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신지하 기자] 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6'에서 가장 먼저 체감된 변화는 주목도가 TV와 가전이 아닌 로봇과 휴머노이드로 옮겨갔다는 점이다. 관람객들이 몰린 곳은 어김없이 로봇과 휴머노이드 시연 현장이었다. 초대형 TV의 화질이나 다양한 편의 기능을 갖춘 프리미엄 가전에 감탄하거나 단순히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수준의 로봇에 만족하던 과거와 달리, 올해는 인간처럼 직립보행을 하고 복잡한 동작을 수행하는 로봇들이 대거 등장했다.
로봇의 활용 범위도 확연히 넓어졌다. 지금까지 CES에서 공개된 로봇들이 가사 일을 돕는 비서 역할이나 미래 콘셉트 수준에 머물렀다면 올해는 물류·제조 등 산업 현장에 곧바로 투입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실전 활용이 가능한 휴머노이드 형태가 주를 이뤘다. 시연도 단순한 동작을 반복하는 수준을 넘어 실제 작업 수행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LG전자는 사람을 대신해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세탁물을 세탁기에 넣은 뒤 세탁이 끝나면 빨래를 정리하는 가정용 홈로봇 'LG 클로이드'를 선보였다. 바퀴로 이동하지만 머리와 팔, 다섯 손가락을 활용해 물건을 집고 옮기는 등 정교한 동작을 구현했다. 현대차그룹은 자회사인 보스턴다이내믹스와 함께 차세대 전동식 휴머노이드 '아틀라스' 개발형 모델을 공개했다. 아틀라스는 머리와 몸통, 팔을 360도 회전할 수 있고 최대 50㎏의 물체를 들어 올릴 수 있도록 설계됐다. 사람처럼 선반에 놓인 부품을 집어 반대편으로 옮기는 모습은 산업 현장에 투입될 시점이 멀지 않았다는 인상을 남겼다.
해외 기업들도 휴머노이드 로봇을 앞다퉈 선보였다. 특히 중국 기업들의 존재감이 두드러졌다. CES 주최 측에 따르면 이번 전시에 참여한 로봇 관련 업체는 총 598곳으로, 이 가운데 149곳이 중국 기업으로 약 25%를 차지했다. 휴머노이드 로봇 분야로 좁혀보면 전체 38개 업체 중 21개 업체가 중국 기업으로, 절반을 넘겼다. 박주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휴머노이드 등 로보틱스 분야를 중심으로 중국 기업들의 존재감이 두드러졌다"며 "유니트리, 애지봇 등 대표 기업 외에도 다수 신생 기업이 신규 모델을 공개했으며, 기술 데모를 넘어 실제 사용 가능한 로봇의 완성도와 실사용 사례를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유니트리는 휴머노이드 로봇 'G1'을 공개하고 링 위에서 사람과 복싱 시연을 선보였다. 로봇은 주먹을 피하는 과정에서도 균형을 유지했고, 팔과 상체는 흡사 복싱 선수와 유사했다. 이 로봇은 자체적으로도 동작이 가능하지만 해당 현장에서 관계자가 조이스틱을 활용해 일부 동작을 제어하고 있었다. 애지봇은 생체 모방 기반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춘 'X2' 시리즈를 비롯해 상업용 서비스 로봇 'A2', 가정·연구용 'G2' 등 다양한 형태의 휴머노이드 로봇을 전시했다. 시연에서는 로봇이 한 손에 스펀지를 쥐고 유리 표면을 닦는 동작을 보여줬다.
중국의 라이다 업체 로보센스는 물류 전 과정을 수행하는 자율 배송 로봇을 소개했다. 이 로봇은 테이블 위에 놓인 선물 상자를 집어 포장한 뒤 지정된 위치로 운송하고, 다시 상자를 개봉해 내용물을 꺼냈다. 이후 남은 상자는 분리해 재활용 공간으로 옮기는 과정까지 스스로 수행했다. 로보센스 관계자는 "단순 배송을 넘어 물류센터나 유통 현장에서 반복 발생하는 작업을 하나의 로봇이 맡을 수 있도록 설계했다"며 "이 모든 과정은 외부 조작 없이 자율 주행과 센서 인식을 기반으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중국 기업인 써니 옵티컬 테크놀로지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위한 비전 기반 집기 솔루션을 선보였다. 로봇 팔과 손에 카메라 모듈과 시각 기반 촉각 센서를 결합, 물체의 위치와 형태뿐 아니라 질감과 힘의 변화를 실시간으로 파악했다. 이번 CES 부스에서는 로봇 손이 유리나 풍선처럼 깨지거나 변형되기 쉬운 물체를 집는 시연이 이어졌으며, 압력과 미끄러짐을 감지해 집는 힘을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올해 CES에서 또 하나 주목받은 분야는 로봇청소기다. 국내 기업 가운데서는 삼성전자가 자사 전시관에 로봇청소기 시연 공간을 별도로 마련하고, 최대 10W급 흡입력을 갖춘 신제품이 10㎏ 케틀벨을 들어 올리는 장면을 연출했다. LG전자도 로봇청소기 신제품을 공개했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시연이나 별도의 체험 공간은 마련하지 않았다.
이와 달리 중국 업체들은 자사 로봇청소기의 경쟁력을 앞다퉈 과시했다. 로보락은 기존 바퀴 대신 사람처럼 두 개의 다리가 달린 '사로스 로버'를 공개했다. 각 다리는 독립적으로 들어 올리거나 구부릴 수 있어 단차가 있는 계단이나 문턱도 쉽게 넘을 수 있다. 드리미는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는 '사이버X'를 선보였다. 긴 타원형 바퀴 4개를 계단 면에 밀착시키는 구조로, 접지력을 높여 안정적인 이동이 가능하도록 했다. 드리미의 자회사 모바는 드론을 장착해 층간 이동이 가능한 '파일럿 70'을 시연하며 관람객의 시선을 끌었다. 이 밖에도 중국 업체들은 실내 바닥 청소를 넘어 잔디깎이와 수영장 청소 등으로 활용 영역을 확장한 다양한 로봇청소기를 선보이며, 기술 구현 속도와 제품 다양성 측면에서 한국 업체들보다 한발 앞선 모습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이번 CES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과 업계 관계자들은 "올해 CES는 로봇과 휴머노이드가 가장 인상에 남는다"고 입을 모았다. 여전히 실제 수익성 측면에서는 TV와 가전이 핵심 사업이겠지만 이번 CES에서 드러난 국내외 주요 기업들의 중장기 사업 전략과 방향성은 로봇과 휴머노이드에 쏠렸다는 분석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로봇이 더 이상 먼 미래 기술이 아니라 언제 어디에 먼저 적용할지를 고민하는 단계에 들어섰다는 점을 실감했다"며 "당장 실적으로 연결되지는 않더라도 기업들이 로봇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 분명히 드러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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