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최유라 기자] 국민연금공단이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의 향배를 가를 임시주주총회 집중투표제 도입 및 이사 수 상한 설정 안건에 '찬성 행사'하기로 결정했다. 고려아연 지분 4.5% 들고 있는 국민연금이 사실상 고려아연의 편을 들었다는 관측이 나온다.
경영권 방어를 위해 집중투표제 카드를 꺼낸 고려아연의 전략이 적중한 모양새다. MBK파트너스·영풍은 지분 40.97%(의결권 주식 기준 46.7%)를 가졌지만 집중투표제 도입 안건은 최대 3%까지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기에 여러 소수 주주로 구성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에 더 유리한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게 업계 의견이다. 고려아연 측은 국민연금 결정에 대해 "이사회 독립성 강화를 위해 지속 노력하겠다"며 자세를 낮췄다. 내주 집중투표제 도입을 저지하기 위해 MBK파트너스·영풍이 신청한 가처분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일단 겸손모드로 대응하는 분위기다.
17일 국민연금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회의를 통해 23일 열리는 고려아연 임시주총 '집중투표제 도입 정관 변경(1-1호)'과 '이사 수 상한 설정 관련 정관 변경(1-2호)' 안건에 대한 의결권 행사 방향을 '찬성 행사'로 결정했다. 이에 국민연금은 MBK파트너스·영풍 쪽 편을 들지 않고 주총 당일 집중투표제와 이사 수 상한 정관 변경 찬반 투표에서 찬성표를 던질 것으로 예상된다.
집중투표제란 이사를 선임할 때 주식 1주당 선임하려는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이사 10명을 선임할 땐 주식 1주당 의결권 10개를 부여한다. 의결권을 특정 이사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다는 뜻이다.
국민연금의 이번 결정은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의 향배를 가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은 당초 지분 7.49%를 보유했다가 주식을 일부 매도하며 현재는 4.5%로 하락했다. 하지만 자본시장에 미치는 국민연금의 영향력이 상당한 만큼 이번 결정이 외국계 기관 등 7.89%인 기타주주와 1% 미만의 소액주주 표심도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고려아연의 상장 주식수는 2070만주, 최 회장 측의 지분율은 33~34%로 추정된다. MBK파트너스·영풍 측은 40.97%로 최 회장 측보다 7~8% 더 앞선 상황이다. 현재로선 최 회장 측이 밀리는 모습이나, 집중투표제 도입 안건에 3%룰(주주별 의결권을 최대 3%까지만 사용가능)이 적용되는 점이 변수다. MBK파트너스·영풍이 과반에 가까운 지분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의결권을 3%까지만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여러 소수 주주로 구성된 최 회장 측에 더 유리한 상황이 조성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 가운데 국민연금은 이사수 상한 설정의 건에도 고려아연 손을 들어줬다. 최윤범 회장은 MBK파트너스·영풍 측 이사회 장악을 막기 위해 '이사 수 상한을 19인으로 제한하는 안건'도 상정했다. 만약 이사 수를 19명 이하로 제한하는 안건도 통과하면 현재 고려아연 이사(12명) 대비 신규 7명 선임이 가능한데, 이미 최 회장 측 이사 11명이 이사회에 들어가 있으니 이사회 장악의 우위에 서게 된다.
임시주총까지 일주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MBK파트너스·영풍이 집중투표제 안건 상정을 막아달라며 법원에 제기한 '의안상정금지' 가처분이 막판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법원은 가처분 신청에 대한 첫 심문기일을 진행했고 늦어도 21일까지 판단을 내릴 전망이다.
고려아연은 한숨 돌렸지만 표정관리에 나섰다. 임시주총을 앞두고 내주 법원의 가처분 결과가 나오는 만큼 신중모드에 들어갔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금번 임시주총뿐 아니라 앞으로도 소수주주 권한 강화 등 주주가치 제고와 이사회 독립성 및 다양성 강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며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고려아연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MBK파트너스·영풍 측은 고려아연의 집중투표제 도입 안건에 대해 "임시주총에서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소수주주 보호라는 제도 본연의 취지는 몰각되고, 최윤범 회장 자리 보전 연장의 수단으로만 악용될 것"이라며 "MBK파트너스와 영풍은 집중투표제 도입 정관 변경 의안이 통과되지 않도록 국내외 기관투자자들과 일반 주주들의 설득에 더욱 집중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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