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규희 기자]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계속 지연되던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 대표에 한국산업은행 출신 인사가 검토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통상 성장금융 대표는 주무당국인 금융위원회가 추천해 청와대 재가를 받아 내정됐지만 사뭇 다른 루트를 밟게 된 것이다.
6일 금융당국과 업계에 따르면 성장금융의 차기 대표이사(CEO)와 운용총괄본부장(CIO)을 포함해 주요 본부장급 보직에 산업은행 부행장 출신 인사들이 검증 절차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통한 관계자는 "이재명 출범 이후 성장금융에 대한 인사는 일년 가까이 미뤄졌다"며 "주무당국인 금융위가 당초 정부 초에는 기획재정부나 예산처와 통합될 뻔 했기 때문에 다른 금융공기업처럼 대통령이 꼼꼼히 점검하면서 인사를 하려던 계획을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맥락에서 미뤄졌던 인사가 급물살을 탄 것은 이재명 대통령이 주도적으로 추진한 정책과제인 150조원 국민성장펀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국민성장펀드는 금융위가 주도하되 실무는 산업은행이 맡았는데, 이 실무를 다시 시장에서 현실화할 대상으로 성장금융이 낙점되면서 두 기관이 화학적 결합을 해야 하는 계기가 마련됐다는 것이다.
성장금융은 당초 박근혜 정부 당시 정책과제인 성장사다리펀드를 현 이재명 정부의 김용범 정책실장이 금융위에서 현실화한 기관이다. 그러나 문재인, 윤석열 정부를 거치면서 한국거래소 등이 지분을 가진 민영 기관으로 변모했다. 이 과정에서 모태인 산업은행이나, 정책금융공사(KOFC) 등과 결이 달라져 최근 실무에서는 다소 불협화음을 내기도 했다.
실제 성장금융은 지난 2024년 6월 기존 1대 주주였던 PEF가 해산되면서 지배구조가 민간 중심으로 재편됐다. 현재 한국증권금융이 19.7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이며 한국거래소와 한국예탁결제원 그리고 금융투자협회가 각각 19.7%씩 지분을 직접 보유하고 있다. 증권 유관기관 4곳의 합산 지분율은 78.8%에 달하며 산업은행의 지분율은 8.72% 수준으로 낮아졌다.
산업은행은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의 절친한 벗이자 내부출신인 박상진 회장이 취임한 이후 성장금융과 새로운 케미스트리를 맞춰가고 있다. 성장금융이 매년 산업은행으로부터 배정받는 정책금융 모펀드 위탁운용사(GP) 지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산업은행과의 관계 회복도 필수적이다. 그동안 산업은행과 신경전을 벌여온 탓에 모펀드 확보에 차질을 빚어왔던 만큼 차라리 산은 인사를 받아들여 안정적인 정책 자금 공급망을 차지하자는 계산이다. 성장금융은 최근 산업은행이 선정한 국민성장펀드 모펀드 4개 분야 가운데 2개 분야의 운용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성장금융 관계자는 "통상 경영진 인사는 대주주 의사와 별개로 금융위의 정무적 판단에 따라 결정돼 왔다"며 "하지만 최근 박상진 산업은행 회장은 이재명 대통령으로부터 정책금융 전체를 총괄하는 인사권을 부여받은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과거 중앙대학교 고시실에서 함께 수학하며 고시를 준비하던 시절부터 맺어진 박상진 회장과의 40년 우정을 크게 신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은행도 고위직 인사들의 퇴로가 급격히 차단된 가운데 성장금융 인사 배정지로 열 수 있게 된 것을 내부적으로 환영하고 있다. 산업은행은 그동안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과 대우건설 그리고 HMM 등 관리 기업들을 통해 다수의 고위직 자리를 보전해왔다. 하지만 한화오션과 대우건설이 민영화되면서 산업은행이 직접 인사를 내려보낼 수 있는 영향권에서 벗어났다. 매각 절차가 진행 중인 HMM 역시 과거와 같은 인사 개입이 어려워졌고 KDB생명 매각 난항까지 겹치며 부행장급 퇴직자들이 이동할 수 있는 자리는 과거 대비 절반 이하로 줄어든 상태다.
다만 성장금융 내부에서는 이번 인사에 대해 당혹해하는 분위기다. 설립 이후 민간 전문 운용사로서의 기틀을 잡아가는 과정에서 산업은행 인사들이 배치될 경우 그동안 시장에 맞춰 유연하게 내려왔던 투자 결정들이 무색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조직 일각에서는 현실적인 생존 전략 차원에서 산업은행 인사를 수용해야 한다는 기류도 존재한다. 업계 관계자는 "정책 자산 관리의 효율성이 이번 인사의 명분이지만 전문성보다는 정무적 판단에 기초한 인사가 단행될 경우 국내 투자 생태계의 전문성을 후퇴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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