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세정 차장] 현대차그룹 로봇 사업의 수장이 물러났다. '모빌리티 기업'으로의 체질 개선을 서두르던 그룹의 행보를 고려하면 누구도 예상치 못한 리더십 공백이다.
현동진 로보틱스랩장(상무)은 지난 12년간 지능형 로봇 기술 개발을 진두지휘하며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로봇 비전을 현실화할 핵심 인재로 꼽혀왔다. 특히 올해 초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차세대 휴머노이드 '아틀라스' 공개로 사업에 힘이 실리자, 기술 실무를 총괄하는 현 상무의 존재감은 그 어느 때보다 공고해진 상태였다.
그래서일까. 현 상무의 용퇴 소식은 기묘하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단순히 예상 밖의 일이라서가 아니다. 불과 3월만 해도 "5월까지 대외 일정이 촘촘하게 차 있다"며 의욕을 보이던 리더가 돌연 짐을 싼 배경을 두고 '급작스럽다'는 표현 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과거 폐쇄적인 순혈주의를 고수하는 보수적 조직의 대명사이던 현대차그룹은 정 회장 체제 아래 인재 구조를 뿌리부터 바꿔왔다. 2006년 피터 슈라이어 영입으로 시작된 외부 인재 수혈은 제네시스 브랜드 출범 이후 가속화됐다.
현재 현대차의 리더십 면면을 살펴보면 이러한 변화는 더욱 뚜렷하다. 호세 무뇨스 사장을 필두로 진은숙 ICT 담당 사장, 만프레드 하러 R&D본부장, 브라이언 라토프 GSQO본부장, 성김 전략기획담당 사장 등 고위직 상당수가 외부 출신으로 채워져 있다. '성골'과 '진골'을 나누던 경직된 문화가 정 회장 체제에서 상당 부분 희석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온전한 '오픈 이노베이션'이 안착하기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아이러니하게도 현 상무의 사퇴가 인재 수혈 과정에서 발생하는 또 다른 차원의 갈등을 시사해서다. 과거의 순혈주의는 옅어졌을지 몰라도, 외부 인재 유입 과정에서 새로운 형태의 '파벌주의'나 '세력 재편'이 싹트고 있다는 의문이 생긴다.
내부 출신인 현 상무는 압도적인 기술 전문성을 바탕으로 조직 내 정치적 이해관계와 거리를 둬온 인물이다. 하지만 전문가는 조직 내부에서 자신의 비전이 더 이상 관철되기 어렵다는 판단이 서는 순간 미련 없이 떠나기 마련이다. 그의 퇴사를 단순한 개인의 신변 변화로 치부하기 어려운 이유다.
현 상무 빈자리는 엔비디아 출신인 박민우 첨단차플랫폼(AVP)본부장(사장)이 채운다. 로보틱스랩이 기존 연구개발(R&D)본부에서 AVP본부로 이관되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로보틱스와 자율주행, 인공지능(AI)의 시너지를 강화하겠다는 포석이지만, 박 사장은 로봇사업과의 연관성이 그리 높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 사장이 송창현 전 사장의 후임으로 영입된 인물이라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퇴임 과정에서 여러 논란에 휩싸였으나, 본질적으로는 기존 세력과의 문화적 충돌을 극복하지 못한 채 융화에 실패했다는 것이 업계의 공공연한 평가다. 현 상무의 사퇴를 현대차그룹이 추진 중인 급격한 개방성이 조직 내부의 뿌리 깊은 관성과 부딪히며 발생한 일종의 과도기적 진통으로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핵심 인재의 이탈보다 더 큰 문제는 프로젝트의 연속성이다. 리더십의 교체는 전략의 혼선과 기술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로봇 개발처럼 축적 기간이 긴 기술 사업에서 중심 인물의 이탈은 내부 지식의 단절, 협력 네트워크의 재구성, 팀 사기 저하로 이어진다. 경쟁사들이 휴머노이드 양산 일정을 앞당기는 시점에서의 리더십 공백 비용은 결코 작지 않다.
현 상무가 현대차그룹을 떠나는 진짜 속내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의 기묘한 사퇴는 현대차의 혁신이 나아가야 할 종착지를 가리킨다. 파격적인 외부 수혈도 중요하지만, 그 피가 몸통 전체를 원활히 순환하게 만드는 '융화의 기술'이 절실하다는 점이다. 기존 조직의 기술력과 외부의 혁신 DNA가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로봇 비전은 완성될 수 있다.
이제는 정 회장의 치밀한 용인술이 필요한 시점이다. 인재 영입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내부의 토착 인재와 외부 전문가가 적재적소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포용적 문화를 안착시켜야 한다. 현대차그룹은 이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지도 모른다. 진정으로 변화를 수용할 준비가 되었는가, 아니면 그저 혁신의 외피만 두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딜사이트 무단전재 배포금지
Ho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