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규희 기자] SK넥실리스가 지난 6월 일본 토요타통상과 동박 관련 기술 및 투자계약을 전격적으로 체결하자 국내 경쟁업계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경쟁이 치열해지던 동박 업계에서 SK넥실리스로서는 일종의 자본적 탈출구를 마련한 것이지만 핵심 기술이 해외로 유출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행보는 SK넥실리스의 심각한 경영 위기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국내 후발 주자인 솔루스첨단소재에 대한 공격적인 특허 소송이 단순한 기술 방어 차원을 넘어선 생존 전략임을 방증한다는 분석이다.
3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SK넥실리스는 지난 6월 18일 말레이시아 자회사 법인의 일부 지분을 약 1억1000만 달러에 토요타통상을 상대로 매각했다. 관련 거래로 양사는 배터리 소재 공급망 강화와 글로벌 생산 거점 안정화, 그리고 차세대 배터리 기술 협업 가능성 등을 합의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으나 이는 표면적인 이유라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 지분 매각 건은 지난해부터 이어진 연속 적자와 현금유동성 악화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으로 지적된다. 외형상으로는 협업으로 포장했지만, 실상은 자금난을 해소하려는 자산 매각이라는 것이다. 특히 본격 가동을 시작한 말레이시아 1·2공장의 가동률 하락이 근원적 문제로 보인다. 말레이시아 공장의 연간 동박 생산량은 5만 7000톤 수준인데, 정읍 공장이 5만 2000톤인 것을 감안하면 국내 생산량을 뛰어넘는 생산 기지를 원가 절감 만을 위해 동남아에 마련한 것이다. 특히 SK넥실리스는 전력비와 인건비 절감을 이유로 동남아 진출을 기획했는데 이는 오히려 국내 생산 기반의 경쟁력을 스스로 갉아먹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실제 말레이시아 공장의 판매량 기준 생산량은 2023년 시험 가동을 거쳤지만 2024년에도 2850톤에 불과해 1공장 단일 기준 가동률이 10% 수준에 머무는데 그쳤다. 게다가 올해 상반기 판매량 역시 5700톤 수준으로 캐파(생산능력) 대비 절반 이하라는 지적을 얻는다. 전기차 시장의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을 예측하지 못해 무리하게 공장 규모를 늘린 계획이 부메랑처럼 돌아온 결과다.
이러한 상황에서 SK넥실리스가 솔루스첨단소재를 상대로 기술 유출 소송을 제기한 것을 두고 업계에서 자신에 대해서는 이중잣대를 가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과거 말레이시아 공장 설립 과정에서 업계 1위인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의 핵심 인력을 대거 스카우트해 기술 유출 논란을 겪은 바 있어서다. 말레이시아 공장이 최근 자사의 계획대로 돌아가지 않자 관련 자회사의 지분을 일본 경쟁업계에 매각하고 동시에 국내 후발 주자를 기술 침해라는 명분으로 압박해 생산량 측면에서 사업 경쟁력을 유지하려는 전략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SK넥실리스가 무리한 수를 반복하는 이유는 어찌보면 생존의 문제로도 해석된다. 말레이시아 자회사 지분을 팔기에 앞서 SK넥실리스는 지난해 말 디스플레이용 연성동박적층판(FCCL) 사업부를 950억원에 사모투자사인 어펄마캐피탈에 팔기로 하고 이 거래를 올해 초 2월에 완료했다. 비핵심 사업부 구조조정 및 자금 확보 전략의 일환이라고 밝혔지만 미래 성장 가능성이 높은 자산을 팔아 사업 예측 실패의 대가를 톡톡히 치른 것으로 볼 수 있다.
흔히 박막이라고 하는 FCCL은 유연성이 높아 변형이 용이한 동박판으로, 스마트폰이나 텔레비전 등 시각 디스플레이는 물론 최근에는 자동차, 가전 등으로 적용 분야가 확대되며 시장이 커지는 추세다. SK넥실리스가 팔아넘긴 사업부만 해도 연매출 500억원대에 상각전이익(EBITDA)이 100억원 안팎으로 이익률이 20%에 달하는 고수익 수입원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핵심 자산을 1000억원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처분한 것은 그만큼 회사가 급박하게 자금을 확보해야 하는 처지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산을 매각한 결과는 경영진이 장기보다는 단기 생존에 몰두했던 바를 의미한다. 결국 그룹 수뇌부인 수펙스 추구협의회는 최근 연말 인사에서 SK넥실리스 모회사인 SKC 사장으로 신임 김종우 사장(전 SK엔펄스 대표)을 선임해 CEO(최고의사결정권자) 교체를 택했다.
사실 토요타통상과의 지분거래 역시 SK넥실리스에 앞서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와 솔루스첨단소재에 먼저 제안이 이뤄졌던 것이라고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롯데와 솔루스도 자금 수혈을 고민했지만 상대가 일본 기업임을 예민하게 받아들여 제안을 거절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SK넥실리스가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그만큼 생존 위기에 직면해 외부 자본 유치가 절실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SK넥실리스는 국내 공장은 물론 말레이시아 공장 가동률이 절반에 머물면서 경쟁력이 떨어지자 국내 생산시설을 아예 우즈베키스탄으로 이전할 계획까지 세웠다.
국내 동박 생태계에선 SK의 공장 이전이 국내 제조업의 일방적인 축소를 초래할 것이라 우려한다. 실제 SK넥실리스는 지난해 국내인력에 대한 희망퇴직을 단행해 해외 생산 전략을 본격화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기술 침해를 명분으로 경쟁사에 소송을 건 회사가 생산거점은 해외로 이전하고 그 지분은 경쟁사에 판 것은 기술자립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선택으로 보인다.
롯데와 솔루스 등은 SK넥실리스가 그동안 위기 탈출을 위해 중국 업체들의 가격 수준으로 물량을 세일 판매한 것에도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로 국내 업계 전반이 압박 받는 상황에서 유사한 전략으로 시장 질서를 흔들었다는 지적이다. 특히 같은 그룹사 가운데 SK온이 LG에너지솔루션으로부터 특허 침해 소송에 걸려 어려웠던 당시 SK넥실리스가 LG엔솔에 납품을 하지 못하면서 이런 상황은 심각해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SK넥실리스는 완공됐지만 가동에 들어가지 못한 폴란드 공장을 제외하고 전북 정읍과 말레이시아 등 생산시설에서 찍어낸 물량을 고객사가 아닌 경쟁사 고객에 최저가 가격으로 공급해 국내 중소업체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치킨게임을 펼쳤다는 지적을 얻는다. 업계 전반의 수익성이 악화된 상황에서 이뤄진 행보 때문에 산업 생태계 자체의 건전성이 훼손됐다는 게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SK는 M&A라는 전략으로 동박을 시작했기 때문에 매몰비용을 감안해 반드시 사업을 살려내야 한다는 대기업 특유의 강박의식이 임직원들에 박혀 있다"며 "하지만 조직의 이런 관성은 근본적인 실적 부진을 해결하기보다는 단기적으로 경쟁자 견제와 내부 위기 은폐에 초점을 맞춘 고육지책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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