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경영권 승계를 앞둔 권택환 신대양제지 부회장이 보유 주식 매도라는 예상치 못한 결정을 내렸다. 통상 후계자들이 온전하게 승계 절차를 밟기 위해 지분 확보에 열을 올리는 것과 배치되는 행보이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권 부회장의 이번 주식 매도가 결과적으로 개인 비용 지출을 최소화하면서 경영권까지 확보할 수 있는 승계법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해당 주식의 매수자로 나선 신대한판지가 사실상 권 부회장 일가의 개인회사라는 이유에서다.
◆ 권 부회장, 주식 보유분 절반 매도…통상적 후계자와 정반대 행보
1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권 부회장은 내달 14일 기 보유 중인 신대양제지 주식(554만2810주)의 약 45%인 251만주를 시간외매매로 처분할 계획이다. 처분단가는 공시 전일 종가(1만1090원)로 책정됐으며 총 거래 규모는 278억3590만원이다.
주목할 대목은 권 부회장이 신대양제지 창업주 권혁홍 회장의 뒤를 잇는 유력 후계자라는 점이다. 권 회장 장남인 권 부회장은 2004년부터 사내이사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권 부회장의 동생 2명도 신대양제지 사내이사로 경영에 관여 중이지만, 대권에서는 한 발 떨어져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대양제지 지분율을 살펴보면 올 상반기 말 기준 권 회장이 17.23%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2대주주는 계열사인 신대한판지(13.78%)이며 권 부회장이 3대주주(13.75%)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권 부회장 두 동생의 이 회사 지분율은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
권 부회장은 상당히 오랜 기간 주식을 사모으며 지분율을 늘려 왔다. 예컨대 그의 신대양제지 지분율은 1997년 말 기준 1.99% 수준이었다. 하지만 장매 매수와 수증 등을 거쳐 ▲1998년 5.1% ▲2005년 10.01% ▲2010년 15.47% ▲2015년 16.13% ▲2020년 13.75% 순으로 확대됐다.
권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 작업을 잘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주식 확보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상황이다. 일반적으로 30%가 넘는 지분율을 확보해야 지배력을 구축했다고 판단돼서다. 표면적으로 권 부회장은 부친이 보유한 신대양제지 주식을 물려받을 경우 가장 쉽고 빠르게 승계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다.
하지만 막대한 세금 부담을 피할 수 없다. 권 회장이 보유 주식 전량을 증여한다면 전일 종가(1만1440원) 기준 권 부회장은 795억원의 세금을 납부해야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권 부회장은 한 주가 아쉬운 상황이지만, 되레 주식을 팔아 현금화했다.
◆ 신대한판지 모회사 신대한인쇄, 권 부회장 소유…'돈 벌고 지배력 늘리고'
시장은 권 부회장의 주식 매도가 최선의 승계 비책이 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이번 거래의 매수 주체인 신대한판지가 사실상 권 부회장이 지배력을 행사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신대한판지는 올 상반기 말 기준 신대양제지 지분율이 13.75%였지만, 주식 거래가 이뤄지면 20.01%로 6.26%포인트(p) 상승하게 된다. 또 권 회장을 제치고 최대주주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
골판지 및 골판지상자 제조업을 영위하는 신대한판지는 설립 초기 신대양제지의 자회사였다. 하지만 수차례의 증·감자를 거치면서 잦은 주주 변동이 발생했다. 특히 2016년 주주간 주식 양수도 거래와 유상감자 등을 거쳐 신대한인쇄를 최대주주로 맞게 된다.
권 부회장과 신대한판지의 주식 거래에서 가장 핵심적인 회사는 신대한인쇄다. 이 회사의 신대한판지 지분율은 50.5%다. 2016년 신설된 신대한인쇄는 권 부회장과 가족들이 지분 100%를 들고 있다. 특히 권 부회장이 신대한인쇄 대표이사와 사내이사로 홀로 등기돼 있다.
애초 신대한인쇄는 권 부회장의 승계를 염두에 두고 설립됐다는 분석이다. 신사업이 아닌, 대양판지의 기존 인쇄사업부를 양수했다는 점에서 일감 몰아주기로 해석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신대한인쇄는 2023년 말 별도기준 매출은 73억원, 영업이익은 6억원으로 집계됐으며 전체 매출의 절반을 신대양제지 계열사에서 거두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외감 법인에서 제외됐다.
이번 주식 거래가 마무리되면 신대양제지 지배구조는 '권 회장→신대양제지←신대한판지'에서 '권 부회장→신대한인쇄→신대한판지→신대양제지'로 바뀌게 된다. 다시 말해 권 부회장은 300억원에 육박하는 현금을 얻는 동시에 지배구조 최정점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다만 신대양제지 측은 이번 주식 거래와 지배구조 개편은 아무 연관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신대한판지가 신대양제지 지분율을 높이면 지분법 평가이익 등 플러스 요인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경영권 승계나 지배구조 개편 등과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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