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민기 기자] "SK그룹이 그동안 문어발식 확장을 통해 기업의 외연을 넓히고 그 중에서 돈을 벌어줄 신사업 하나만 찾으면 된다는 식의 경영을 해왔는데 결국 실패했다. 이제는 내실과 질적 성장에 초첨을 맞추는 데 총력을 기울일 가능성이 크다."(재계 관계자)
SK그룹이 기술·제조 기업으로서 다시 본업에 매진하고, 미래 투자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리밸런싱(구조조정)에 들어간다. 그동안 배터리, 수소, 폐기물 처리 등 친환경 먹거리를 위해 공격적인 확장을 해왔지만 사실상 제대로 된 수익을 낸 사업이 없어 각종 신사업을 정리하고 긴축 기조로 전환할 예정이다.
수년간 기업 인수합병(M&A)을 지속하며 투자 회사로 변모했던 SK그룹이지만 방만한 투자와 중복 투자 등으로 비효율이 심해지면서 앞으로 교통정리에 본격 나설 계획이다. 다만 AI와 관련 글로벌 변화의 바람이 거센 만큼 그룹 보유 역량을 활용해 AI 서비스부터 인프라까지 'AI 밸류체인 리더십'을 강화할 방침이다.
SK그룹은 지난달 28~29일 경기도 이천 SKMS연구소에서 최태원 회장, 최재원 수석부회장(이상 화상 참석), 최창원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주요 계열사 CEO 20여명 등이 참석한 가운데 '경영전략회의'를 열었다.
이번 경영전략회의에서 SK 최고경영진은 지난 상반기 동안 밸류체인 재정비 등을 위해 운영한 다양한 TF 활동 결과를 공유하고, 후속 논의를 진행했다. 각 사는 합의한 방향성에 맞춰 올 하반기부터 각 사별 이사회에서 구체적인 실행 방안 등을 추진할 방침이다.
회의 이후 SK그룹은 바로 행동에 나섰다. 경영전략회의(6월 28~29일) 종료 이틀 만인 1일 SK온이 비상 경영을 공식 선언했다. 10분기 연속 적자를 거듭한 SK온이 비상 경영을 공식화한 것은 처음이다. 최고경영자(CEO), 최고생산책임자(CPO), 최고기술책임자(CTO) 등 C레벨 전원의 거취를 이사회에 위임하고, 최고관리책임자(CAO)와 최고사업책임자(CCO) 등 일부 C레벨직을 폐지했다. 연내 한 번이라도 흑자 달성을 하지 못할 경우 내년도 임원 연봉은 동결된다. 임원들에게 주어진 각종 복리후생 제도와 업무추진비도 대폭 축소한다. 현재 시행 중인 해외 출장 이코노미석 탑승 의무화, 오전 7시 출근 등도 지속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SK온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수익성 개선과 사업구조 최적화, 시너지 제고 등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실제 SK그룹은 이번 경영전략회의를 통해 오는 2026년까지 80조원 재원을 확보하고, AI·반도체 등 미래 성장 분야 투자와 주주환원 등에 활용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운영 개선을 통해 3년 내 30조원 잉여현금흐름(FCF)를 만들어 부채비율을 100% 이하로 관리한다는 목표도 포함됐다. SK그룹은 지난해 10조원 적자를 기록한 세전이익이 올해는 흑자로 전환해 22조원 안팎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2026년 세전이익 목표는 40조원대로 잡았다.
우선 다음 스텝으로는 전기차(EV) 충전 관련 사업과 관련해 중복 투자를 최소화 하고 관련 사업을 일원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전기차 충전 사업은 SK, SK텔레콤, SK네트웍스, SK이노베이션, SK E&S 등 다수 계열사가 동시다발적으로 뛰어들었다. SK는 충전기 제조사 SK시그넷, 충전소 운영 업체 SK일렉링크 등을 인수한 바 있다. 사업부를 통폐합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할 것으로 기대된다.
SK이노베이션도 SK에너지 산하 TTS(종합교통서비스) 사업부를 마케팅 본부와 통합했다. TTS는 주유·세차·전기차 충전부터 보험, 정비, 중고차 매매까지 자동차 생활 전반을 디지털화하겠다는 포부로 출범한 신사업 조직이다. 카카오모빌리티 출신의 40대를 TTS 담당 이재호 부사장을 영입했으나 최근 이 담당은 회사를 떠났다.
SK스퀘어도 대거 자회사 정리가 이뤄질 전망이다. 현재 23개 자회사 중 18개가 적자인 만큼 그룹 유동성 확보를 위해 대부분의 회사를 정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SK스퀘어는 순현금 5000억원을 보유 중이다. 내년 7월까지 SK쉴더스 잔여지분을 매각하면 4500억원이 추가된다. 지난 4월 크래프톤 지분을 블록딜로 매각하면서 2600억원도 확보했다. 11번가도 SK스퀘어가 사모펀드에 약속한 콜옵션 이행을 포기하면서 강제매각 절차에 들어갔다. SK스퀘어가 투자회사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SK㈜와 SK스퀘어 합병설도 나오고 있다.
이외에도 SK는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현금 확보에 나설 방침이다. SK네트웍스는 최근 SK렌터카를 8200억원에 매각하기로 했고, SK㈜도 베트남 투자 지분 매각을 통해 유동성 확보에 나설 계획이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 지분 역시 시장에 매물로 나올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SK㈜는 초저온 콜드체인 물류회사인 한국초저온 지분 21%도 시장에 내놓고 매각 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그룹을 떠받치고 있는 반도체 사업에 대해서는 오히려 경쟁력 강화에 '올인'하고 사업 강화에 힘을 실을 계획이다. 수펙스에 '반도체위원회'를 신설하고 인공지능(AI)과 반도체 가치사슬(밸류체인)에 관련된 계열사 간 시너지를 강화한다. 주력 계열사인 SK하이닉스는 고대역폭 메모리(HBM) 등 AI 관련 사업에 80조원 이상을 투자해 시장 리더십을 굳힐 계획이다. 반도체위원회에는 SK하이닉스를 비롯해 SK스퀘어, SKC, SK실트론, SK머티리얼즈 등이 참여한다. 소재(SKC), 웨이퍼(SK실트론), 특수가스(SK머티리얼즈) 등 반도체 하드웨어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
이를 위해 SK하이닉스는 최근 CEO 지원 조직인 '코퍼레이트 센터'를 신설하고 송현종 담당을 사장으로 선임해 곽노정 CEO의 의사 결정을 지원키로 했다. 그룹의 반도체 경쟁력 강화를 위해 곽 CEO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재계 관계자는 "AI와 반도체 사업에 대한 역량은 강화하고 에너지, 바이오 사업 등이 대폭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며 "이어지는 이천포럼(8월)과 CEO세미나(10월) 등 주요 경영회의에서의 토론을 통해 추가로 조직 개편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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