기는 게 시급하다는 분석이다. 영역 확대를 위한 대규모 자금 조달이 최우선 과제로 부상한 이유다.
중심 축은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RFM)이다. 외부 환경을 스스로 인지하고 자의적 판단을 내려 구동하는 제어 기술이다. 인간 개입을 배제한 즉각적인 환경 대응력을 갖췄다. 기술 실증의 첫 무대는 조선소다. 연내 실증에 착수할 용접 자동화 솔루션을 실제 건조 현장에 투입해 공정 효율 개선 데이터 확보에 나선다. 기존 강점인 산업 현장의 데이터와 도메인 지식이 핵심 자산이다. 축적된 정보를 모델 학습에 활용해 범용 AI와 차별화된 특화형 솔루션을 구축할 전망이다.
구체적인 행보도 포착된다. 지난해 6월 공개한 하이브리드 협동로봇 HDC 시리즈에 이어 독일 노이라로보틱스와 협력해 4족 보행 용접 자동화 휴머노이드 개발에 착수했다. 기존 고정식 로봇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이동성을 갖춘 지능형 로봇으로 영역을 넓히겠다는 포석이다. 휴머노이드는 활동 범위가 넓고 다양한 동작을 구현할 수 있어 피지컬AI에 적합한 형태라는 판단이다.
다음 단계는 조선소 외 이종 산업 현장으로의 이식이다. 2030년까지 가공·조립·검사·제조·물류 등 산업별 맞춤형 솔루션을 출시해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할 방침이다. 고객사별 공정 특성에 맞춘 커스텀 모델 개발로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다. IB 관계자는 "제조업 기반 기업에 가장 중요한 건 매출 탑라인을 여는 것"이라며 "다양한 산업 현장을 공략해 확장성을 확보해야 성장 속도를 높일 수 있다"고 제언했다.
공모 자금은 기술 고도화를 비롯한 사업 확대 외에도 글로벌 외연 확장에 투입될 예정이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 시장을 중심으로 영업망을 재정비하고, 현지 연구개발(R&D) 인력을 대거 확보해 현지화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투자도 병행한다. 내부 역량에만 의존하지 않고 유망 기업에 대한 지분 투자를 통해 기술 격차를 단축하겠다는 포석이다. 산업용 로봇 단계의 기술력을 협동로봇을 넘어 피지컬 AI까지 단기간 내 끌어올리기 위한 복안이다.
시장이 인정하는 밸류에이션 수위가 상장 성패의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로드맵 실현을 위한 재원 확보를 위해서는 단순 제조업을 넘어 테크 기업으로서의 정체성을 입증해야 한다. 업계에서는 피지컬 AI 기반의 에쿼티 스토리가 핵심 지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IB 관계자는 "투자자들은 피지컬 AI 기준점을 보스턴 다이내믹스나 테슬라 등 글로벌 선두 주자가 공개한 휴머노이드 수준"이라며 "공장에서 사용하는 로봇 팔과 시장의 기대치 사이의 간극을 설득력 있게 메우는 것이 과제"라고 지적했다.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딜사이트 무단전재 배포금지
Ho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