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차화영 기자] 최근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무력 충돌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고조되면서 원·달러 환율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특히 야간 거래에서 한때 1500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시장에선 이번 사태의 해결 속도와 국제유가 향방에 따라 달러 강세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2.9원 오른 1479원에 개장했다. 이날 새벽 0시를 기점으로 '심리적 방어선'으로 여겨지는 1500원을 일시적으로 넘어서기도 했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선을 넘어선 것은 2009년 3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약 17년 만이다.
시장에서는 이날 환율 역시 글로벌 금융시장 전반의 위험회피(Risk-off) 분위기 속에서 상승 압력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중동 지역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안전자산인 달러에 대한 선호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은 이날 외환시장 동향 보고서에서 "전날 뉴욕증시 후반의 분위기가 이어질 경우 극단적으로 환율이 상승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면서도 "위험회피 분위기와 달러 강세 흐름을 반영해 상승 압력이 우위를 보이며 오늘은 1480원대 초반을 중심으로 등락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향후 환율의 향방은 이번 사태가 얼마나 빨리 수습되느냐에 달린 것으로 시장은 보고 있다. 사태가 단기간에 진정된다면 달러 강세는 일시적 현상에 그치겠지만 장기화할 경우에는 지난 2년간 이어진 달러 약세 기조 자체가 뒤집힐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오재영 KB증권 연구원은 "현 사태가 1개월 내 수습된다면 국제유가 상승이 일시적인 수준에 그치면서 달러가 다시 하락 전환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사태가 장기화하고 국제유가가 시장 예상보다 크게 뛸 경우 미국을 포함한 글로벌 인플레이션 우려를 다시 자극할 것"이라며 "이 경우 달러 강세 흐름이 2026년 내내 지속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은 원유 수입 비중이 높아 유가 급등 시 무역수지 및 경상수지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다. 이는 과거 2022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때와 마찬가지로 원화 가치를 추가로 끌어내리는 하락 요인이 된다.
다만 오 연구원은 2022년과 비교해 반도체 수출의 견조함이 다른 점을 주목했다. 그는 "이전과 달리 현재 반도체 부문의 높은 수출액이 유가 상승에 따른 무역수지 악화를 상당 부분 완충해줄 것"이라며 "이 경우 환율이 이전 고점인 1480원대를 재차 테스트하며 안착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한국은행은 환율 급등에도 불구하고 국내 금융시장 기초 여건은 과거 위기 때와 비교해 안정적인 수준이라는 판단을 내놨다. 간밤 환율이 1500원을 일시적으로 넘어서기는 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와 달리 달러 유동성이 충분하고 한국의 대외 차입 가산금리와 국가 신용위험을 나타내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도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게 한국은행의 설명이다.
중동 정세 불확실성이 이어지는 만큼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 가능성은 경계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당분간 중동 상황이 어떻게 변하는지에 따라 환율과 금리, 주가 등 금융시장 가격 변수의 변동성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며 "시장 심리가 한 방향으로 쏠리지 않도록 필요할 경우 정부와 협조해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금융시장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예정됐던 해외 출장 일정을 연기하기도 했다. 이 총재는 당초 스위스 바젤에서 열리는 국제결제은행(BIS) 총재 회의 등에 참석하기 위해 이날 출국할 예정이었지만 환율 등 국내 금융·외환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자 출국 일정을 미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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