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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해운과 달랐다…석유화학 구조조정의 새 공식
임초롱 기자
2026.01.09 10:00:16
채권단, 모기업 고통분담 전제로 조건부 금융지원 '선별 적용'
이 기사는 2026년 01월 08일 06시 10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롯데케미칼 여수 공장 전경.(제공=롯데케미칼)

[딜사이트 임초롱 기자] 한국산업은행을 포함한 채권단이 석유화학 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과거와 다른 '최소 개입' 기조를 유지해 눈길을 끈다. 조선·해운·항공업 구조조정 당시 직접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개입했던 것과 달리, 석유화학 산업에서는 한발 물러선 모습이다. 강제적인 회생절차 대신 기업의 자율적인 자구안 제출과 이행 여부를 기준으로, 조건부 금융 지원 여부만을 판단하는 방식이다.


채권단 고위 관계자는 지난 7일 석유화학 산업 구조조정과 관련해 "석유화학 산업을 영위하는 기업 대부분이 대기업 집단에 속해 있는 만큼, 과거처럼 강제 회생절차를 적용하는 방식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모기업의 충분한 고통분담과 자율적인 사업 재편을 전제로 자금 지원 여부를 판단하는 구조로 정리됐다"고 말했다. 이어 "채권단이 직접 구조조정 방향을 정하기보다는 자구안의 실효성과 이행 의지를 심사하는 데 역할을 한정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롯데케미칼은 대산공장과 HD현대케미칼을 통합하는 내용의 사업 재편안을 업계 최초로 제출했다. 정부가 추진 중인 나프타분해설비(NCC) 구조 개편 정책 기조에 맞춰 롯데케미칼 대산공장을 물적분할한 뒤 HD현대케미칼과 통합하고, 중복 설비를 정리하는 방안이다. 정책 방향은 정부가 제시하되, 구체적인 실행과 비용 부담은 기업이 책임지는 구조다.


여타 석유화학 기업들도 잇따라 자구안을 내놓고 있다.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은 여수산단 내 중복 설비를 통합 운영하고 생산량을 감축하는 재편안을 제출했다. LG화학도 여수산단에서 GS칼텍스와 협력하는 구조 개편안을 냈으며, 울산산단에서는 SK지오센트릭과 대한유화, 에쓰오일 등이 공동으로 설비 효율화 중심의 재편안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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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단이 자율 구조조정에 무게를 두는 배경에는 석유화학 산업의 지배구조 특성이 자리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집계한 지난해 대기업집단 순위를 보면 SK지오센트릭이 속한 SK그룹은 2위, LG화학의 LG그룹은 4위, 롯데케미칼의 롯데그룹은 5위다. 한화그룹(7위), HD현대그룹(8위), GS그룹(10위) 등도 모두 재무 여력이 있는 대기업 집단에 속한다. 채권단으로서는 '대마불사' 기대를 경계하면서도, 모기업의 책임 있는 고통분담을 전제로 구조조정을 기업 자율에 맡기는 쪽이 현실적이라는 판단이다.


실제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은 각각 4000억원씩 총 8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통해 모기업 자금을 투입하는 자구안을 제시했다. 이를 토대로 채권단에는 스페셜티 전환 등을 위한 신규 자금 지원과 영구채 발행, 회사채 상환 유예 등을 요청했다. 채권단은 모기업의 자금 투입 규모와 함께 설비 감축·통합의 실질성, 중장기 사업 구조 전환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조선·해운·항공업 구조조정 당시 정부와 채권단이 직접 개입해 회생절차를 주도했던 것과 달리, 이번 석유화학 산업 재편은 조건부·선별적 개입으로 방향을 튼 사례로 평가된다. 강제 구조조정보다는 자율 구조조정의 성과를 지켜본 뒤, 금융 지원 여부와 규모를 결정하겠다는 기조다.


정부 역시 석유화학 업계의 자구안을 전제로 금융 지원에 나설 방침이다. 석유화학 산업 금융권 익스포저 가운데 약 60%가 여신으로 구성돼 있는 만큼, 무차별적인 자금 투입보다는 고통분담과 구조 재편의 실질성을 기준으로 지원 대상을 가려내겠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 계열사인 만큼 소속 직원과 협력사 인력을 고려할 때 강압적으로 단기간에 회생절차로 몰아가기는 쉽지 않다"면서도 "고통분담 없이 신규 자금 지원은 없을 예정이기 때문에 자구안을 토대로 지원 규모를 산정하는 구조여서 석유화학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정부의 방안에 따라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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