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이재용 회장은 취임 3주년을 맞아 9년 가까이 이어진 사법 리스크를 완전히 털어내고 '뉴삼성 2막'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글로벌 경기 둔화와 기술 경쟁 심화 속에서도 올해 3분기 영업이익 '10조 클럽' 복귀, 성과연동 주식보상(PSU) 제도 도입 등으로 체질 개선과 인재경영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른바 '액션 경영'을 앞세운 이 회장의 행보가 내달 정기 인사를 기점으로 한층 거세질 전망이다. 이에 딜사이트는 기획 시리즈 〈날개단 뉴삼성〉을 통해 사법 리스크 해소 이후 이 회장이 이끄는 삼성의 변화와 도전을 짚어본다. 이 회장의 리더십을 중심으로 실적 개선, 주가 상승, 반도체 경쟁력 회복으로 이어지는 '삼성 반등' 시나리오를 차례로 조명한다. <편집자주>
[딜사이트 이세연 기자] 그동안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고전을 이어왔던 삼성전자가 반전을 꾀하고 있다. 전작인 HBM3E에서는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차세대 HBM4부터는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HBM 최대 고객사인 엔비디아와의 협업이 가시화되면서 시장 판도를 바꾸는 '게임 체인저'로 부상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내년 엔비디아 HBM4 공급망에서 점유율 2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상반기 물량은 SK하이닉스가 독점할 가능성이 높지만, 하반기부터는 경쟁 구도가 새롭게 재편되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은 SK하이닉스의 엔비디아 HBM4 물량 점유율이 내년 상반기 100%에서 하반기 60%로 떨어지고, 동시에 삼성전자가 최대 30%, 마이크론이 10~15%를 차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엔비디아 내 삼성전자 HBM의 점유율이 0%였던 점을 고려하면 괄목할 만한 성장이다. 앞선 전망치가 현실화되면 SK하이닉스의 독점 체제에 균열을 내는 동시에, 경쟁사 마이크론과의 격차를 단숨에 벌리는 결과를 낳게 된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엔비디아는 SK하이닉스와 내년 상반기 HBM4 물량을 놓고 상당 부분 협상을 끝낸 상태"라며 "SK하이닉스는 커스터머(CS) 샘플을 가장 먼저 제출한 만큼, HBM4 퀄 테스트 인증 완료도 연말에 완료될 가능성이 높아 상반기까지는 독점 체제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하반기부터는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이 잇따라 공급망에 진입하면서 구도가 완전히 뒤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엔비디아가 'HBM 1위 공급사'인 SK하이닉스와 상반기 물량만 협의한 것 자체가 이미 구매 전략에 변화가 일고 있다는 신호다. 통상 엔비디아는 공급사들과 1년 단위로 HBM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데, HBM4의 경우 타 업체들의 진입 가능성을 고려해 물량과 가격을 신중히 조율하고 있다.
마이크론은 엔비디아의 HBM4 속도 상향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면서 경쟁 열위에 놓이게 됐다. 마이크론은 베이스 다이를 자체 생산하는 전략을 고수하고 있는데, 전력 효율을 우선시한 탓에 속도 개선에는 한계를 드러냈다. 이 회사는 최근 실적 발표에서 '문제를 해결했다'고 공식화했으나, 업계에서는 여전히 회의적인 시각이 나온다.
앞선 관계자는 "마이크론의 베이스 다이 이슈는 1~2달 만에 개선될 만한 사안이 아니다"며 "(실적 발표에서는) 일부 스펙이 잘 나온 샘플 기준으로 이야기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HBM4 수율은 여전히 개선이 필요한 상태지만, 과거와 비교하면 진전이 있다. 반도체 업계 다른 관계자는 "현재 삼성전자의 1c D램 샘플 수율은 DDR5 기준 70%를 넘겼고, HBM4 기준으로는 50%까지 올라왔다. 과거보다 개선된 건 맞다"며 "다만 양산 체제로 전환하기에 부족한 수준인 것도 사실이다. HBM를 양산하려면 적어도 70%는 넘겨야 한다"고 말했다.
아무리 삼성전자가 올 하반기부터 HBM을 저가에 '덤핑 공세'하고 있다 해도, 현 단계에서 웨이퍼를 대량 투입하면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된다. 양산 이관을 위해서는 수율을 끌어올리는 것이 핵심 과제다. 나아가 발열 문제까지 해소될 경우 승산이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앞선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HBM4는 구조상 대역폭 확장에 유리한 설계를 가지고 있다"며 "발열까지 잡아낸다면 경쟁력 있는 칩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HBM4를 기점으로 긍정적인 신호가 여럿 나타나면서 반도체(DS) 사업부 분위기도 한층 고조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전까지만 해도 경쟁사에 뒤처진다는 압박감이 커, 임원들 간 회식 자리에서 대화가 거의 오가지 않을 때도 많았다는 후문이다.
회사 한 관계자는 "솔직히 상반기까지만 해도 부서 분위기가 정말 좋지 않았다. SK하이닉스가 잘 나가는 모습을 보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엔지니어들이 많았다"며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조금씩 활기가 돌기 시작했고, '열심히 해보자'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삼성전자가 예상보다 빠르게 엔비디아 HBM 공급망 내 '메기'로 부상하면서, SK하이닉스의 수익성에도 압박이 가해질 전망이다. 이미 전작인 HBM3E 12단은 당장 1년 안에 가격이 30%가량 하락하는 게 유력하다. 현재 SK하이닉스의 HBM3E 12단은 삼성전자보다 30% 비싼 것으로 파악된다.
삼성전자의 'HBM 물량 공세'가 SK하이닉스의 제품 단가까지 끌어내려, 내년 말에는 양사 제품 가격이 비슷한 수준에 수렴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앞선 관계자는 "HBM4 역시 비슷한 흐름으로 전개될 것"이라며 "내년 상반기에는 SK하이닉스가 사실상 '솔벤더'인 만큼 가격 프리미엄을 관철할 수 있겠지만, 하반기부터는 이를 보전하기 힘들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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