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송한석 기자] 최근 포스코가 미국 철강 쿼터제 원산지 규정을 조강(粗鋼) 기준으로 변경해 중국, 대만 등 외국산 조강이 아닌 한국산 조강을 사용해야한다는 의견을 암암리에 내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철강재를 마지막으로 가공한 국가를 기준으로 원산지를 판정하면서 중국산 조강도 한국산으로 바뀌어 우회 수출 의심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조강 기반 원산지 표기가 이뤄질 경우 중국산 조강을 사용했던 철강업체가 미국 수출을 위해 포스코의 조강을 대거 구매하게 되면서 포스코가 최대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하지만 국내 철강업체들은 이미 대미 수출에 대비해 원산지 관리를 철저하게 하고 있고, 조강 기준을 변경하면 중소업체들은 상대적으로 가격 비싼 한국산 조강을 사용하면서 수익성 악화가 불보듯 뻔하다는 우려도 나온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5월 포스코는 자사 홈페이지에 '원산지부터 품질까지! '조강' 바로 알기'라는 카드뉴스를 게시했다. 해당 카드뉴스는 조강의 뜻, 조강 기반 원산지 표기가 필요한 이유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카드뉴스에 따르면 철강제품은 철광석이나 철스크랩 등의 원료를 녹여 쇳물을 만들고 이를 굳힌 다음에 압연, 압출, 도금 등 여러 형태로 가공해 만든다. 이 과정에서 쇳물을 부어 최초로 고형화 한 상태를 조강(crude steel)이라 부른다. 조강을 이용해 열연강판이나 냉연강판, 전기강판, 철근, 형강, 선재 등 다양한 제품을 제조한다.
조강은 철강 제품의 특성과 품질을 결정짓는 만큼 미국, 유럽, 일본 등 세계 각국은 조강을 기반으로 철강 원산지를 관리하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는 철강재를 마지막으로 가공한 국가를 기준으로 원산지를 판정하고 있다. 수출 쿼터에 국산 물량을 산정할 때에도 동일한 기준을 적용한다. 중국산 조강이나 조강 가공품을 국내에 수입해 마무리 가공을 해서 기존 수입품과는 다른 HS코드를 적용하면 해당 제품은 한국산이 된다.
이에 최근 무역업계에서 미국산 철강 쿼터제 원산지 규정을 기존 최종제품에서 조강 기준으로 변경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포스코의 카드뉴스에서도 외국산 조강제품을 한국산으로 수출하면서 중국의 우회 수출국이라는 오명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조강 제조하는 철강사 뿐만 아니라 수입조강을 활용하는 업체들도 모두 한국산 쿼터 산정 과정에서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미국으로 수출되는 철강의 원산지 기준을 조강으로 변경해야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는 점차 강화될 것으로 전망되는 미국의 중국 규제 때문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철강에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데다 중국산 우회 수출에 대해 더 강한 벽을 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미국에 철강을 수출할 때 54개 품목 263만톤을 쿼터제로 수출하고 있고 263만톤이 넘을 경우 추가 관세가 부과된다.
또 수입산 조강이 국내로 계속 유입될 경우 국내 철강사의 생산·가격 결정력이 수입재에 의해 좌우될 수 있는 만큼 기준이 변경될 경우 철강 산업의 자생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장점도 그 이유로 꼽힌다.
철강업계 한 관계자는 "다른 주요 나라는 철강 원산지 기준이 조강으로 돼 있어 중국산을 우회 수출하는 게 원천 차단됐다"며 "우리나라는 중국산 쇳물로 만든 제품들이 한국산으로 표기되면 그대로 인정돼 중국산의 우회 수출이 가능한데 그런 것을 원천 차단하는 게 미국의 기조"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원산지 기준 변경 시 가장 수혜를 보는 곳은 포스코기 때문에 정부와 학회 등을 통해 분위기를 잡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포스코가 직접 나서기는 부담스러워 협회, 학회 등을 통해 원산지 기준 변경에 힘을 싣는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실제 지난 6월 무역구제학회에서는 '국제공급망의 전략적 재편과 무역구제제도의 변화'라는 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특히 포스코는 국내 최대 조강 생산 업체인 만큼 그동안 중국산 조강 등을 사용했던 철강업체가 미국으로의 수출을 위해 포스코의 조강을 구매해야 하는 경우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지난해 한국의 조강 생산량을 보면 6670만톤으로 포스코는 이 중 53.5%인 3568만톤을 차지하고 있다. 기준이 변경된다면 포스코의 조강을 사용하는 철강업체가 늘어난다.
하지만 이럴 경우 그동안 더 값싼 중국산 조강 등을 구매해 가격 경쟁력 싸움을 해왔던 업체들의 경쟁력과 수익성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또 전문가들은 미국으로 수출되는 철강 제품의 원산지 기준을 변경할 필요성이 낮다는 의견도 제기하고 있다. 국내 철강업체들이 대미 수출에 대비해 원산지 관리를 철저하게 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른 철강업체 한 관계자는 "미국으로 수출하는 대표적인 업체인 동국은 원산지 관리 기준을 가지고 관리하고 있고 세아도 전량 포스코에서 매입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우리나라 철강사들이 대미 수출에 대해 관리를 잘하고 있고 미국에서도 우회 수출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만큼 기준을 변경하자고 이야기 하는 건 철강업계가 오해를 살 수 있는 만큼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포스코 관계자는 "정부 차원에서 논의돼야 하는 것"이라며 짧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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