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규연 기자] "반석 위의 집은 비가 내려 큰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들이쳐도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나 같은 상황에서 모래 위의 집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성경 마태복음 7장의 일부 구절을 요약한 말이다. 튼튼한 기반 위에 집을 지어야 위기가 와도 잘 버틸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곧 사상누각(沙上樓閣)이라는 사자성어와도 이어진다. 사상누각은 아무리 크고 멋진 집이라 해도 모래를 기반으로 잡았다면 상황에 따라 언제든 무너질 수 있으니 기초를 단단하게 쌓아야 한다는 교훈을 담았다.
지난 4일 출시된 '밸류업 ETF(상장지수펀드)'를 위의 두 표현에 빗댄다면 집은 개별 펀드를, 기반은 이 상품의 기초지수가 된 '코리아 밸류업 지수'(이하 밸류업 지수)다. 밸류업 지수의 수익률이 좋아야 이 지수를 추종하는 밸류업 ETF 역시 성과를 낼 수 있다.
ETF는 기초가 되는 비교지수의 성과를 추적하는 '인덱스 펀드'다. 특히 '패시브 ETF'는 비교지수를 90% 이상 추종하는 만큼 수익률과 비교지수 변동률이 비슷하다. '액티브 ETF'도 비교지수를 70% 이상 추종해야 하는 제약 때문에 비교지수와 수익률 차이가 커지긴 힘들다.
게다가 밸류업 ETF 12종 중 9종은 패시브 ETF, 3종은 액티브 ETF다. 결국 '기초'인 밸류업 지수가 튼튼한 기반으로 작용해야 밸류업 ETF의 전반적인 성공 가능성도 커진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밸류업 지수는 처음 공개됐을 때부터 각종 논란에 올랐다. 한 예로 밸류업 지수를 구성하는 종목 100곳의 선정 기준이 적절했는지 여부를 놓고 사람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기업가치 제고계획을 내놓은 기업이 빠지고 그렇지 않은 기업이 들어가는 일도 있었다.
논란이 커지자 한국거래소는 올해 안에 밸류업 지수의 리밸런싱(구성 종목 재조정)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만약 거래소가 정말로 리밸런싱을 추진한다면 밸류업 지수 기반의 ETF 역시 종목 매매를 다시 진행하면서 관련 비용이 발생하는 등의 부담을 안게 된다.
이 때문에 밸류업 지수 리밸런싱부터 진행한 뒤 밸류업 ETF를 내놓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그러나 결국 밸류업 ETF는 4일 일제히 출시됐다. 거래소도 이 시기에 맞춰 대규모 행사인 '코리아 캐피탈 마켓 콘퍼런스 2024'를 여는 등 홍보 효과 극대화에 중점을 뒀다.
겉으로 볼 때 밸류업 ETF의 시작은 크고 화려한 집처럼 보인다. 먼저 시작 설정액만 전체 5110억원에 이른다. 투자자들이 출시일인 4일 하루 동안 밸류업 ETF를 순매수한 전체 금액 역시 580억원으로 집계됐는데 적지 않은 규모다.
다만 밸류업 ETF의 기반이 되는 밸류업 지수 관련 논란이 해소되지 않은 점은 여전히 불안요소로 남는다. 자칫 밸류업 ETF의 초기 성과가 '반짝' 흥행으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밸류업 ETF를 밸류업 지수 리밸런싱 이후 내놓았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나오는 이유기도 하다.
물론 밸류업 ETF가 이미 출시된 만큼 그런 아쉬움은 이제 지나간 일이 됐다. 이렇게 된 이상 밸류업 지수 리밸런싱이 빠르게 이뤄져야 밸류업 ETF의 초기 흥행을 중장기적으로 이어나갈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밸류업 ETF는 오랜 부진에 빠진 국내 증시의 반등을 이끌어낼 열쇠 중 하나로 꼽힌다. 그만큼 이 상품의 장기 흥행 여부도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모쪼록 밸류업 지수가 '모래' 아닌 '반석'이 되길, 그래서 밸류업 ETF 역시 정말로 오래 가는 크고 멋진 집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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